레드불 스파
설재인 지음 / 한끼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 예에, 부장님 가고 있습니다.” 양복 입은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좀비들이 역에 많아서 조금 지체됐습니다. 얼른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이 책의 소개를 보는 순간,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좀비 창궐 중, 절대 외출 금지! 그런데도 경기가 그대로 진행된다니! 심지어 지하철을 타고 계체량을 측정하러 가야 한다.

지현과 쌈루타가 좀비 떼를 뚫고 지하철을 타는 장면은 단연 명장면이다. ’좀비가 나와도 출근할 거야.’라는 농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라니! 웃긴데 안 웃긴,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초반부의 코믹한 전개는 기존 좀비 아포칼립스물과는 다른 신선한 재미를 준다. 이후 여성 아이돌을 향한 왜곡된 시선, 대중들의 끝없는 비난, 외국인 노동자 차별, 여성 스포츠 선수에 대한 인식, 성추행 등의 문제를 좀비와 복싱을 통해 날카롭게 꼬집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승유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아이돌 활동을 하며 본심을 꾹 참고 웃기만 했던 지현이 쌈루타의 행동을 계기로 폭발하는 장면에서는 내 속마음을 들킨 듯한 부끄러움과 함께, 그녀의 성장이 뿌듯하게 다가왔다.


좀비 아포칼립스 + 코믹 + 스포츠 + 드라마 + 성장물 = 레드불 스파!


유쾌하지만 곳곳에 묻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에 답답해졌다가도, 지현과 쌈루타의 한 방에 속이 뻥 뚫렸다. 후루룩 읽히면서도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내가 남극까지 간 건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일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 잘한 일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형태의 '잘한 일'이 될 것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대륙의 흰빛, 푸른빛, 살아 있는 펭귄과 고래의 매끈한 검은빛, 그리고 붉은 기지복을 입고 발맞추어 걸어주던 사람들의 빛, 그 모든 것을 품은 채 걷고 있으면 언제든 나는 나의 폴라 일지 속으로 들어갔다가 새로운 마음으로 한 발 걸을 수 있다. 그 재생과 순환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남극이 있다.

아무나 갈 수 없고 오직 허가받은 사람만이 밟을 수 있는 남극 기지. 여러 경로로 시도했으나 늘 실패하다 드디어 남극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가장 먼저 받은 교육인 해상생존 교육과 기초안전교육부터 나는 작가님과 함께 남극에 갈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내가 꿈꾸던 세상. 광활하고 아름답고 고요한 남극의 풍경과 그 속에서의 생활을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너무 설레고 신났다. 한 달 동안 직접 남극 세종 기지에서 생활하며 그곳에서 서식하는 펭귄😍과 다른 동물들을 만나고, 식생 팀이 되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식물들을 만나고, 극지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여정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극한의 추위, 살을 에는듯한 바람, 작은 실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들 속에서도 일부러 천천히 걸어 조금 느린 동료와 발을 맞춰주기도 하고, 서로가 만난 남극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힘을 북돋워주기도 하고, 두꺼운 옷을 챙겨주기도 하고, 함께 윷놀이를 하고 노래방도 즐기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남극을 향한 작가님의 순수한 호기심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그것을 통해 내 사리사욕도 채웠다.

남극에 다녀온 후 작가님이 써나갈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해졌고, 그곳이 배경인 이야기도 얼른 만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내가 어렴풋이 알게 된 무언가를 세희에게 말하고 싶었다. 사실은 엄마가 사 온 테이프가 앞부분만 짤막하게 녹음되어 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는 빈 테이프였다는 것. 하지만 엄마는 그걸 버리지 않고 테이프에 성경을 읽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는 것. 그걸 보면서 나는 엄마가 찾아 헤매고 있고, 찾았다고 생각하는 구원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 그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를 위하는 마음에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나의 구원을 찾고 있지만, 어쩌면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여름방학 - 김혜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됐다.

공통점이 많은 친구 '세희'에게 구원받은 <여름방학-김혜수> 속 '은진'이 되었다가, 사이비 종교 사람들이었지만 과거에 겪었던 힘든 일을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고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된 <지영-이서희>의 '지영'이 되었다가, 가족을 원망하다가도 가족을 위해 견디는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김현민>의 '해연'이 되었다.

카페 안에서 괴한에 찔려 죽은 아르바이트생 '소미'를 잃은 충격과 죄책감에 빠지지만 소미의 엄마와 함께 보내며 애도를 하며 한 발짝 나아가려는 <아이리시 커피-이지연>의 '희수'가 되었다가,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 마음에 가끔 옛 연인을 떠올리며 호날두 탓을 하는 <호날두의 눈물 - 양현모> 속 주인공이 되었다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경유지 - 전은서> 속 예은이 되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는 괴로워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가끔은 끔찍한 일들도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구원의 손길이 올 거라 믿으며, 한편으론 구원 같은 건 없다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다시 보게 된다.


여섯 소설 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특별히 어떤 힘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고통에서 구원을 구하며 버텨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옥 : 신의 실수
류시은 외 지음, 연상호 기획, 최규석 만화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초에 왜 지옥이 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어. 내 죄가 그토록 큰 것이었을까?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지도 몰라. 그냥 신의 실수일지도 모르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1>을 너무 재미있게 봤고, 앤솔러지 소설도 좋아하는 데다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가님이 참여하셔서 엄청난 기대를 안고 읽어봤다.

한 세계관을 다섯 작가가 펼쳐낸 만큼 이야기들이 다채로워서 좋았다.

첫 번째 소설인 <지옥 뽑기 - 류시은>은 신의 고지를 받고 지옥의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부활한 사람의 입장을 이용해 사회문제를 함께 풀어가 좋았고,

두 번째 소설인 <묘수-박서련>은 죽음을 고지하고 실행된다는 점과 너무 미워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 명쯤은 있는 인간의 마음을 이용해 죄책감 없이 사기를 치는 무당의 이야기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세 번째 소설 <불경한 자들의 빵 - 조예은>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고지를 받고, 죄가 있다고 루머가 퍼뜨려지고 화살촉들은 죄를 찾겠다며 사람을 협박하는 등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다가 그 속의 한줄기 희망을 보여줘 좋았고,

네 번째 소설 <새끼 사자 - 최미래> 이 책 속 작품들이 모두 고지를 받았거나 남은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유일하게 지옥의 사자가 된 인물이 등장해 새로웠고,

다섯 번째 소설 <산사태 - 함윤이> 누구보다 친했던 보육원 친구들. 아끼던 사람이 갑자기 실종된 후 느낀 죄책감과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내가 상상하는 지옥의 세계관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라 새로웠다.

혼돈의 세계 속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면서도 그런 인간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도 재미지만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 좋았다.

만화 - 넷플릭스 시리즈 - 책까지 이어지는 세계관은 이미 익숙했고, 영상이 익숙해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상이 눈앞에 보이는 느낌이어서 더 재미있었고, 스핀 오프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좋겠을 만큼 캐릭터도 생생하고 스토리도 살아있다.

발문에서 연상호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정말 새로운 지옥이 펼쳐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들 - 작고 거대한, 위대하고 하찮은 들시리즈 7
이은혜 지음 / 꿈꾸는인생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녀석들의 음수량이 줄면 줄어서, 늘면 늘어서 걱정을 하게 될 거다. 어쩌자고 고양이를 마음속 가장 말랑하고 연약한 곳에 입주시켜서 이 사달을 냈을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고양이가 처음 내 몸에 찹쌀떡 같은 앞발로 꾹꾹이를 하던 그날, 슬그머니 다가와 처음 내 허벅지를 베고 자던 그날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잠 많고 털 많고 보드라운 발바닥과 세모난 입을 가진 생명체와 기꺼이 생을 함께 하리라는걸. 그로 인해 많이 웃고 많이 울기도 하리라는걸. 가끔은 불안을 쓰다듬으며 밤을 보내기도 하리라는걸.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괜찮다. 부디 우리 집에 고양이 털이 오래오래 흩날리기만 바랄 뿐.

두 마리의 고양이 집사인 작가님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서 피하던 '개과 사람'이었다는 점과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는 점, 가족이 고양이를 데려와 갑자기 첫째 고양이의 집사가 됐다는 점, 무서웠던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다는 점, 고양이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구원을 받았다는 점.


어릴 적 기억이 남아있는 순간부터 나는 강아지들과 함께 자랐다. 열 살을 맞이한 고양이와 아직 1년이 안된 고양이가 함께 사는데, 아깽이의 발랄함에 입꼬리가 올라가더라도 10살짜리 고양이의 늙음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딘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는데, 이 책 덕분에 더 위로를 받았다.

고양이한테서만이아니라 고양이 책에서까지 구원을 받는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남부터 이별까지.

내가 고양이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그들에게 돌려준 사랑이 비례했는지, 나는 이들로부터 얼마나 구원받았나, 작가님의 성장을 보고 나는 고양이들로 인해 얼마나 성장했나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이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