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게 된다. 평소에 조금씩 해 두라고, 직접 해 봐야 자기 것이 된다고.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설명했다고 해서 아이들이 바로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겪고 나서야 “이제 알겠어요”라고 할 때도 있다.
『싯다르타』를 읽으며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곧잘 해 주던 질문을 나에게도 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싶을까?’
싯다르타는 바라문 집안에서 자란 청년이다. 부처와 같은 이름을 지녔지만, 이 소설은 부처의 일대기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한 사람이,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안고 자기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떠나 고행을 한다. 고타마를 만나서는 그가 깨달은 사람임을 알아보면서도 그의 제자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선택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훌륭한 스승을 만났는데, 왜 다시 혼자 길을 나서야 할까.
읽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그것을 내 삶에서 이해하는 일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책에서 좋은 문장을 만나 밑줄을 긋고도 일상에서는 예전처럼 행동하는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 아는 만큼 살아가는 일이 참 어렵다.
이후 싯다르타는 사랑을 하고, 장사를 배우고, 돈을 번다. 처음에는 세속의 삶을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바라보지만 어느새 그 안에 깊이 빠져든다. 욕망에서 벗어나려던 사람이 소유와 쾌락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그가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나 역시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의 일에 흔들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방황을 모두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고, 고통을 겪었다고 누구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다만 지나온 시간을 실패라는 말 하나로 정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남았다. 당시에는 후회만 남았던 일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가장 오래 마음에 걸린 부분은 아들과의 관계였다. 자신도 아버지의 곁을 떠났으면서, 정작 아들이 떠나려 하자 싯다르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른 일에는 깊은 이해를 보이던 그도 아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나도 아들과 학생들이 잘되기를 바란다. 먼저 살아 본 사람으로서 알려 주고 싶은 것도 많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은 피했으면 싶고, 조금 더 나은 길이 보이면 그쪽으로 이끌고 싶다. 하지만 상대는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해 준 말을 듣고도 자기 방식으로 해 보려 한다.
그 모습을 답답해하기 전에 돌아볼 일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직접 선택하고, 후회하고, 다시 해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어디일까. 이 사람이 직접 걸어야 할 길은 어디부터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이 질문을 품고 있으면, 서둘러 한마디 더 하려던 순간에 잠깐 멈출 수는 있을 것 같다.
강가에서 바주데바와 함께 지내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바주데바는 싯다르타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싯다르타 역시 강을 바라보고 그 소리를 들으며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면 곧잘 생각한다. 이것을 어디에 써 볼까, 수업에는 어떻게 연결할까,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 배움을 생활에 옮기는 일은 내게 중요하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런 생각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느낀 것을 당장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이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잘 모르겠으면 모르는 대로 조금 두어도 된다. 글을 쓰면서도 자꾸 결론을 찾으려 했던 나에게 강가의 장면은 잠깐 쉬어 갈 자리를 내어 주었다.
싯다르타가 익숙한 삶을 떠나는 모습에서는 앞으로의 나도 생각했다. 오랫동안 해 온 영어교육이 있고, 새롭게 배우고 싶은 평생교육과 진로코칭이 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앞으로의 일과 이어 갈지 아직 고민 중이다. 그 고민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조금 더 배워 보고 경험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니 몇 가지 질문이 남았다.
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충분히 듣고 있을까, 해 줄 말을 먼저 준비하고 있을까.
누군가를 위한다는 내 마음에는 나의 기대가 얼마나 섞여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동안, 나 자신의 성장에는 어떤 시간과 기회를 주고 있을까.
지금은 마지막 질문에 가장 오래 머물고 싶다.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 돌아보는 것과 함께, 앞으로 무엇을 해 보고 싶은지도 찬찬히 적어 보려 한다. 당장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는 않아도 괜찮다.
『싯다르타』에 이어 『데미안』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타인의 기대와 내 바람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 지금 읽으면 예전과는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 주려 애썼던 내가, 이번에는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