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
배윤민정 지음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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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 '아주버님','형님','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여기서 작가가 궁금해진다.

「지은이는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나 김해에서 자라고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결혼한 다음 점자도서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며 책에 실린 그림을 문장으로 설명하는 일을 했다. 이미지를 언어로 옮길 때 대상에 대한 사회의 가치판단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세 디면서 가족호칭,직업 명칭, 반말과 존댓말 등에 있는 한국어의 차별적인 속성을 민감하게 의식하게 됐다. 2018년에 시가 구성원들에게 가족 호칭을 바꿔보자고 했다가 격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가족 집단 안에서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야만 가정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력감에 빠졌다가,여성차별적인 사회의 관습을 직접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히후 광장에 나가 가족 호칭 개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홍보물을 통한 캠페인을 펼쳤다. 이 때의 경험을 글로 엮어서 한국여성민우회 누리집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는 결혼 관계, 구성원들이 동등한 발언권과 결정권을 가지는 민주적인 가족문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질문을 던지며 살고 있다.」

나라면 당장 시댁에 가서 오늘부터 우리 시아주버님,올케,서방님,도련님, 처남댁 이란 말 대신 누구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못하겠다. 왜냐하면 근본없는 며느리라고 손가락질받고 노발대발하며 그 많은 분란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가 불꽃을 튀기며 뇌리를 스치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이란?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읽었을때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당연하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남자선배는 그 책을 읽고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당연하다는 것이 평등하지 않은 구조에서 나왔다는 것 그래서 못되게 굴었던 그 젊은 시절을 후회하고 함부로 대했던 여학우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한다.

페미관련책을 읽을 때면 남성 못지 않게 여성들도 혼란에 빠진다.

기존에 오래된 관습과 고정관념을 흔들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회경제 정치적인 남성위주의 권력구조에서 시작되고 유지되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질문을 던진다.

권인숙의 양성평등이야기에서도 언급된다.

남자는 좌뇌가 발달되고,여자는 우뇌가 발달되었다는 사실조차도 남성위주의 권력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조작된 연구발표였다는 것이 현대에 와서 남자여자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성이 감성적인 이유가 단순히 그런 뇌구조나 성향이었다기보다는 남성위주의 권력구조에서 여자에게 권리가 주어지지 않고 여성다운 영역에 맞는 일은 문학, 남성다운 영역에 맞는 일은 과학이라는, 역할이나 문화적 구분에 성별 능력까지 성별능력까지 따라 맞추어 고정관렴을 키워온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런 차이가 여성의 여러 역할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이유가 되어왔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이며 감정적이기에 투표권고 갖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에서처럼 작가가 가족 호칭 개선을 하자고 했을 때 왜 사람들은 격분할까?

기득권.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을 박탈당하는 것을 격렬하게 거부할 것이다.

단순히 호칭을 바꿔보면 어떠냐에 왜 이렇게 많은 공분을 사야했는가?

모든 차별은 인간들 사이의 다름을 서열화하고 위계화하는데서 시작한다.

차이의 위계하를 해체하는 것은 곧 정상의 기능을 해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별은 다르다에서 판단을 멈추는 것이ㅏ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우등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기에 차이가 다르다. 우열을 나누는 나누는 일은 어떻게 정당화될까? 가장 쉬운 길은 어떤 것은 정상이며 그와 다른 것은 비정상이라고 하는 판단이다.'우리 모두가 그런 차이에 대한 서열의식,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의 위계와 사회적 관계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 관계 맺음의 방식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없다.

많은 사람이 가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닌, 상하관계로 인식한다.

이때 가족이라는 집단의 구조는 대장 밑에 부하들이 층층이이어지는 군대의 계급구조나,임금 밑에 신하들이 도열해 있는 조선 시대의 정치 구조나, 임금 밑에 신하들이 도열해 있는 조선시대의 정치구조와 다르지 않다. 목적이 다른 집단이 서로를 모방하는 것은 당연하다. 집단의 구성원이 개인들이 이 수직적인 질서를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상대보다 내가 더 많은 권리를 지녔다는 생각.

따라서 나는 상대방에게 예우를 받아야 하며, 상대방은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 이것이 당연하다는생각.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폭력은 사회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다.

나는 당신의 아랫사람이 아니라 각자 개인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서열의식이 불공정하다는 것을 공유해보고자 하는 일이 결국에 가서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되었다.

작가는 가족 호칭 개선 투쟁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으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외친다.

갈등을 최소화하며 현명하게 변화를 끌어내가는 목소리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런 말들은 변화가 일어나기까지의 시간동안 여자에게 차별을 감내하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가정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마,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펴오하 밑에는 여자,특히 며느리의 인내가 깔려있다. 나는 약자의 침묵으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구성원들이 부딪치고 갈등하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1년동안 싸움이 이어진 이후 나와 배우자의 부모님은 서로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하고 있다. 배우자의 형은 갈등을 잘 해결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호칭이나 서열에 대한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갈팡질팡하는 상태다.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만큼 움직일 것인가?

이 싸움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나는 나와 베우자, 시가 구성원 모두와 함께 이 숙제를 풀고 싶다.

내싸움의 과정이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집단의 변화를 모색해 본 의미있는 시도로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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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한 여인의 작은 몸부림일 수도 있으나 나는 신호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서부터 내 사고와 행동방식에서부터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해 현실에 조금 덜 타협하고 모범이 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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