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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기분 좋게 차갑고, 정제된 고요함. 책을 읽고나서 받은 인상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산문집은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작가가 기고해온 글 중 일부와 새로 쓴 글들이 실려있다.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책을 이야기하는 2부가 특히 좋았는데, 그 중에서도 <책 한 권 찾으려다 그 책의 씨를 말린 건에 대하여> 꼭지를 재밌게 읽었다. 절판된 책을 찾아 여러 서점과 개인 판매자들을 거쳐 마침내 구매에 성공 했지만 매번 주문 취소를 당하고야(?) 마는 이야기를 담은 글인데 작가의 심정에 공감버튼이 눌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김겨울 작가는 북튜버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성과 조리있는 말솜씨에 매료되었다. 작가가 출간한 책은 여러 권이지만 책이나 음악 이야기에 중점을 둔 도서들이라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는 음식 에세이니까 제외하고) 일상적인 모습과 내면이 많이 반영된 이번 산문집이 더욱 기다려졌다.
책의 표지에는 중괄호가 있고 그 가운데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과연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의문을 가졌는데 책을 읽고나니 ‘당신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라고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끄적임 같기도, 고백 같기도 한 책의 글들을 보면서 ‘겨울’이라는 이름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책에 묘사된 겨울의 어느 찰나, 순간의 감정, 시점 모든 게 소복히 내려앉으며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가만한 일상의 조각을 바느질 하듯 섬세하게 담아낸 글들을 읽고 있자니 작가의 더 많은 글을 오래 보고 싶어진다. 곱씹어보고픈 문장들이 마음에 폭 밀고 들어와 차곡차곡 쌓인다. 산문집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기꺼이 추천하겠다.
✏️ 나는 제자리에 곧게 서서 거센 바람을 맞는 일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이것이 삶이라면 노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노래는 이따금 뚝뚝 끊기고 위태롭다. 그러나 겨울 속에서 기꺼이 노래하는 다른 사람들, 내가 책 속에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삶의 노래는 이어진다.
✏️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 삶은 모든 때에 있으므로 매 시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다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나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삶, 내가 아닌 부분을 줄여나가고 나인 부분을 늘려나가는 삶,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그럴 수만 있다면.
✏️ 오늘이 끔찍할 때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내일을 생각했을 때 도저히 좋은 게 하나도 없을 때도 나는 나를 속일 수 있다. 그 향과 그 맛과 그 안온함, 그 풍부함이 어찌 되었든 나의 좋은 부분을 지켜줄 것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서평단 신청을 통해 도서를 받아 솔직하게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