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셀린 송 지음, 황석희.조은정.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한국 사람이라면 ’인연(‘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직접 건네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연, 추억, 첫사랑이 버무려진 영화다. 주인공인 해성과 나영은 초등학생 시절 영혼의 단짝처럼 붙어다녔지만 나영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되며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간다. 12년 후 문득 서로의 존재가 생각난 둘은 온라인에서 다시 재회하게 되고 반가움에 기뻐하지만 나영은 이제 그 이름을 쓰지 않는다. 노라라는 영어 이름을 쓰는 나영은 이제 뉴욕에 살며 극작가를 꿈꾸는 대학생이다. 커다란 시차라는 장애물에 힘들어하고 일상의 흔들림을 느낀 노라는 해성에서 잠시 멀어짐을 고하고 그렇게 둘은 다시 이별 아닌 이별을 맞는다. 시간이 흘러 12년 후 각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둘. 해성은 마침내 노라를 만나러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나는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각본집을 읽어보았는데, 활자를 훑을 때 마다 머릿속에서 장면이 다시 재생되어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물들의 속 마음이 어느정도 지문에 서술되어있어 영화만으로는 전부 파악하기 어려웠던 인물들의 감정을 밀도있게 음미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인물 간의 애틋한 시선이라던지 오묘한 기류, 공감각 같은 것들은 활자를 읽는 것보다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작중 ’인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불교에서 다루는 사상이다보니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인 듯 하다. 이 작품은 우리가 살면서 놓쳐버린, 보내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 때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것들.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노력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작품이었다.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이 작품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영화를 본 분들에게는, 영화만으로는 온전히 채우지 못한 틈을 이 각본집이 메꿔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너의 앞에 앉아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