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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광 없는 영웅들
※ 다산북스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요즘 영화 <오디세이>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다. ‘그리스코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미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영웅의 모험과 전쟁의 승리만은 아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뤘던 것처럼,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온전한 승리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흔적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전쟁은 흔히 승리와 패배라는 두 단어로 정리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참혹한 풍경이 숨어 있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바로 그 풍경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 포로들은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도공 겔론과 람포는 포로들에게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읊게 하고 그 대가로 먹을 것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점차 하나의 연극으로 발전하고, 포로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을 준비하고 함께 무대에 서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이름 없는 적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되고, 시라쿠사인들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객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연극은 단순한 극중극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놓은 '우리와 적'이라는 경계를 잠시 허무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겔론과 람포의 대비였다. 겔론은 누구보다 에우리피데스를 사랑하고 연극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반면 람포는 처음부터 연극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과, 실제로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 스포일러 포함 — 연극이 끝난 자리에서
엉성하게 시작했던 공연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어느새 수백 명의 관객이 모인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연극도 잠시,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전쟁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포로들의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고, 남은 포로 중 파케스를 구하기 위해 람포는 겔론에게 함께 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겔론은 가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누마와 리나르와 알카르와 다른 모두가 죽은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중략) 겔론은 아무 말도 없다. 촉촉한 파란 눈이 깜빡이다가 감긴다. 그가 옆으로 돌아 눕는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왜 겔론은 가지 않았을까. 단순히 겔론이 냉정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연극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적군이 아니었다. 함께 대사를 주고받고,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배우였다. 『메데이아』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잠시나마 전쟁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사라졌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배우와 관객이 아니라 포로와 시라쿠사인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겔론은 그 경계 앞에서 멈춰 선다.
반면 람포는 파케스를 구하러 간다. 처음부터 고결한 사람이었던 것도,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함께 연극을 만들었던 파케스를 더 이상 '적군 포로'라는 한 단어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알게 된 이상, 그가 죽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에서 람포가 더 '영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어서 파케스를 구한 것이 아니다. 영웅이 아닌 사람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제목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겔론이 배 위에서 '신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나중에 람포가 다시 묻자 그가 본 것은 신이 아니라 죽은 동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제야 동료들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신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과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있고, 아무리 애써도 누군가를 잃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람포와 리라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람포는 파케스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자신이 사랑한 리라의 비극까지는 막아내지 못한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바로 그 사람이,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결국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무력함이 한 사람의 삶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영광 없는 영웅들』이 말하고 싶은 영웅은 거창한 승리를 거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눈앞의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만,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삶까지 승리와 패배로 나눌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한 행동 역시 반드시 영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광 없는 영웅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연극을 만들고, 위험을 무릅쓰고 한 사람을 구하려 했던 사람들.
어쩌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한 장군의 이름보다, 그 참혹한 순간에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선택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