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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가 살인사건
아시베 다쿠 지음, 구수영 옮김 / 더블샷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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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찾는 동안, 나는 어느새 소설 속에 갇혀 있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은 오사카 센바의 오래된 상가, 오마리가. 그런데 이 집안,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 한두 명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던 사건은 점점 커지고, 기묘한 방식으로 발견되는 시체와 수상한 인물들, 쉽게 설명되지 않는 상황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나 역시 여느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범인을 찾는 데 집중했다.

‘누가 범인이지?’
‘이 사람이 뭔가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명씩 의심해보고 앞에서 지나쳤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서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범인이 너일 줄은 몰랐는데!!” 싶어서 혼자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범인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범인보다 더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대체 오마리가라는 집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마리가 살인사건』에서 오마리가는 단순한 사건의 배경이 아니다.

범인을 찾으려면 사람을 봐야 하고, 사람을 이해하려면 결국 그들이 살아온 세계를 봐야 한다.

현재 벌어진 사건만 따라가면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이 오마리가의 과거와 연결되면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거리, 집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규칙까지도 사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단서처럼 느껴진다.

살인사건을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한 집안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사건을 따라가는 또 하나의 재미는 탐정소설이라는 장르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탐정소설에서 익숙하게 만나볼 수 있는 장치와 이미지들이 사건 곳곳에 새겨져 있다. 폐쇄된 공간, 기묘한 죽음, 수상한 인물, 감춰진 비밀과 흩어진 단서들.

마치 작가가 사건 곳곳에 탐정소설이라는 암호를 숨겨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범인의 행동만 추리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 어떤 탐정소설의 문법이 숨어 있는지도 함께 추리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를 제외한 여기 있는 모두가 탐정소설 속에 있기 때문이야. 나는 그저 바깥에서 책장을 넘기며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일 뿐이고, 그 이상의 일을 한다고 우스댈 마음은 추호도 없어.”

나는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깥에서 책장을 넘기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위치에서 사건 곳곳에 새겨진 탐정소설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맞춰가며 이야기를 읽는다.

범인을 찾는 것만이 추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사건 자체가 어떤 탐정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 역시 하나의 추리였다.

물론 미스터리의 기본적인 재미도 충분하다. 누가 범인인지 추측하고, 앞선 장면을 되짚어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확실하게 살아난다.

그리고 여기에 전쟁이라는 시대의 변화까지 겹쳐진다.

오마리가 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동안, 집 바깥의 세계 역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오래된 상가가 지켜온 질서와 번영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고, 결국 집안의 몰락과 시대의 몰락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 사건은 단순히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라는 질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범인을 찾기 위해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기억에 남은 것은 범인의 정체만이 아니었다.

오마리가라는 한 집안이 어떤 세계였고, 그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그리고 그 세계 곳곳에 숨겨진 탐정소설의 흔적을 내가 얼마나 발견했는지도 함께 떠올랐다.

이 작품은 사건만 빠르게 해결하는 대신, 오마리가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을 충분히 보여준다. 덕분에 마지막에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해결했다기보다 한 시대의 끝을 지켜본 듯한 느낌이 남는다.

범인을 찾으려고 펼친 책이었는데, 마지막에는 범인보다 그 사건이 벌어진 세계와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의 흔적을 더 오래 생각하게 됐다.

추리소설의 클리셰와 장르적 장치를 발견하며 읽는걸 좋아하는 추리소설 매니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더블샷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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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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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광 없는 영웅들

※ 다산북스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요즘 영화 <오디세이>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다. ‘그리스코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미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영웅의 모험과 전쟁의 승리만은 아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뤘던 것처럼,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온전한 승리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흔적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전쟁은 흔히 승리와 패배라는 두 단어로 정리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참혹한 풍경이 숨어 있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바로 그 풍경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 포로들은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도공 겔론과 람포는 포로들에게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읊게 하고 그 대가로 먹을 것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점차 하나의 연극으로 발전하고, 포로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을 준비하고 함께 무대에 서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이름 없는 적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되고, 시라쿠사인들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객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연극은 단순한 극중극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놓은 '우리와 적'이라는 경계를 잠시 허무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겔론과 람포의 대비였다. 겔론은 누구보다 에우리피데스를 사랑하고 연극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반면 람포는 처음부터 연극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과, 실제로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 스포일러 포함 — 연극이 끝난 자리에서

엉성하게 시작했던 공연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어느새 수백 명의 관객이 모인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연극도 잠시,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전쟁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포로들의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고, 남은 포로 중 파케스를 구하기 위해 람포는 겔론에게 함께 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겔론은 가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누마와 리나르와 알카르와 다른 모두가 죽은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중략) 겔론은 아무 말도 없다. 촉촉한 파란 눈이 깜빡이다가 감긴다. 그가 옆으로 돌아 눕는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왜 겔론은 가지 않았을까. 단순히 겔론이 냉정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연극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적군이 아니었다. 함께 대사를 주고받고,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배우였다. 『메데이아』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잠시나마 전쟁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사라졌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배우와 관객이 아니라 포로와 시라쿠사인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겔론은 그 경계 앞에서 멈춰 선다.

반면 람포는 파케스를 구하러 간다. 처음부터 고결한 사람이었던 것도,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함께 연극을 만들었던 파케스를 더 이상 '적군 포로'라는 한 단어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알게 된 이상, 그가 죽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에서 람포가 더 '영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어서 파케스를 구한 것이 아니다. 영웅이 아닌 사람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제목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겔론이 배 위에서 '신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나중에 람포가 다시 묻자 그가 본 것은 신이 아니라 죽은 동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제야 동료들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신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과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있고, 아무리 애써도 누군가를 잃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람포와 리라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람포는 파케스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자신이 사랑한 리라의 비극까지는 막아내지 못한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바로 그 사람이,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결국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무력함이 한 사람의 삶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영광 없는 영웅들』이 말하고 싶은 영웅은 거창한 승리를 거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눈앞의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만,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삶까지 승리와 패배로 나눌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한 행동 역시 반드시 영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광 없는 영웅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연극을 만들고, 위험을 무릅쓰고 한 사람을 구하려 했던 사람들.

어쩌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한 장군의 이름보다, 그 참혹한 순간에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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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루도 사랑
서고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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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릴레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조금 특별한 경험인 것 같다. 아직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첫 작품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하루도 사랑』을 통해 사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사랑스럽고 톡톡 튀는 색감의 표지 안에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아홉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사랑은 하루도 사랑』에는 「숨은 그림 찾기」, 「위드걸스」, 「사랑은 하루도 사랑」, 「월요 휴무」, 「복숭아 심기」, 「너구리 온다」, 「내일의 날씨」, 「여름이 없는 나라」, 「다이빙」까지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집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화상담원, 베이비시터, 공무원 등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친숙하게 다가왔다. 평범해 보이는 하루에도 저마다 말하지 못한 사정과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내일의 날씨」였다.

평소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서는 오히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았다.

특히 ‘포기’와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수미는 잠시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더니, 포기도 배신일까요, 하고 물었다.
나도 수미를 따라 곰곰 생각해보았다. 배신이라는 건.... 다르다.
무얼 못한다고 그걸 배신이라고 할 수 없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배신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쉽게 탓한다. 특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조차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작품 속 인물의 말처럼 무언가를 탓하는 일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에게 그런 사건이 있지 않나요? 나의 근원부터 잘못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사건이요.”

무언가를 탓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끔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태가 닥쳤을 때 기댈 구석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일의 날씨」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결국 그 앞에서 무력해지고, 고민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보다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은 하루도 사랑」과 「월요 휴무」도 인상 깊게 읽었다.

「사랑은 하루도 사랑」에서는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관계 속에서 느끼는 소외와 외로움이 마음에 남았다. 특별한 사건보다 인물의 일상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그들이 겪는 감정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월요 휴무」에서는 가족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관계. 오랜 시간 쌓여온 원망과 애정이 뒤섞인 마음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미리 알고 읽기보다는 직접 읽으며 그 마음을 따라가 보기를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책과 함께 받은 『New Face Book』도 재미있었다. 작품을 모두 읽고 난 뒤 가볍게 펼쳐보면서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다른 방식으로 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다 읽은 뒤의 여운을 조금 덜어내면서도, 다시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부록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하루도 사랑』은 거대한 사건보다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소재를 통해 사람과 관계를 바라보는 작품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기억될 하루일 수 있고,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삶에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아홉 편의 단편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읽고 그 시작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별했다. 앞으로 작가가 사람과 일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이야기로 풀어낼지 궁금하다. 『사랑은 하루도 사랑』을 시작으로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이야기들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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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 - 정의의 이정표가 된 판결부터 권력의 흉기가 된 재판까지 ㅣ 생각하는 10대
권재원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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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북트리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당연한 것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처음부터 당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가 하루에 일정한 시간만 일하고 정당한 휴일을 보장받는 것까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정말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일까?

『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는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에는 갈릴레이 재판, 스콥스 원숭이 재판, 드레드 스콧 판결, 수전 B. 앤서니 재판, 헤이마켓 사건, 미란다 판결, 워터게이트 사건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재판이 등장한다. 각각의 재판은 과학과 진리, 인간의 권리, 권력과 책임, 표현의 자유 등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유와 권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먼저 각각의 재판이 어떤 사건인지 간략하게 소개한 뒤, 그 재판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설명한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재판에서는 어떤 주장들이 오갔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내려졌는지를 차례대로 보여준다. 단순히 판결 결과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재판이 일어났는지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편견이나 정치적 상황, 권력관계까지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단순히 판단하기보다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며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헤이마켓 사건이었다.

지금 우리는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 노동절로 보내고 하루를 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루 8시간 노동 역시 너무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만 일할 권리를 요구했던 당시에는 이것조차 당연한 요구가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사업가들과 정부의 긴장도 커져 갔다.

그러던 중 시위 현장에서 누군가 경찰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문제는 폭탄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에서는 실제 폭탄 투척범을 찾는 대신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법정에 세워졌다. 그들이 폭탄을 던졌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재판은 범인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노동운동 자체를 억누르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본보기를 만들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사건에서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은 문장이 있다.

“우리의 침묵이, 오늘 당신들이 목 조르는 그 목소리보다 더 강력해질 날이 올 것이다!”

당시 이들의 목소리는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들의 싸움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았다. 이후 헤이마켓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날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데이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읽으며 나는 재판에서의 패배가 반드시 그들의 싸움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당대에는 잘못된 주장으로 취급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목소리가 몇 년 뒤, 혹은 몇십 년 뒤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시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목소리를 낸 것 자체에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헤이마켓 사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재판 역시 당시에는 사회의 상식이나 권력에 맞서는 행동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들이 주장했던 권리와 자유가 오늘날의 상식이 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책의 재판 사례들을 단순히 과거의 잘못된 판결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도, 언젠가는 바뀌어야 할 것이 있을까?

현재의 사회에도 여전히 수많은 편견과 차별,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불합리함이 존재한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 중에도 미래에는 새로운 시선으로 평가될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과거의 재판들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결국 현재의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법률 지식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는 실제 역사 속 재판을 통해 법과 사회, 권력과 인권, 자유와 책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법이 단순히 규칙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와 권리를 둘러싼 갈등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사회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사회의 편견과 상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법학·사회 분야의 세특 도서로도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과거의 법정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현재의 사회를 바라보는 질문까지 던진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언젠가는 다시 질문받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것’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것에서 사회의 변화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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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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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계획 살인을 위해 사이코패스 연구실에 잠입한 클로이.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클로이의 완벽했던 계획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사이코패스는 누구일까.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전이었다.

와이먼 박사의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물들은 서로를 쉽게 믿지 않는다. 죄책감이나 공감에 기대어 관계를 맺기보다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용할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서로를 이용하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푸는 행동조차 순수한 호의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무엇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주인공 클로이부터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인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찰스와 앤드리였다.

찰스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성으로 묘사되는데, 단순히 외모가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자신을 어떻게 연출해야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지 알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반대로 앤드리는 사실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사이코패스인 척 연기했고, 그 연기가 실제로 통하면서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이 사이코패스인 척한다는 설정 때문에 오히려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누가 진짜 사이코패스이고 누가 사이코패스인 척하고 있는지, 그리고 서로가 상대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여기에 클로이 역시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더해진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윌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 클로이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연구 프로그램에 들어가지만, 예상하지 못한 연쇄살인이 시작되면서 계획과 전혀 다른 상황에 휘말린다. 피해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사이코패스라는 점이 클로이를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인물로 만든다.

결국 이 책에서 재미있는 것은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각자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거나 필요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기하고, 상대방 역시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심리전 자체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심하면서 읽게 됐다.
범인은 개인적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나름대로 범인을 추측하면서 읽었지만 완전히 빗나갔고, 덕분에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읽을 수 있었다.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를 단순히 범죄자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개성과 서로를 의심하고 이용하는 심리전으로 확장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숨기는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재미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 문학동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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