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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뉴욕
E. B. 화이트 지음, 권상미 옮김 / 숲속여우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1949년의 서울과 2016년의 서울의 모습이 천지차이 이듯이, E.B.화이트가 쓴 <여기, 뉴욕> 속 1949년의 뉴욕은 오늘날과 매우 다를 것이다. 하지만, 뉴욕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뉴욕에 체류한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뉴욕의 모습은 오늘날 뉴욕을 잠시 여행하는 사람에게 주는 인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B.화이트의 경우에는 뉴욕에 전혀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을 썼을 당시에는 뉴욕을 떠나 살다가 뉴욕에 관한 글을 의뢰받고 잠시 뉴욕을 방문하고 나서 쓴 글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과거에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다름에 놀라기도 하고, 뉴욕이라는 도시와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떠오른 생각들에 대해 글로 쓸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의 글 속에 비친 뉴욕의 모습은 흥미진진하다.
"뉴욕은 시와 같다. 모든 삶, 모든 인종과 혈통을 작은 섬 한 곳에 압축하고 음악을 더하고 내부 엔진을 반주로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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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파리와는 전혀 다르다. 런던과도 딴판이다. 스포케인의 육십 배도 아니고, 디트로이트의 네 배도 아니다. 뉴욕은 모든 점에서 가장 대단한 도시다." (32쪽)
"이렇듯 수많은 인종과 신념을 대표하는, 외국에서 출생한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고 섞이면서 뉴욕을 하나의 세계라는 현상이 상설 전시장으로 만든다."(50쪽)
어떤 도시도 같을 순 없지만, 세계적인 도시들이 갖는 특성과 달리 뉴욕만이 갖는 특성은 모든 인종이 모여있는 도시라는 점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들에 가면 여러 인종을 발견할 수 있긴하지만, 뉴욕만큼 다양하지는 않을 뿐더러 뉴욕만의 갖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만큼 두드러진 특성은 발견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1949년의 뉴욕이 오늘날의 뉴욕처럼 당시에도 세계 여러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였다는 점은 놀랍고 신기하다.
하지만,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살게 만드는 도시라는 점에서 매혹적이지만, 잠시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님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이방인에게 뉴욕에서 머무는 일은 작은 망신과 불편과 실망의 연속일 수 있으며, 그런 일은 실제로 왕왕 일어난다. 웨이터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바가지 씌우는 가게와 친절한 술집을 구별하지 못해서, 지하철을 잘못 타서, 뭘 몰라서 질문하다가 버스 운전사에게 면박을 당하고 내려야 해서, 침실에 가득한 거리의 소음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견디느라."(36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은 선망의 도시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저자도 느꼈던 '볼거리가 많은 도시'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뉴욕은 지속적인 자극 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끊임없이 제공한다."(41쪽)
그렇기에 뉴욕으로의 여행을 꿈꾸어 본다. E.B.화이트가 보고 느꼈던 뉴욕과 내가 보고 느끼게 되는 뉴욕은 어떤 부분이 겹치고 어떤 부분이 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