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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요즘 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는 행위는 간단한 메모를 할 때 빼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펜으로 장문의 글을 쓰려고 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해 컴퓨터로 글씨를 입력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색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가 없어졌다. 아니, 이제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나만의 생각을 쓰는 일기 같은 글일지라도 며칠 전 재미있게 본 영화를 감독한 영화감독의 이름이나 주연 배우들의 이름을 적으려고 할 때 갑자기 생각나지 않으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바로 검색해서 찾아 써야 할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두서 없이 쓴 것 같아 다시 읽으면서 문장을 앞뒤로 바꾸어 보거나 어울리지 않는 문장은 바로 삭제할 수 있다보니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는 글을 쓴다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쓰는 행위가 이러하다보니 문화심리학자 김정훈 소장의 <에디톨로지>는 공감이 가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편집학'이라는 거창한 담론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편집의 소산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창조라는 것은 결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가 결합하여 재구성되어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한 마우스나 아이팟에 관한 이야기 역시 스티브 잡스가 혼자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연구되어 발표되어 있던 것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다듬어 상품화 한 것을 들 수 있다. 아이팟 디자인의 경우, 유명한 산업디자이너인 디터 람스의 휴대용 전자계산기 다지인을 참고했다고 말했었던 스티브 조너선의 말처럼, 우리가 감탄하는 많은 일상용품에서부터 예술작품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결코 무에서 탄생하지 않았음을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는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이 책은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에서 소개된 다양한 심리학적 개념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발견할 수 있고 경험했던 다양한 소재가 결합되어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과 공감이 가는 글들로 가득차 있다.
예를 들면, 독일 유학시 경험했던 노트와 카드와의 차이점과 그 영향력에 관한 일화는 참 공감이 갔다. 실무에서 일을 하든, 일상적인 메모를 하든지 간에 메모를 어떤 식으로 하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꺼내보고, 재분류하는 자시만의 방식이 있을 때 자기만의 논리 혹은 자기만의 일처리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나만의 '편집력'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정리되지 않은 노트며, 메모지 그리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수많은 폴더와 파일들, 블로그에 분류되지 않은 채 저장되어 있는 글들 등이 생각이 났다.
또한 중심이 되는 변하지 않는 텍스트를 가지고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 문화적 맥락(콘텍스트)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여 새롭게 결합할 수 있음을 저명한 두 학자의 차이 비교를 통해 소개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의심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것이 탄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아이디어 관련된 책들에서 언급되었던 공통된 이야기 중의 하나가 A + B를 통해 C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학문, 개인, 기업의 능력이든지간에 독자적인 편집력을 갖게 될 때 새로운 창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 김정운의 <에디톨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