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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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잘 하는 선배의 자동차를 탔을 때의 일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운전을 척척하면서도 도로표지판을 읽지 않는 선배의 운전법에 대해 깜짝 놀랐다. 그냥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는 대로 운전을 하다보니 길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으며 거리명이나 길의 방향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는 많은 이들이 이 선배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길치'라는 거였다.

 

한번 갔었던 길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온 길의 풍경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로지 목적지만 도착하면 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내가 지나간 길이라는 점과 한번 갔었던 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것을 기억해 두면, 조금씩 변화는 길 주변의 풍경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풍경에 대해서도 놀라우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곤 한다.

 

여행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어디를 어떻게 가서 무엇을 보고 왔었는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여행의 추억일 것이다. 오로지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디어디를 봤었던 기억을 가지고만 있다면 매우 단편적일 뿐 아니라 단기기억으로 남고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처럼 편리한 여행일수록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서 걸어다니면서 다녔던 여행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읽게 된 리칭즈의 <여행의 속도>는 여행을 어떤 수단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떠나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쓴 여행에세이이다. 고속도로를 따라, 철길을 따라, 도로 위를 따라, 여객선을 타고, 도보를 따라,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다양한 여행의 풍경과 생각의 단상을 엿볼 수 있었고, 다양한 여행 수단을 이용해서 가볼 수 있는 곳이 많음에 놀랐다. 국내여행하면 자동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다양한 여행 수단을 이용해서 여행하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같은 열차라도 해안가를 달리는 열차라던가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열차와 같은 특색을 통해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느꼈던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태백으로 여행을 갔을 때 탔었던 협곡열차가 생각났다. 승객수가 적은 많은 역과 철길들이 폐쇄되었고 그 중 일부가 여행상품으로 개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협곡열차였다. 3칸 짜리 열차를 타고 산과 산 사이를 따라 놓여진 철길을 따라 가며 수많은 터널을 지날 때 각 차량마다 천장에 다르게 그려진 야광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작은 간이역에 잠깐 쉴 때 시골장터에서 찐 옥수수와 같은 간식을 사서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여행의 속도> 덕분에 지금까지 무심하게 생각했던 다양한 여행 수단을 이용해서 여행을 다니는 즐거움을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이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걸어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자전거를 타고,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기차를 타고 가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에 많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만나는 풍경과 그 풍경을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즐겨봐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자가 여행했던 방법으로 저자가 여행했던 곳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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