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을 바꿨네. 보기 좋은데."
내가 말했다. 목덜미 중간까지 깨끗하게 잘라 지금까지 내가 본 가운데서 가장 짧아 보였다. 그렇지만 내 칭찬은 거짓이 아니었다. 엘리노어는 멋져 보였다. 하기야 그녀가 머리카락을 발목까지 길렀거나 나보다.
더 짧게 잘랐더라도 내 눈엔 여전히 멋져 보였을 것이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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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발이론(單發理論)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이다.
어쩌면 로이 린델도 마서 게슬러의 이름이 새겨진 총알에 피격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엘리노어 위시가 나에겐 그 사랑의 총알이었다는 것. 그녀는 나를 깊숙이 관통했다. 그녀 이전에도 다른 여자들이 있었고 이후에도 여자들이 있었지만, 엘리노어가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그것이 영영 아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 - P144

"주저앉을 건가, 계속 뛸 건가?"
그가 물었다.
그 말에 화가 치밀었지만 나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둘 다 아니지. 난 지금 걷고 있으니까."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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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입은 배도 가라앉힌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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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새해 첫날에 자살사건이 많이 터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희망과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새해 첫날을 죽기에 딱 좋은 날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돌이킬 수 없게 될 때까지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방금 본 그 할머니처럼. - P10

피해자가 어린이인 사건들은 늘 보슈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런사건들은 그를 완전히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고 상처를 입혔다. 그 독이묻은 탄알을 막을 만큼 두꺼운 방탄조끼는 없었다. 어린이 사건들은 이세상이 잃어버린 빛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들었다. - P36

"별것 아니야. 어렸을 때 몇 번 가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산페드로까지 내려갔었어. 거기 어촌 선창가에 갔더니, 참치잡이 어부들상당수가 손에 이 말을 새겨 넣었더라고, 단단히 붙잡아. 어부 한 명한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의 좌우명, 철학 같은 거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몇 주 동안이나 거센 파도가 넘실대며 위협하는 바다에 나가 있으면,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랬어."
보슈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삶을,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단단히 붙잡아라, 그 말이지." - P99

이 세상에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을 전부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 P192

궁극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길을 자기가 선택한다. 다른 사람이 길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손을 잡고 다른 데로 이끌기도 하지만, 언제나 최종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누구에게나 상어를 막아주는 울타리가 있다. 그런데 그 울타리 문을 열고 상어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무릅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 P324

가는 길에 보슈는 조포가 발사된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발로 잔디를 뒤적이던 그는 반짝이는 놋쇠 탄피 한 개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그러고는 손바닥 위에 놓인 탄피를 한참이나 바라 보다가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까지 경찰관의 장례식에 참석 할 때마다 조포의 탄피를 주워왔다. 벌써 한 항아리 가득 모였다. - P332

"언젠가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삶이란 한 가지를, 다시 말해 속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요.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이라고요."
"뭐에 대한 속죄죠?"
"모든 것에 대해서요,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요. 인간은 누구나 용서99받기를 원하니까요." - P482

그는 항상 형사라는 직업과 경찰 배지와 임무가 없으면 자신은 길을잃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있어도 마찬가지로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그 모든 것 때문에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허무의 수의가 되어 그를 감싸고 있었다. - P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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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그 두 사람의 눈이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두 사람의 눈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눈에 특별히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눈 뒤에 있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그 공허한 절망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몰려오는 잠까지 뿌리치며 그 눈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눈을 생각할 때면 형에 대한 생각도 덩달아 떠오른다. 내 쌍둥이 형. 형이 마지순간에 자신을 죽인 살인자의 눈을 들여다보았는지 궁금하다. 형도 내가 본 것을 보았는지 궁금하다. 불꽃처럼 순수하고 사람을 상처 입히는 악. - P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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