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내오랜꿈 > 서구의 철학으로 그려내는 일본의 '얼굴'
유머로서의 유물론 문화과학 이론신서 33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이경훈 옮김 / 문화과학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유머적인 정신 상태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드물게 밖에 발견되지 않는 천분이며, 수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주는 유머적 쾌감을 맛볼 능력조차 결핍되어 있다. (프로이트, <유머>, 132쪽)

ⓒ2003 문화과학사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세계 문학계가 알아주는 일본의 문예비평가이다. 스스로 '비평가'라고 불리길 자청했지만 가라타니 고진은 단순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비평가, 평론가와는 좀 차원이 다르다. 아즈마 히로키(東 浩紀)가 이 책의 '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가라타니 고진이 스스로 비평가이기를 자청하는 것은 기존의 문예비평의 전통, 곧 비평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내고 동시대의 문학(의 경향)을 읽어낼 수 있었던 전통을 잃어버리고 '동업자비평' 수준으로 전락한 현실에 맞서고 저항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일본의 문화, 문학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마련인 우리나라에서조차 최근에 소개되고 있는 그의 저서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번역서는 '덧붙이는 글' 참조).

이를 문학평론가 홍정선 교수는 문화일보를 통해 "가라타니의 저술활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적인 학문풍토와 상당히 다른 세계다. 그는 작은 주제에 철저하게 매달리는 일본적인 아카데미즘과는 반대로 넓고 큰 문제들을 거침없이 다루는 서구적인 아카데미즘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는 문학이라는 영역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철학, 역사, 건축, 마르크시즘 등 폭넓은 세계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개방시켜왔다"고 하면서 이런 가라타니의 세계성과 열린 정신이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게 된 이유일 것이라 말하고 있다. 실제로 가라타니는 일본에서는 드물게도 천황제에 반대하는 비판적 지식인 그룹에 속한다.

<유머로서의 유물론>은 이런 가라타니 고진이 1969년부터 작업해온 것들을 모아서 엮은 '평론'집이다. 그 대부분이 미국이나 프랑스 등의 잡지에 실린 원고들이라고 한다. 평론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공간, 두 개의 19세기', '비데카르트적 코기토', '푸코와 일본', '라이프니쯔 증후군'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철학과 문학, 건축을 오가는 '메타담론'에 가까운 비평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각 글마다 따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후자의 방법을 택했는데, 그건 전적으로 필자의 일본 문학에 대한 무지 탓이다.

일본 문학이나 문화에 생경한 필자에게는 그들의 작품이나 작가들이 나열되는 문학사가 다소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푸코와 일본', '라이프니쯔 증후군'과 같이 어느 정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글부터 읽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아마도 문학보다는 철학에 익숙한 필자의 취향 탓일 것이다. 그러나 다 읽고 난 후에 생각해보니 이건 쓸데없는 선입견에 따른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글이나 단순히 철학이나 문학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문영역을 횡단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기에.

이러한 가라타니의 방법론은 어찌 보면 푸코의 '고고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푸코가 광기나 성, 권력 등 서구 근대사회의 메타담론에 입각해서 고고학적 계보학을 형성하고 있다면, 고진은 근대국가의 성립,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근대의 형성에 가장 가까이 있는 문학담론의 형성으로써 일본 근대의 기원을 파헤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에서 도입한 이러한 방법론을 이용해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에서는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원용, '에크리튀르'(Ecruture:문자/글말)에 대한 통찰을 얻어내고 이를 메이지(明治)시대의 언문일치 연구를 통해서 다시 데리다를 뒤집어 버린다.

언어에서 문자를 배제한 소쉬르 이래의 언어학의 음성중심주의를 데리다는 플라톤 이래의 서양 형이상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지만 가라타니는 근대 민족의 형성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로 보는 것이다.

"근대의 민족은 각각 '세계 제국' 안에서 분절화되어 출현한다. 그것을 정치적인 국가의 측면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계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문학'에 의해, 아니면 '미학'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 64쪽)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소쉬르, 야콥슨, 데리다는 물론 우리에게 생소한 토키에다와 같은 일본 언어학자들의 이름들이 나열되지만 결론은 (일본)언어(≒문학)를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분리해서 사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곧 일본만의 고유한 '표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라타니의 인식은 "푸코와 일본"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푸코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 관해 책을 썼던 (…) 하이데거로부터 코제브, 바르트,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 그들에겐 일본이란 서양 외부의,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nowhere)이며, 그곳에 그들의 '서구' 비판이 투사되고 있다. 그 '일본'이 그들의 표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인으로서도 '일본'은 중국이나 서양이라는 거울에 비친 표상이며, 그 경우의 '중국'과 '서양'은 어디에도 없는 장소이다. 그리고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통해 스스로의 문화를 비판하는 일은, 자기동일성을 확립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단이다." ("푸코와 일본", 107~108쪽)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들 다른 나라의 문화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의 기존의 사고틀에 맞추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가하지만 원래 '인식'이란 것의 속성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문화의 비교를 통해 보고 싶은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나 현실이 아니라 거꾸로 그 안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과도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서구 철학이나 사상을 구부러뜨리고 일본의 문학을 종횡무진 오가며 일본의 근대, 동양의 근대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본의 것, 일본의 사상을 옹호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오늘의 일본을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드러내는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히로키는 이 작업을 바로 오늘의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흔적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바다 건너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리라.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것이 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못하는 짤막한 글 "유머로서의 유물론"을 책의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유머'란 '희망'의 또다른 이름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nomadia > 프롤레타리아의 가면들 -[트랜스크리틱] 비판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프롤레타리아는 천 개의 가면을 쓴다. 그렇다고 가면 뒤에 어떤 본질이 숨어 있는 것도, 목소리 뒤에 어떤 실체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초재적인 주체성으로부터 또는 어떤 일자로부터 이데아를 분유(methexis)받지도 않는다. 그들은 세계의 표면을 횡단하고, 접속하며, 분산하며, 수렴한다. 이들은 계열이며, 양태고, 적합 관념들(adequate ideas)이며 결과적으로 기쁨과 혁명적 열정을 표현한다.

 

1848년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1871년 빠리 꼬뮌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들의 가면은 전문노동자다. 1917년 러시아에서 그들은 대중노동자의 가면을 더 선호했다. 1968년과 1977년-79년 동안 이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하나의 고원(plateaux)으로 삼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라고 외쳤다. 이때 이들은 다중이었고, 또는 사회적 노동자였다. 그리고 1994년 멕시코 라칸돈 정글에서 봉기한 싸빠띠스따들과 시애틀을 가득 매운 반세계화 시위대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전지구적 노동자로서, 다중으로서, 그리고 검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대륙간 회의를 통해 서로 악수하는 전개체적 특이성 자체가  된다. 전세계적, 세계사적 투쟁 순환의 역동적 힘(puissance)이 된다.

 

그렇다고 고진이 이런 가면 쓴, 스스로 변용(affectio)하는 분자들을 완전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파악 불가능한 미분화의 지대, 그 어두운 지대(zone obscure)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차라리 고진에게 이 질문은 철지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호일 뿐인가? 그런데 만약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괴암적인 공산당, 또는 사회당의 재현 시스템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상 맑스에게 코뮤니즘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고진 또한 그것을 잘 안다.

 

이쯤 해서 그는 맑스의 유명한 정식을 가지고 올 것이다. G-W-G'(상품-화폐-상품). 중요한 지점은 <이전>의 지점이 아니다. <이후>의 지점이다. 즉 노동자는 W-G'의 지점에 일정한 파열구를 형성할 수 있다. 즉 이때 노동자는 곧 소비자고, 일종의 <노동자=소비자>라는 새로운 투쟁 주체를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분명 노동자는 스스로가 생산한 상품의 소비자이며 여기에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가 있다는 것. 고진이 실천적(그의 표현대로라면 <도덕적>)이라고 부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불매운동>이 투쟁수단이 된다. 고진에 의하면 이 운동은 언제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과 더불어 <새로운 시스템>, 세미라티스(Semilatice)형 생산-소비 공동체가 조력해야 한다. 새로운 화폐(LETS), 다시 말해 지역간 유통과 교환에서 어떠한 실재적인 잉여도 표장하지 않는 순전한 가치 상징물로서의 화폐가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실제로 고진은 이러한 운동에 깊이 간여하고 있다.

 

문제는 고진이 <소비자=노동자> 운동에 방점을 두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그 운동의 가치 여부와는 상관없이 운동을 정당화하는 고진의 비판(비평), 트랜스크리틱 자체에 놓여 있다. 불매운동과 지역화페 운동으로 대항운동을 조직하자는 것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그러나, 고진은 코뮤니즘 운동이 자본주의적 조건 아래에서 생성된다는 맑스의 냉정한 통찰에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쓴 후 이렇게 말한다. <이 현실을 구성하는 힘 자체는 자본주의에서 온다. 그러한 의미에서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운동에 부수되는 것이고, 자본주의 자체가 낳는 대항운동으로 존재한다>(367). 고진에게 <그러한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본주의가 현실을 구성하는 힘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그것에 부수되며 결과로서만, 수동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진에 대해 우리가 너무 멀리 나간 것이 아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주체성’을 반응적(reactif)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투쟁 순환 동안 프롤레타리아가 맡아 왔던 능동적 역할들과 창조적 탈주들은 어떻게 되는가? 물론 미시적인 측면의 반동과 더 큰 측면들에서의 배신행위들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이 그랬고, 동독이 그랬으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프롤레타리아 역능의 탓인가? 고진조차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지점에서 고진의 <소비자=노동자> 주체성은 자본주의 암적 유기체의 자장 안에서 지난한 생존을 영위해야만 한다. 어떤 ‘출구’도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진의 실천이 완전히 자본에의 포섭 아래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럴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가능성이 짙을 뿐이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트랜스크리틱. 고진은 말한다. <내가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라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코드 변환(Transcoding),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어내는 시도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칸트와 마르크스에 공통된 ‘비판’(비평)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 … 일반적으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유물론에 결여된 주체적․윤리적 계기를 찾아내고자 했다. 사실 칸트는 결코 부르주아적인 철학자가 아니다. …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왕국’이나 ‘목적의 왕국’이 코뮤니즘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코뮤니즘은 그러한 도덕적 계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15-16). 고진의 언급은 매우 가공할 만한(?) 것처럼 보인다. 칸트와 맑스 ‘사이’에 고진은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칸트가 부르주아 철학자가 아닌 이유는 주로 그의 ‘영구평화론’이 도덕적 정언명법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와 목적의 왕국이고 책임 있는 도덕적 주체들이 최고선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곳, 이념들의 고향 ... 등등. 이 왕국에서 맑스와 칸트는 화해한다. 고진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어째서? 대답은 맑스와 칸트가 유사한 방법론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진도 그러려고 한다. 트랜스크리틱. 맑스는 리카도와 베일리 사이에 있었으며 헤겔과 포이어바흐를 횡단했고, 칸트는 <독단적인 합리론에 대해 경험론으로 맞서고, 독단적인 경험론에 대해 합리론으로 맞서는 일을 반복했다>(30). 따라서 고진은 맑스와 칸트 사이에 있으며, 잰걸음으로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트랜스포지션(transposition)말이다. 초월적 통각은 화폐와 더불어 이동을 행한다. 초유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화폐가 눈부신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진의 맑스주의에서 화페는 기본적으로 잉여가치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다시피 가치의 실현은 ‘이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종합은 유통 국면에서 실현된다. 잉여가치가 유통 국면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고진의 이론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는 매우 멀리 나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산업자본의 잉여가치는 단순히 노동자를 일하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노동자 자신이 사는 데서 발생하는 차액에서 얻어진다>(38).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고진이 맑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잉여가치의 원천으로서의 생산부부문을 고의적으로 탈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는 것으로 고려될 뿐이다. 고진에게 잉여가치의 최종심급은 화폐의 유통과 소비에 있다. 이로써 고진의 <소비자=노동자> 주체성의 이론적(계급적) 계보가 드러난다. <상인자본이 공간적인 차이에서 잉여가치를 얻는다면, 산업자본은 기술혁신에 의해 끊임없이 시간적으로 다른 가치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잉여가치를 얻는다>(39). 결국 잉여가치는 유통과정에서의 부등가 교환과 기술혁신이라는 두 가지 차이의 체계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짐짓 구좌파들의 무지를 꾸짖는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서는 가치 체계들 사이의 차이에서 잉여가치를 찾는 대신 그것을 생산과정의 ‘착취’에서만 찾아내는 사고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39).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잉여가치를 칸트의 초월철학에서 찾는 것보다 더 위대하게 난해한, ‘사이’의 사유과정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트랜스크리틱 말이다. 이럴 경우 최근의 신좌파들은 분명히 옛동지들의 명예를 위해 싸울 것 같다. 맑스가 블랑키를 위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상인자본의 잉여가치는 애초에 프롤레타리아와는 상관 없으며, 블랑키는 동일한 전선의 다른 계열에 속하는 공명(resonance)의 한 항(term)이기 때문이다.

 

고진이 이렇게까지 나아가는 데에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 속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산-소비 공동체 운동이 충분히 실효를 가질 수 있으며, 전체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기쁜 촉발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어째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이론의 ‘사이’ 운동과 사유의 ‘잰걸음’에 대해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 하긴 고진은 이 책을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닐 것이다. 대상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칸트일 수도 있으며, 죽은 브레즈네프나 헤겔, 키에르케고르 ... 등등 이 책에 매우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산노동’인 다중(multitude)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칸트의 정언명법에 따라 건설된 코뮤니즘의 왕국에 한 무더기의 이신론자들이 회당 꼭대기에 십자가를 내걸든 말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사적 투쟁 순환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트랜스크리틱은 그 누구의 (심지어 부르주아의) 무기도 아니며, 왼쪽으로는 맑스와 한 꾸러미의 계열을, 오른쪽으로는 칸트와 또 다른 한 꾸러미의 계열을 배치해 놓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공명도 산출하지 못한다. 상인자본 또는 쁘띠들. 고진의 <가능한 코뮤니즘>은 혹시 그런 것이 아닌가? 도대체 거기에는 저들 한가한 대학 교수들 외에 뭐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가 트랜스크리틱을 위해 그의 비판서 한 줄의 인용이라도 허용할지 의문이라고 한다 해도 괜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코뮤니즘은 가능한(possible) 것이 아니라 잠재적(virtual)이며, 현실적(actual)일 뿐이다. 칸트가 있든 없든 그 사실은 동일하다. 고진의 로도스는 신화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가면들 중에 고진의 것은 없다.   -  NomadI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끝없는 투쟁 - 가라타니 고진의 轉回
트랜스크리틱 -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트랜스크리틱』 이후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전회’라는 말을 자주 한다. 최근 출판된 『가능한 코뮤니즘』,『원리』,『NAM生成』 등에서 보이는 이론적인 고찰은 모두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에 관한 것들이라고 해도 좋으며, 가라타니 고진의 전회란 이론가 가라타니가 실천가 가라타니로 전환한 것을 막연하게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트랜스크리틱』 이전의 가라타니 고진은 역사상 출현한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자본주의의 철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산주의라는 추상적인 비전 밖에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천가로의 전회가 두드러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90년대 중반까지의 가라타니 고진으로부터 원리적인 것을 탐구, 비판하는 일관된 태도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사회적 실천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모순을 안고 있는 제도로부터 균형을 취해 이론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지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지침이란 개인이 사회성을 상실하고 차이성을 잃어 내셔널한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세계 자본주의의 다이내미즘에 몸을 맡겨 단독적으로 자유로운 개개의 결합을 지향함으로써 ‘역사의 종언’이라는 헤겔주의에 대항하는 형태로 ‘끝없는 투쟁’을 추구한다는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와이(岩井) : 개개의 자유로운 결합으로서의 공산주의라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와 어디가 다른 것입니까?

가라타니 : 같은 것입니다. (『끝없는 세계』, 203쪽)


이 책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베를린장벽 붕괴, 동구의 붕괴,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라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발생한 ‘맑스주의의 붕괴’=‘역사의 종언’을 받아들이면서 행한 것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등의 이데올로그는 냉전구조의 붕괴를 ‘역사의 종언’이라는 헤겔주의적인 비전으로 수렴한다. 이 헤겔적 비전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류가 생명을 걸고 체제선택을 위해 행하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은 소비에트연방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권이 역사적으로 패배=붕괴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기저적인 틀이 인류의 역사에서 승리함으로써 끝을 보았다. 따라서 역사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인류에 의해 선택된 것이며 이후의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기저적인 틀을 전제로서 진행하기 때문에 ‘끝났다’고 하는 비전이 그것이다. 따라서 후쿠야마 등의 이데올로그에 의하면 맑스에 대하여 자유주의 사상가로서의 헤겔이 승리한 것이며 역사는 20세기 말에 ‘끝났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물론 가라타니 고진은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의 견해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1990년대에 행해진 대담에서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강력한 역사적 비전에 대해 ‘현실을 지양하는 운동’(맑스)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주장하면서 역사의 목적이나 종언의 관념을 비판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시기의 가라타니 고진에게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 반시스템적인 마이너리티운동 등의 급진적인(radical) 민주주의=포스트 맑스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에는 단호하게 비판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은 처음부터 상황에 대해 ‘윤리’적이며 자본주의적인 경제의 비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것에 의하면 그의 ‘전회’는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냉전구조가 존재하는 시대에는 소련권의 사회주의체제와 자유주의체제의 양자를 비판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미소의 양극구조를 근저에서 지탱하는 세계자본주의의 다이내미즘을 아니러니컬하지만 긍정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제3의 길로서의 코뮤니즘을 가라타니 고진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양극구조를 지탱하는 한편이 붕괴하고 세계가 자본주의 경제권의 승리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이론가가 말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968년부터 1990년대까지 유효하다고 생각되었던 탈구축주의가 보수화되어 오히려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사고가 요청된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신칸트주의적인 도덕주의(moralism)로의 회귀가 프랑스, 독일, 미국 등에서 생겨나고 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후 이론가들은 맑스주의의 이념을 재검토하거나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전제를 인정하면서 자유경쟁과 사적 소유가 야기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안전망(safety net)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로의 사상적인 회귀=전회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물론 사회민주주의적인 강령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맑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는 서구 맑스주의의 역사의 총체, 즉 루카치, 그람시를 거쳐 알튀세르, 푸코에 이르는 계보를 비판한다. 가라타니는 루카치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임노동-자본의 관계에 적용하고 노동자가 의식의 물상화를 넘어 자본가를 타도한다는 생산중심사관을 제시한 것을 맑스를 헤겔로 후퇴시킨 것이라 비판한다. 더욱이 그람시를 거쳐 알튀세르의 국가 이데올로기장치에 이르는 이론은 혁명화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의 일상을 상부구조로 목표를 정하여 제도적인 분석을 행하는 것이지만, 가라타니가 지적하듯이 이러한 상부구조의 연구를 아무리 엄밀하게 하여도, 당연한 것이지만, 노동자계급은 혁명화되지 않고 실천적인 지침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역으로 결과적으로 이론가의 헤겔적인 ‘역사의 종언’으로의 ‘전향’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은 맑스주의에는 효과가 없다고 가라타니는 선언한다. 이러한 이론에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노동자계급과 자본가의 관계에 그릇되게 적용한 것과 생산중심주의적으로 이론을 구성한다고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가라타니는 이러한 이론이 전제로 하는 상부구조, 토대라는 이원론은 『資本論』에서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라타니에게 맑스는 『資本論』 전3권의 도달점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특히 가라타니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적인 환상으로서의 종교적인 구조, 즉 신용제도, 가치의 형이상학적인 성질 등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그는 맑스의 가치형태론을 래디컬하게 읽으면서 가치의 幻想性을 폭로하기 위해 가치가 교환의 사후성에서 발생하는 것을 강조한다. 상품의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에는 키에르케고르가 ‘공포와 전율’에서 신앙에서 윤리의 구조를 문제로 하면서 윤리적인 것을 허공에 매달고 말았듯이, 가치 그것 자체의 근거가 허공에 매달리는 계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맑스는 그것을 ‘목숨을 건 도약’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가라타니의 맑스독해에는 이러한 의미에서 종종 환상 중단적인 비평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존재하고 매수인과 매도인의 비대칭성을 강조하면서 즉물적인 실천을 환상으로 대치하는 것에 의해 환상을 해체하려고 하는 경향이 내재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가능한 코뮤니즘』의 서문에서 『트랜스크리틱』의 마지막 장을 쓸 때 큰 ‘전회’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제가 요청하는 윤리는 원리적으로 말해 타자를 단지 가치증식을 위한 수단으로 하는 시스템이며, 가라타니는 코뮤니즘을 칸트의 말인 ‘타자를 단지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를 경제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코뮤니즘이 칸트적인 것을 내재시키는 행위에 의해 확증되는 윤리적이며 절대적인 실천으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의 가라타니의 윤리에 의하면 실천은 경험적인 레벨에 머무르는데 그치고 칸트가 생각하는 정언명령의 레벨로 고려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 장에서 우연한 실천으로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실천이란 아니러니컬하게 자본주의를 긍정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추상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러한 ‘코뮤니즘’의 가능성을 노동자와 소비자 운동의 결합에서 보려고 한다. 가라타니가 지적하듯이 생산중심주의인 맑스주의는 노동자를 혁명의 주체로 파악하기 때문에 한계에 직면한다. 생산중심주의적인 노동자운동은 자본의 능동성이 노동자를 수동적으로 조직하므로 권리획득운동 이상으로는 진전하지 않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오히려 노동자가 주체로서 등장하는 장에서 가능성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본제 상품이 판매되는 시장에서 노동자는 주체로서 자본에 향할 수 있게 되며 여기에서 비로소 비폭력적이면서도 혁명적으로 노동자는 자본에 대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노동자가 저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이라는 G―W―G’의 운동을 그치게 하면 된다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그는 자본이 최종적으로 유통과정에서 밖에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을 강조하여 자본의 증식운동에 잠재되어 있는 ‘목숨을 건 도약‘을 내재시킨 환상적인 핵을 소비자운동이라는 즉물적인 실천에 의해 무산시켜 가치증식운동에 정지를 명하는 것이라 한다.


여기까지 오면 NAM을 말하는 가라타니까지 일보 전진한 것이다. 가라타니는 더욱이 잉여가치의 원천인 노동자가 자본에 자신을 팔 때에도 저항을 나타낼 수 있는 조직을 고려하고 있다. 가라타니는 자본의 무한의 가치증식운동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제 상품을 사지 않고, 자본제 상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단순명쾌한 윤리를 실천하면 된다고 하여 두 번째의 ‘전회’를 수행하는 것이다.


NAM은 생산협동조합을 통한 소비자로서의 노동운동으로서 고려되는 것이며, 그것은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소비자로서 시장에 등장하는 장면을 강조한 불매운동으로부터 한층 나아가는 형태로 발생하는 실천이다. NAM이란 노동자가 자본에 자신을 팔지 않아도 생산이 가능한 장을 창설하는 운동이다. NAM이라는 운동은 호혜성에 근거한 지역화폐의 창설에 의해 개개의 시장이 성립하는 때마다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에 자유로이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시스템이므로, 그것이 어디까지 기능하는가 그리고 그 지역화폐인 LETS에 근거한 NAM이 어느 범위까지 확대되는가라는 문제는 유감이지만 여기서 고찰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들은 가라타니의 1990년 이후의 행보를 조망하면서 그의 전회는 사회주의권이나 동구의 붕괴를 계기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그 전회가 『트랜스크리틱』의 결론부에서 소비자=노동자운동이라는 자본의 유통과정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표현된 것이다. 가라타니의 ‘희망의 원리’로서의 ‘코뮤니즘’은 칸트와 맑스를 비변증법적으로 매개하고 맑스를 칸트로부터 읽는 것, 혹은 칸트를 맑스로부터 읽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며 ‘가능한 코뮤니즘’으로서의 자본에 대한 저항운동은 윤리적인 자본에 대한 저항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NAM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공동조합적인 생산자에 의한 트랜스 내셔널한 네트워크적 생산이 만들어지는 새롭게 ‘결합된 悟性’을 초월론적인 통각으로서 기능시키는 코뮤니즘을 목적의 왕국으로서 행위에 의해 확증된 실천이성의 의미로 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어떤 뒤틀림이 있다. 왜냐하면 가라타니 자신이 이러한 LETS를 내재시킨 NAM을 ‘대항물’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후기 정보자본주의 단계의 제도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침식하는 실천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의 『트랜스크리틱』은 칸트를 맑스에 의해, 맑스를 칸트에 의해 읽는 것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다. 원래 가라타니의 이론 자체에 자본주의제도 자체가 만드는 종교적인 환상의 구조를 소박한 실천을 대치시키는 것에 의해 허무하게 한다는 비평적 혹은 환상 중단적인 경향이 내재하지만, 『트랜스크리틱』에서는 가라타니의 종래의 측면에 대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절묘하게 적용하는 것에 의해 가라타니의 논리를 기초지우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가라타니의 이론적 가능성은 칸트철학 자체의 가능성에 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칸트는 이론이성에서 인간의 정신의 무한성을 표현하는 것인 내세, 신, 영원 등의 이념을 허무화하면서 이성의 적용을 오성의 범위에 한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천이성에서는 오성의 범위에 적용된 이성이 실천이성의 우위 아래, 행위에 의해 확증된 이념의 실현으로 확장된다. 다만 칸트이론 자체의 한계와 가능성은 주체의 근거 지움을 욕망하면서 실제는 주체를 허무화시켜 현실과 이론의 관계 자체가 주체의 실천적 효과 밖에는 아닌 것, 즉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근거 짓는 이론 자체가 근거 지움 불가능이라는 불가능성을 내재시키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겔은 칸트의 초월론적인 주체를 공허한 주체로 부르며, 헤겔이론은 그 공허한 위치를 주체에게 확보하기 위해 『정신현상학』을 쓴 것이다.


가라타니의 이론은 메비우스의 띠처럼 현실과 이론이 대응관계를 가지면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가라타니에게 NAM의 실천은 자본주의사회의 종교적이며 환상적인 구조를 허무화시키고 거기에 윤리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무한하게 진행할 듯이 보이는 자본의 증식운동에 정지를 명하지만 그 운동 자체가 현재 자본주의제도 총체 자체의 내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NAM이 제출하는 공동체의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시스템과의 구별 자체를 자본주의가 내재화시킨 경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다만 NAM 자체를 메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현실과 이론의 관계를 유토피아적으로 외부로부터 조망하는 것이 가능한 시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점이 중요하기 때문에 NAM에서 주체가 윤리화되어야 할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호혜성에 기초한 LETS의 운동이 확대되어 복잡한 생산시스템을 갖게 되어 버렸을 때 맑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노동화폐’운동을 추진하는 부르동을 비판한 것처럼 자본을 창조하지 않는다고 하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운동은 자본주의사회의 환상의 구조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며, 또한 그 환상에 내재화되어 있는 경향을 부단히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가라타니는 환상의 허무화, 정지의 순간 자체를 실현하는 ‘행위’ 자체의 유물론적인 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으며, 그 환상이 중단되는 시간에서 가능성이 근원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이론에 의해 긍정하며 그것을 희망의 원리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urblue > [퍼온글] 형이상학의 해체에서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 데리다의 철학적 삶

데리다가 타계한 뒤 지난 열흘 동안 4개의 추모글을 쓰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국내에 데리다 전문가가 드물다보니 저같은 문외한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군요. 오늘 마지막 글을 써보내면서 일단 한숨은 돌렸는데, 급하게 여러 편의 글을 쓰다보니 글이 제대로 된 건지도 모르겠고 중첩되는 내용들도 좀 있고 해서, 후련한 게 아니라 꺼림칙합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짧은 시간 내에 같은 주제로 여러편의 글을 쓰지 말자는 것이라고 할까 ... -_-;;;

그 글들 중에서 비교적 평이하고 분량도 많은 것을 하나 더 올립니다. 지난 번에 가을산님이 데리다 번역본들에 관한 질문을 하셨는데, 마지막 절이 좀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조만간 보충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형이상학의 해체에서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 데리다의 철학적 삶


지난 10월 8일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타계한 데리다는 외국에서의 명성에 비한다면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철학자다. 실제로 데리다는 그가 타계한 직후 발표된 성명서에서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그는 프랑스가 배출한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을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인물이지만, 국내에는 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始祖)이자 매우 난해한 책들을 쓴 철학자라는 것, 그리고 ‘해체주의’라는 매우 특이한 철학 사조를 창안했으며, 차연(差延, différance)이라는 불가해한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일 국내의 신문들이 쏟아내는 추모 기사들, 때로는 상생(相生)의 철학자로, 때로는 ‘반골 철학자’로, 또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로’ 그를 치켜세우는 기사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누구인가? 그가 누구이길래 지성과 사상에 인색한 국내의 신문들이 이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과연 그들에게 그를 추모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현전의 형이상학의 해체

 

데리다는 난해한 사상가라는 평판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나 [기록과 차이]([글쓰기와 차이]라는 얼마간 그릇된 제목으로 번역되곤 하는) 같은 그의 몇몇 작품들은 상당히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의 저작들이 6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혀왔다는 사실은 그의 사상과 글쓰기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음을 입증해준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처럼 매혹시켰을까?

  이는 무엇보다 그의 철학의 전복적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데리다에게 서양의 철학사는 현전(現前)의 형이상학의 역사다. 생생한 현재 속에서 사태의 의미가 충만하게 의식에 드러날 때, 또는 적어도 그 가능성이 원칙적으로 전제될 때, 비로소 진리로서의 로고스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또는 로고스를 다른 사람들과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 곧 음성이야말로 참다운 매체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이러한 현전의 형이상학의 원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거나 반박하는 대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그것은 자신의 타자, 자신의 근원적 한계를 전제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데, 이 타자는 바로 에크리튀르(écriture), 곧 기록이다. 실제로 서양 형이상학은 플라톤에서 루소, 소쉬르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생생한 현재, 주체들끼리 주고받는 음성적 대화를 특권화하면서 기록을 하찮은 것으로 매도해왔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기록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적 토대다.    

  왜 기록이 그처럼 중요할까? 왜 이 주장이 그처럼 전복적이고 혁신적이었을까?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원이나 로고스가 기원이나 로고스로서 존재할 수 있으려면, 그것들은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원이나 로고스가 일회적(一回的)인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기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보존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기원도 로고스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록에 의해 비로소 기원이나 로고스가 가능하다면, 현전의 형이상학의 주장과는 달리 기원보다 앞서는 것, 로고스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록이 된다. 기원, 로고스의 이면에는 카오스의 검은 구멍만이 존재하며, 이 카오스와 로고스의 경계를 세우는 것이 기록인 셈이다.  


유령론: 타자들에 대한 환대로서의 정의

 

그러나 이렇게 해서 기원과 로고스가 현전의 형이상학 내에서, 서양의 문명 내에서 그것들이 지니던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결국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데리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그의 해체 작업에 의해 현전의 형이상학, 더 나아가 기존의 서양 문명의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삶의 질서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진의는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우리가 현전의 형이상학처럼 기원과 로고스를 근원적인 진리로 가정하게 되면, 더 이상 역사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모든 것이 기원, 로고스에 담겨 있는 이상 새로운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며, 서양 문명의 원리, 로고스의 명령에 충실한 것을 정의로 간주하는 이상, 서양의 문명과 다른 타자들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유령들] 같은 저작에서 유령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윤리ㆍ정치사상을 전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현존하는 것도 부재하는 것도 아닌 유령들이라는 형상은 기원의 부재라는 해체의 원리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에게,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이들에게 불의를 바로 잡고 정의를 실행할 것을 명령하는 타자들의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주노동자들, 인종차별과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사형수들 및 그 외 많은 “약자들”에서 이러한 유령들의 구체적인 현실태를 발견하며, 이러한 타자들의 부름, 정의에 대한 호소에 응답하고 환대하는 일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ㆍ정치적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데리다가 9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한 것은 그의 철학사상의 전개과정과 매우 합치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학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원리가 해체된 이후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다른 타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 어떻게 타자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리다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그렇다면 데리다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조로 간주하거나 생뚱맞게 상생의 철학자로 치켜세우는 일은 그의 철학이나 실천과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가 이처럼 엉뚱한 오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저작들 중 제대로 번역된 책들이 매우 드물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80여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 중 10 종 이상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번역본들은 (심지어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번역되어, 데리다 특유의 현란한 언어유희나 섬세한 논의를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삶이란 저작들의 삶과 다르지 않은데, 우리에게 데리다는 처음부터 생명을 박탈당한 유령, 환영이었던 셈이다.

  빼어났지만 그만큼 치열했던 삶을 마감함으로써 데리다는 실제로 유령, 망령이 되어 그의 저작들, 그의 기록들 안에서만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그에게서 허망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원을 쫒는 대신, 데리다가 그랬듯이, 우리도 그의 기록들 안에 깃들어 있는 타자의 부름에 귀기울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데리다의 작품들

 

 데리다는 80여권의 저서 및 아직 책으로 묶이지 않은 수백편의 논문들 및 인터뷰 등을 남겼을 만큼 다작(多作)의 철학자다. 국내에 번역된 책도『입장들』(솔, 1991)『마르크스의 유령들』(한빛, 1996),『다른 곶』(동문선, 1995),『에코그라피』(민음사, 2002)『시네 퐁주』(민음사, 1998),『불량배들』(휴머니스트, 2003),『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동문선, 2004), 『법의 힘』(문학과지성사, 2004),『테러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4) 등 10여종이 훨씬 넘고, 그에 관한 해설서도 여러 권 나와 있다.

  하지만 데리다의 책들은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비전공자들이 마구잡이로 번역하곤 해서 대부분의 데리다 저서들이 심각한 오역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중에서 번역도 괜찮고 읽을 만한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상당히 난해한 데다가 번역에도 약간 문제가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긴 하지만, 데리다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들 중 하나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입장들』은 초기 데리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며, 『에코그라피』는 90년대 이후 데리다의 작업을 개관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그리고 『다른 곶』『법의 힘』『테러 시대의 철학』은 유럽 공동체, 법과 정의, 테러와 민주주의, 주권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배경으로 데리다의 정치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들이다. 

  데리다 해설서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책들을 권하고 싶다.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시공사, 1999)는 데리다 사상 전반을 균형있게 소개하고 있는 개론서이며, 에른스트 벨러의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책세상, 2003)는 니체, 하이데거 철학과 데리다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데리다 철학의 특징을 간명하게 잘 제시해주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의 작업 중에서는 김상환 교수의 『해체론 시대의 철학』(문학과지성사, 1996) 및 이성원 엮음, 『데리다 읽기』(문학과 지성사, 1997)을 추천할 만하다. 좀더 쉬운 입문서를 원하는 독자들은 제프 콜린스의 『데리다』(김영사, 2003)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urblue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인터뷰

새로운 문학이 시작되고 있다. 영상문화에 떠밀려, 아주 작은 골방으로 들어온 문학. 그러나 그 문학은 초라해 보인다기보다는 겸손해 보인다. 그 겸손은, 세계사적 전통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자가, 즉각적인 세계의 참조 사항이, 즉 존재의 당대적 외적 가치부여 방식이 더이상 밑돈을 대주지 않는 자리에서, 존재의 조건 자체로부터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길어올린다는 의미에서, 동시에 대단한 오만이기도 하다. 이 문학은, 세계에 대고 정당성을 인준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아주 고요하지만, 그러나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미에서 격렬하다. 그 문학은 20세기를 건너뛰어 격세유전적 근원에게로 나선형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문학을 예고하는 한 젊은 작가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아직은, 속단일지 모르지만, 이 작가는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보이는 프랑스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담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성정은 미국사람들보다는 이들에게 더 가깝다. 그를 찬찬히 읽는다는 것은, 자본의 음모에 휘말려 헐떡이고 있는 세기말의 한국인에게 문학적 의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 삼아서 말한다면, 거대 담론들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젊은 작가에게 일반적인 얘기를 묻는다는 게 의미 없다고 느껴졌으므로, 그의 작품, 특히 최근작 『시간의 지배자』를 중심으로 대담을 진행시켰다. 좋은 작가는 무엇보다 작품으로 충분히 말하는 사람이니까. 따라서 작품을 미리 읽고 이 대담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여둔다.

김정란 우선 바보 같은 질문부터 던져보기로 하죠. 왜 경영학을 그만두셨어요? HEC를 나오셨는데, HEC라면 프랑스에서 최고 수재들이 진학하는 학교 아닌가요? 빛나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을 텐데…….

바타이유 경영학을 택한 건 실수였어요. 리세(중고등학교 통합과정) 다닐 때 공부를 잘했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대개 택하는 진로 중 하나를 택했던 것뿐이죠. 왜 경영학을 공부해야 하나 하고 자신에게 질문도 던져보지 않고 열여덟 살에 경영학 에콜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가 정말 마음 깊이 하고 싶어하는 건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경영학을 선택할 당시의 제 모습은 많은 프랑스 학생들의 이미지와 같아요.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무슨 수단을 쓰든 직업을 얻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이미지 말입니다.

김정란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을 거예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훌륭한 작가가 되었고.

바타이유 ,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웃음)

김정란 아니오,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에요. 바타이유 씨의 처녀작을 읽고 전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스물두 살짜리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삶의 어떤 면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쓴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나이가 지긋한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 쓴 글 같았거든요. 젊은이답게 감각이 날카로우면서도, 완벽한 자기 통제력 같은 게 느껴졌거든요. 이번 작품 『시간의 지배자』도 마찬가지였구요.

바타이유 그건 아마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노인을 나레이터로 설정했기 때문에 오는 효과일지도 몰라요. 생의 경험이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당연히 두렵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늙은 대사를 나레이터로 선택한 거죠. 그는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권력과 돈을 찾아다니며 삶을 탕진했다고, 이제 내 삶은 공허 속으로 추락할 거라는 회한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죠. 왜냐하면, 이 남자가 글쓰기를 통해서 구원과 부활을 꿈꾼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 첫머리에서 그가 여인들의 속옷과 치마들이 던져져 있는 강가를 배회하는 거예요. 썩어갈 우리의 육체를 감싸는 이 옷감들로 이제 종이가 만들어질 테니까요. 그 종이들, 책장들을 가지고 그는 자신을 구원할 거예요.

김정란, 무거운 주제군요. 글쓰기와 구원의 주제.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 이 작품에서 특히 죽음에 대해 썼어요.

김정란 첫번째 작품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도 죽음의 주제가 나왔잖아요? 죽음이 앞뒤로 맞물려 있었죠.

바타이유 조금 달라요.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 다룬 주제는 사라짐과 버림받음이죠. 예를 들면, 일곱 살에 프랑스에 온 어린 왕자 칸은 완전히 홀로 버림받고 병들어서 혼자 죽어요. 끔찍한 일이죠.

김정란 바타이유 씨에겐 그게 삶의 근본적인 조건인가요?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전 파스칼 식으로 교육받았습니다.

김정란, 그래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바타이유 씨 작품을 특히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시간의 지배자』 끝부분에 나오는, 세 번의 비명 있잖아요? 그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인간의 근원적인 비참을 알리는 비명.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품 안에도 그 비명이 나오죠. 뒤라스도 아주 파스칼적인 작가잖아요? 저 역시 마음속 깊이 파스칼적인 인간이거든요.

바타이유 가톨릭 리세를 십이 년간 다녔습니다. 프랑스에선 드문 일이죠. 사제들에게서 교육받았다는 것이 제 문학의 모든 특성, 특히 문학을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선 상당히 중요한 점인 것 같아요. 신을 믿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제 주인공들은 인간의 비참이라는 문제 앞에 홀로 대면하거든요.

김정란 『시간의 지배자』를 번역하기 전에, 일간지에 난 기사들을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인터뷰에서 밝히신 바에 따르면, 베트남 여행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라구요. 왜 하필 베트남인가요?

바타이유 유럽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대학에서 경영자 수련과정으로 외국 트레이닝 코스가 있었거든요. 처음엔 스위스엘 갈까, 아니면 영국엘 갈까 하고 망설였죠. 그러다가 베트남을 택하게 되었는데, 스무 살짜리 젊은이들이 잘 그러듯이 어떤 도전의식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가 잘 모르는 이국적인 나라를 택하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오 개월 과정으로 베트남으로 떠났는데, 그곳에서 겪었던 고독이 내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버렸어요.

지독한 더위였어요. 그리고 말도 못하게 끈적거리구요. 식물들은 무시무시하게 울창하고요. 많이 힘들었죠. 왜냐하면 집에서 떠날 때만 해도 전화를 하거나 팩스를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전화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구요. 그 누구하고도 이야길 나눌 수 없었던 거죠. 프랑스에 돌아온 뒤에, 그 고독의 경험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20세기 말에 혼자가 된다, 자, 그럼 3세기 전 어느 날인가 자신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 베트남으로 떠났던 그 선교사들은 어떤 걸 느꼈을까. 난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내 첫번째 소설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일종의 기도였다고 생각해요. 100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책인데, 포교를 포기하고 수도사들에게 금지되어 있는 사랑을 하고 죽어가는 수녀와 수사의 이야기죠. 스무 살짜리가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엉뚱한 생각이었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내가 버림받음과 침묵에 대해 쓰고 싶어했다는 사실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정란 그러나 역사가 있잖아요? 대문자로 씌어지는 역사일지는 몰라도. 한 명의 아시아 여자로 난 이 선택에 관심이 많거든요. 작가는 왜 하필 식민주의에 의해 고통당한 나라를 선택했을까? 그 고독은 바타이유 씨에겐 개인적인 고독이지만, 제겐 베트남의 고독으로 느껴져요. 특히 고통스러워하는 나라의 고독으로요.

바타이유 제가 1992년에 이 나라에 가겠다고 결정한 건 어쩌면 역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천 년간 중국인의 지배하에 있었고, 백오십 년간 프랑스인에게 식민통치를 받았고, 삼십 년간 공산주의 지배를 받은 나라였으니까요. 겉으로 보기에 사이공 같은 도시는 멀쩡해 보이죠. 아시아의 파리라고 불리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죠. 겉모습 아래엔 학살과 전쟁의 피가 가득 차 있어요. 그러니까 프랑스인에게 베트남을 향해 다가간다는 건 회한을 향해 다가간다는 의미예요. 베트남은 프랑스에겐 커다란 실수니까요. 난 소설 속에서 그 실수를 향해 두세 명의 수도사들을 데리고 다가갔던 거죠. 굉장한 야심이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베트남 안에서 점점 더 조국과 종교로부터 버림받게 돼요. 그리고 점점 더 자유로워지죠. 점점 더 헐벗고요.

김정란 주인공들이 현대적 삶으로부터 떠날수록 베트남의 오지로 들어가고, 오지로 들어갈수록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록 설정하셨더군요.

바타이유 그건 해방과 상승을 말하는 장치입니다. 세속의 삶으로부터 떠나서 그들은 자신의 따스하고 가벼운 육체를 발견해요. 자신들을 육체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죽습니다. 죽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겉으로 보면 이들이 불행해 보일 수도 있어요. 모든 접촉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 그들은 미소를 짓고 있죠.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신성한 데가 있어요. 이 책의 결말은 주인공들로서도 전혀 예상치 않은 것이었을걸요.

김정란 한국에선 선교사의 이미지가 좀 그래요.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어떤 역사적 상처로부터 자유롭질 못한데, 선교사들이 많은 경우 식민정책의 첨병 노릇을 하니까…….

바타이유 제 선택은 어렵지 않았어요. 병사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죠. 반면에 수도사들은 경직되어 있는 선교사들, 즉 식민주의자들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부드럽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죠. 그들과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가까워지죠. 베트남 사람들은 개종하지 않았어요. 개종한 건 오히려 수도사들이죠. 그들은 그들의 단순한 교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포기해버려요. 그들은 자기들이 환경 때문에 신앙을 잃게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겠죠.

김정란 하지만 그들과 원주민들은 새로운 신앙 안에서 만난 것 아닌가요? 도그마가 아닌 신앙 말예요. 아니, 오히려 새로운 조건이라고 말해야 할까?

바타이유 그래요. 새로운 조건이죠. 인간성에 대한 확신이라는 조건. 처음에 그들은 별로 인간적이질 않았죠. 왕의 명을 받아서, 십자가를 들고, 제복을 입고 도착했으니까. 그들이 새로 발견한 신앙은 일종의 혼합 종교죠. 가톨릭적 바탕에 더하기 지혜, 젊음, 우주 안에서의 현존.

김정란 바타이유 씨 첫번째 소설을 읽고, 아주 소박하지만 동시에 오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생의 문제, 아니면 패러독스를 해결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상업성은 없겠지만, 그건 굉장한 형이상학적 야심이죠.

바타이유 사실 오만한 책이긴 하죠. 제 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더라면 그럴 뻔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책은 비극으로 끝나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겁니다.

김정란 장래가 보장된 직업을 버리고 작가가 된 것도 일종의 오만 아닌가요?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그 선택 자체가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 또는 도전 아녜요? 내가 과장하는 건가요? 바타이유 씨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은데…… 프랑스라고 해도 말이죠. 어쨌든 『람세스』처럼 팔리진 않을 거잖아요. (웃음)

바타이유 불행히도 아니죠. (웃음) 하지만 주제에 비하면 꽤 많이 팔렸어요. 제 책이 무척 어둡잖아요. 아까 오만과 도전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래요, 사실 그렇죠. 하지만 전 작은 사물들을 통해서 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해요. 『시간의 지배자』는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해서 모든 것을 유지시켜보려고 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무질서는 죽음이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죽음을 해결하려는 시도죠. 그런 의미에서 오만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작은 기계장치, 여기서는 시계를 통해서 추구가 이루어져요. 『시간의 지배자』는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소설이 아닙니다. 시간에 대해서 뭘 말할 수 있겠어요? 시계를 선택한 건, 그건 그냥 말하는 방식일 뿐이죠. 시간을 맞추는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 그는 범죄자예요. 죽음, 그의 시계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그는 오히려 카오스가 시테 안에 자리잡게 만들어요. 카오스는 시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강간당한 그의 딸을 통해 시테 안에 들어오죠. 왜냐하면, 강간이란 찢어진 살을 의미하는 것이고, 카오스는 살 안에 깃들여 있는 것이니까요. 헬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랑에 대한 감각을 가진 여자, 부드럽고, 섬세한 헬렌은 책의 끝부분에서 다시 아기를 가지게 돼요. 아르투로가 떠난 지 한참 뒤인 이 년 후에 가진 아기이니까, 아르투로는 아버지일 수가 없죠. 아버지는 결국 공자그겠죠. 그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공자그라는 시체를 연인으로 가지게 한다는 건,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에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도망쳐버린 아르투로는 그런 의미에서 범죄자입니다.

김정란 해결하지 않은 게 아니고,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아닌가요?

바타이유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오만하지만 동시에 겸손한 소설입니다.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에요. 나레이터 역시 죽을 사람이죠. 죽을 사람이 한 소녀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형식을 택한 겁니다. 장소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는 베르사이유에서 말하지만, 불 꺼진 베르사이유, 끝나버린 베르사이유, 가을의 베르사이유예요.

김정란 바타이유 씨의 소설 세 권이 모두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거든요. 그 시대에 특별히 매혹되어 있는 건가요?

바타이유 편의상 그 시대를 선택한 것이기도 해요.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예로 든다면, 만일 오늘날을 배경으로 베트남에 대해서 썼다면 우스꽝스러웠을 거예요. 제가 택하는 시대는 역사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 밖에 있지요. 과거 시대를 택하면, 덤으로 생겨나는 효과가 있어요. 깊고 비극적인 울림이 생겨나거든요. 『시간의 지배자』도 마찬가지예요. 난 이 소설이 당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똑같아요. 권력과의 관계, 남자들의 행태, 여자를 취급하는 방식. 난 이 책이 과거의 텍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극적 차원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신하들과 공자그의 관계는 기업에서 사장과 근로자들이 맺는 관계와 똑같아요. 인간 조건의 차원은 전혀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가 이 시대(1700~1715년경)를 택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이 시기는 루이 14세 시대 말기입니다. 루이 14세의 시대는 멋진 시대였지만, 절망스러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왕은 지치고, 왕궁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몰래 후궁들을 계속 맞아들이고…… 그러니까 그 시대는, 제 소설에 나오는 메타포를 인용한다면, “바위에 깃들여 있는 죽음”이에요.

김정란 전 이 시대의 선택을 그렇게 해석했어요. 이 작가는 20세기의 인류가 기대고 있었던 패러다임이 부서져버린 것을 예감하고, 20세기 패러다임의 근원지로 돌아가본 거라구요. 즉 근대성 패러다임, 국가 정체성을 발생시킨 근원지지요. 근원지로 돌아가 옛날 패러다임이 발생시킨 타자들을 뒤져내는 거라고요. 그래서 궁전의 하인들을 주인공으로 택한 것 아닌가요?

바타이유 탁월한 해석이군요. 하지만 난 그렇게 깊이까지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내가 궁정 하인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밤에 촛불을 들고 시계를 맞추러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나이의 이미지가 얻어졌죠. 난 무엇보다도 왕국의 어떤 비전을, 천국의 이면을 살펴보고 싶었어요.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발견했을 비전, 어떤 형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낮의 사람들인 권력자들은 그걸 보지 못하죠. 그에겐 모든 것이 가려져 있어요. 낮의 베르사이유는 우월한 버전이죠. 그러나 다른 버전도 있어요. 그건 베르사이유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분지, 호수, 늪지대예요. 그건 결국 디오니소스적 통행로, 켈트적 요소들이죠. 다른 쪽에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함께 프랑스적 질서가 자리잡고 있고요. 사물들을 질서 속에 유지시키려고 애쓰지만, 한순간 디오니소스가, 옛날의 바탕이 돌아옵니다. 그건 폭력성, 잔인함이죠. 바위 속에 숨겨진 저주처럼 말예요.

김정란 시테의 어두운 분위기가 그걸 말해주는 장치겠군요. 주인공 이름 아르투로가 재미있어요. 전형적인 유럽 이름이면서도 혼성 문화적이거든요. 귀족적인 이름인데, 어쩐지 좀 동양적으로, 타르타르적으로 느껴져요. 어떻게 정해진 거죠?

바타이유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라고 그렇게 정했어요. 프랑스어로 O로 끝나는 이름은 어쩐지 좀 웃기게 들리거든요.

김정란 아더와는 연관이 없나요? 킹 아더? 그도 역시 세계의 구원자가 아닌가요?

바타이유 약간은요. 카멜롯의 아더 말예요. 그러나 프랑스에서 아르투로는 촌스런 이름이에요. 아르투로는 키가 크고, 패션감각도 없고, 말도 할 줄 몰라요. 한마디로 농부 같은 사람이죠. 아르투로는 침묵입니다. 반면에 헬렌은 말을 잘하죠.

김정란 그건 이를테면, 문학의 자질 아닌가요?

바타이유 아르투로­헬렌 부부를 통해서 내가 보이려고 했던 것은, 오히려 어떤 구어 전통 같은 것이었어요, 헬렌은 목소리이고, 아르투로는 육체지요.

김정란, 그래요! 몸이 알고 있는 언어, 남자들에게서 사장되어버린, 남자들이 어둠 속에 파묻어버린, 그러나 여자의 음성을 통해서 햇빛 속으로 불려나오는 말이란 말이군요. 이를테면 어떤 ‘잠재적 문학’ 같은 개념이겠군요!

바타이유 틀림없습니다. 정확하게 보고 계시군요.

김정란 내게는 로도이프스카가 그 언어의 상징일 거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러나 바타이유 씨는 작품 말미에서 그녀를 죽여버렸죠. 그녀는 삶 안에서 생존 형식을 얻지 못해요. 난 그녀가 아직 오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바타이유 바로 그렇습니다. 그녀의 얘기는 좀 복잡합니다. 처음엔 로도이프스카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나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쓰다보니까 조금 달라졌어요. 그녀에 대해선 아직 무언가 잘 쓰지 못하겠더라구요.

김정란 로도이프스카는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에 의해 강간당하죠. 공자그는 여자의 살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니까. 공자그는 나에겐 물질주의, 또는 권력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타이유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는 소유에 대한 광기이죠. 그와 로도이프스카의 관계는 미묘해요. 공자그가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하려 했는지, 아니면 아르투로의 딸을 소유하려 했는지 분명하지 않거든요. 공자그는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함으로써 아르투로를 지배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로도이프스카는 일종의 전달 장치인 셈이죠. 로도이프스카를 소유한다는 건 공자그에게는 아르투로에게 누가 아르투로의 주인인가를 보여주는 방법도 되는 거죠. 아르투로는 복수하지 않고 도망가요. 떠나버리죠.

김정란 아무 데로나 가버리죠. 아니면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갔든가.

바타이유 사라진 거예요. 공자그의 태도를 ‘권력’말고, ‘권태’로 설명할 수도 있어요. 그는 여자, 문학, 도서관, 그런 식으로 계속 오락을 찾아다니죠. 결국 마지막엔 로도이프스카를 강간하죠. 그의 마지막 오락은 잔인함이죠. 그것이 강간의 동기예요. 한순간, 그는 한 여자의 육체에 물리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진짜 힘을 소유했다고 느끼는 거죠. 중요한 건, 그녀가 자기가 파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강간의 도착적 쾌락이죠. 그건 더 나쁜 일이에요.

김정란 『시간의 지배자』에선 시계가 중심 상징으로 나오죠. 218개의 시계가 나오는데, 그 숫자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바타이유 아뇨. 난 숫자를 믿지 않아요. 무엇인가 의미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난 그것이 엄청난 숫자라고 생각해요. 엄청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베르사이유에는 약 6백 개 정도의 벽시계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2백 개 정도는 가능한 숫자죠.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샤를르 캥(샤를르 5세)이 스페인의 성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을 때 일인데요. 어느 날인가 꿈속에서 40개의 벽시계가 한꺼번에 울리는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해보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40개의 벽시계는 수학적으로 무한에 가깝다는 거지요.

김정란 아르투로의 태도 중에서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한 시간 늦게 가는 고장난 시계를 다 분해하고 난 뒤에, 고장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모순을 견디는 태도지요. 말하자면, 어떤 동양적 견딤, 똘레랑스를 알고 있는 거죠.

바타이유 그리고 동시에, 그가 나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 나약함 때문에 그는 로도이프스카를 공자그의 품에 내던지죠. 물론, 그 때문에 그가 공자그처럼 편집광적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는 결국 운명이 굴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사람이에요.

김정란 그건 결국 『시간의 지배자』 전체를 덮고 있는 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헝겊’과 ‘속옷’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지 않나요? 몸에 아주 가까운, 꼭 조이는 코사쥬, 투명한 헝겊. 아르투로가 오간디 보자기 위에 시계 부품을 늘어놓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바타이유 그 장면에서 드러나는 건 특히 살과 시간과의 싸움이죠. 아르투로는 그래서 매일 밤 시계 부품들을 재조립하는 거지요. 하지만, 공자그는 그걸 잘 견디질 못해요. 그는 분명히 살을 택했으니까요.

김정란 아르투로는 밤의 존재지요. 그렇지만 헬렌과의 결혼에 의해서 그는 낮의 자질을 흡수하게 되잖아요? 여자의 존재에 의해서 디오니소스적인 살이 아폴로적인 살로 바뀌잖아요. 결혼 전에 문을 꽁꽁 닫고 커튼을 치고 살던 그가 결혼 후에 비로소 빛을 만나는 걸로 묘사하셨던데…….

바타이유 정확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냥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서른다섯 살이나 마흔 살 먹은 독신남성이 사는 방식 말예요. 엉망으로 살죠. 여자를 얻으면 사는 게 좀 나아지니까. (웃음)

김정란 에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던데요.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작품 안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던데요.

바타이유 그래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요.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왕궁 안에서 무질서가 허용되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그 무질서를 누리기 위해서 ‘다른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거죠. 왕궁은 일종의 공식적인 장소예요. 모든 것이 조직화되어 있죠. 궁정사람들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는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약간의 가벼움을 용인합니다. 아르투로의 아파트는 약간의 카오스예요.

김정란 포스트모던한 태도죠. 카오스를 로고스로 통제하지 않고 견디는 거죠. 그런데, 아르투로는 시계를 꼬박꼬박 맞추거든요. 그건 분명히 모던한 태도구요. 그건 바타이유 씨 작품 전반에서 읽히는 완벽한 통제력과 맞물려 있어요. 그런 특성을 어떤 평론가들은 ‘고전주의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이게 아주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바타이유 씨 작품은 그렇게 통제되어 있고,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는데도 어딘가 부서져 있어요. 어떤 신비한 비논리, 또는 비규정성이 안개처럼 작품을 감싸고 있거든요. 그게 뭘까? 그래서 난 이 작가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어떤 오솔길을 찾아내었다”라고 썼어요.

바타이유 아주 흥미로운 해석이군요. 하지만, 그건 제가 일부러 시도한 건 아녜요. 어쨌든, 아르투로에게 포스트모던한 데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가 기계만을 만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는 지성의 인간이 아니라 직관의 인간이죠. 그는 생각하지 않고 느껴요. 특히 밤의 소리, 무한의 소리를 듣죠.

김정란 그 직관적 비논리가 폭발하는 장면이 강간의 장면 아닌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난 그 장면이 너무나 좋았어요. 어떤 아름다운 잔인함. 아주 잘 형식화된 잔인함이라고 할까? 난 로도이프스카가 지르는 세 번의 비명 소리가 그녀의 아버지의 세 번의 야간 순찰과 겹쳐진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네번째의 비명은 헬렌이 가지고 있는 그 아기 아닌가요? 어때요? 그 네번째 비명은 세계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노래가 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거죠.

바타이유 아기가 나오려면 일 년은 기다려야 하니까, 일 년 뒤에나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어쨌든 그 아기는 희망의 기호입니다. 모두들 다 죽은 다음에도 한줄기 빛이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이죠. 어쩌면 로도이프스카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느껴져서 그 아기의 아버지를 공자그로 설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강간의 장면만 해도 그래요. 전혀 현실적이지 않거든요. 그건 강간이 아녜요. 피도 살도 없어요. 내가 써놓고도 비현실적 순간처럼 느껴져요.

김정란 전 로도이프스카를 작은 프란체스코라고 불렀어요. 그녀가 짐승의 말에 가까운 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녀의 비명은 일종의 말하기 방식 아닌가요? 응결된 말. 아니면, 말에 대한 거부로서의 말하기.

바타이유 이 비명에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이건 로도이프스카가 시테에 말하는 방식이에요. 그 비명 때문에 시테 전체가 사건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날 바닷가에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죠.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러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헬렌도, 아르투로도, 그 누구도. 밤에 일하니까 분명히 깨어 있었을 아르투로도 꼼짝하지 않았어요. 이 비명은 반향이 없는 비명입니다. 무거운 납으로 짓눌려 있어요.

김정란 원초적 살인사건 같은 거죠.

바타이유 결과가 없는 행동.

김정란 이미 저질러졌고, 그리고 그것에 대항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건.

바타이유 , 정확해요. 그 때문에 내가 책 앞머리에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한 거죠. 시테는 침묵했지만, 분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게 바로 강간―부서진 살에 대한 비전, 그리고 그것이 어떤 위치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죠. 그런데 위치가 없는 거죠. 그건 그냥 벌어진 일일 뿐이에요. 이미지죠.

김정란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제로부터 다시 출발하면 되죠, 뭐.

바타이유 제로보다 못한 데에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르죠. (웃음)

김정란 이 정교한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가요? 어떻게 작업하세요?

바타이유 처음엔 몇 개의 이미지가 있어요. 베르사이유의 오두막에서 밤에 일하는 하인이 생각났다든가 하는 식으로 어떤 합리적 요소들이 있어요. 그런데, 나머진 어떻게 씌어지는지 잘 모르겠어요.

김정란 아마 천재성이 받아쓰기를 시키나보죠?

바타이유, 설마…….

김정란 바타이유 씨의 작품은 삶에 대해 깊이 절망한 사람이 쓴 책처럼 보여요. 어떤 이유라도 있나요? 어떤 인터뷰에선가 “난 현대가 추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걸 보았는데…….

바타이유 그건 제 확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 난 의식하고 있습니다. 부자이고, 힘세고, 과거가 찬란했던 나라 사람으로서 쉽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내가 “세계는 추악한 곳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부자나라 국민의 예술적 시각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 느낌은 분명해요. 난 세계가 추악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진정한 유일한 이유예요.

김정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걸 문학의 이유로 생각하신다는 거죠?

바타이유 싸움입니다. 제 감각으론 언제나 싸움입니다.

김정란 역시 파스칼리엥다운 용어로군요. 벌써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싸움 아닌가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바타이유 흥미로운 건, 세계가 추악한 곳이라면, 문학 역시 추악한 것을 사용한다는 얘기거든요. 예를 들어서 포크너는 강간에 대해서 무려 3백 페이지 가량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의해서, 그 추악함이 윤리적인 것으로 바뀌어버려요. 도스토예프스키도 그 비슷한 말을 했어요. 그의 말은 일종의 종교적인 언급이지만, 신의 현존 안에서든, 밖에서든, 전 아름다운 것을 찾아요.

김정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 책에는 어떤 종교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신도 등장하지 않고, 신의 이름도 말해지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존재를 찾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바타이유 그렇습니다. 신은 없지만, 신이라는 목표가 없는 건 아녜요. 하지만 성공하고 있지 못한 목표죠. 언젠가 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내 등장인물들 중에서 그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은 헬렌뿐이에요. 사실, 신을 만날 수 있는 자질은 사랑으로부터 오는 것이거든요. 그녀만이 제대로 사랑할 줄 알죠. 사람들이 공자그에게서 용서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즉, 신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신에 대한 감각은 사랑을 통해 드러나거든요. 사랑에는, 그것이 아무리 괴상하고 폭력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기독교적 의미가 있어요. 자기자신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악마적인 것이죠.

김정란 이제 작품 밖으로 조금 나가볼까요? 약관 22세에 쓴 『다다를 수 없는 나라』부터 평단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으셨는데, 그런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셨나요?

바타이유 아뇨, 전혀. 하지만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잘 썼다고 칭찬해준다고 들뜰 이유 없어요. 결국 저 자신에게 달린 문제죠.

김정란 요샌 예술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몽땅 영화판으로 몰리는 추세잖아요? 프랑스만 해도 30세 미만의 재능 있는 시네아스트들이 진을 치고 있고…….

바타이유 그래요. 괜찮은 친구들이 많죠. 하지만, 영화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거든요. 그 점도 중요한 요소죠.

김정란 문학은 지원 안 해줘요?

바타이유 문학은 없어요.

김정란 어떤 작가들을 좋아하세요?

바타이유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계속 발견해가고 있는 중이니까. 도스토예프스키, 포크너, 클로델, 보들레르, 랭보, 라 로슈푸코, 복음서 저자들, 생종 페르스 등등.

김정란 프랑스 문단은 어때요? 간단하게 묘사해줄 수 있어요?

바타이유 베르사이유죠. 좀더 요란하거나 덜 요란한 코스츔을 입은 15명 정도의 권력자들이 중앙에 포진하고 있고, 그들을 3천 명 정도의 궁인들이 둘러싸고 있죠. 어디나 다 똑같지 않은가요?

김정란 궁녀들은 없어요? (웃음)

바타이유 물론, 다행히도, 있죠. (웃음) 재능 있는 작가들이 많아요.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없지만, 기다려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프랑스 문단은 1895년 상황과 비슷하거든요. 말라르메와 랭보가 사라졌지만, 벌써 지드, 클로델, 발레리, 생종 페르스 등이 대기하고 있었거든요. 사르트르, 아롱, 들뢰즈, 푸코, 사로트 등의 대가들이 지난 삼십 년 동안 모두 세상을 떠났어요. 지금 나타나지 않았다 뿐이지 어딘가 숨어 있는 작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정말 굉장히 힘차고 아름다운 걸 만들어내고 있거든요.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은 정말 기차요. 같은 영화는 너무나 힘차고 아름답거든요.

김정란 아주 야만적이면서도 도시적이죠. 아름다운 잔인성. 그러면서도 생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감각이 있어요.

바타이유 카프카가 그랬어요. “책이란 무엇인가? 그건 균열이다.” 읽고 나서 무언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요즈음 책들에선 그게 안 느껴져요.

김정란 영상 문화 앞에서 문학이 너무 주눅들어 있는 건가요?

바타이유 아뇨, 꼭 그렇다고 생각 안 해요. 물량적으로 하도 밀고 들어와서 그렇지, 많은 영화들은 쓰레기들이죠. 문학은 약한 입장이긴 하지만 폭발의 핵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발표 당시엔 15페이지 정도의 팜플렛 같은 책이었거든요. 그 당시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김정란 그땐 영화가 없었잖아요. (웃음)

바타이유 글쎄, 그런가요? 어쨌든, 기다릴 줄도 알아야죠. 그래서 편집자의 입장에서도 전 대가들보다는 젊고 이름 없는 친구들을 돌보는 쪽이죠. 그들 중에 미래의 랭보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김정란 당신 자신은 아닌가요? 이런 게 그야말로 독­아첨인가?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전체가 상업주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 같아요. 프랑스는 어떤가요?

바타이유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출판 유통의 위기죠. 책들을 도통 안 사거든요. 그나마 인문학 책을 사는 사람들마저도 영성이나 종교에 대한 책들만 사요. 파라셀즈, 프리메이슨단, 연금술 등등. 인문학이 힘을 잃고 있는 반면에 신에 대한 추구는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거죠.

김정란 그건 인문학이 대중의 요구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바타이유 그런 측면도 있겠죠. 어쨌든 이런 반응이 어떤 특별한 콘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하나의 콘텍스트가 끝났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련의 현상들이 있어요. 사회학, 생태학 책들은 이미 충분히 소비되었거든요. 지금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김정란 기다리면서, 당신의 문학이 훗날 폭발의 핵이 되길 바랍니다. 어쨌든, 지구의 어디에선가 진지한 태도로 글을 쓴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오랜 시간 애쓰셨습니다.

바타이유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되어 많이 기쁩니다. 앞으로도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