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의 계절.

 

여름.

 

쏟아져 나오는 미스터리 & 스릴러의 폭풍 속에서

 

야심차게 나타났던 비채의 삼종세트

 

 대단히 좋은 책들이었다.

 

로버트 크레이스의 마력(not 매력, 마력)적인 스탠드얼론 <데몰리션 엔젤>

고 정태원 선생님의 마지막 책 <셜록홈즈의 라이벌들>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속항설백물어>


 

 책의 질적 수준에 비해 너무 안 팔리고 있는 것 같지만

 

읽은 후 굉장히 만족스러웠기에

꾸준히 찾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비채의 여름은 끝나가는가 싶었는데

 



 

그런데.

 

8월말에 다시 한 번 몰아치는 비채의 라인업은 심상치가 않다.

 

7월과 8월은 바뀌었어야 되지 않나 싶지만 (쿨럭...)

 

어쨌든 꽤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

 



 

<658, 우연히> 부터

 



 

일미 세권까지 눈을 돌릴 수 없는 책들이다.

 

이 중에서 미쓰다 신조의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의 후속으로 '도조 겐야' 시리즈.

 

잘린머리가 도조 겐야 시리즈 3번째였지만

딱히 이전 책을 읽지 않아도 무방한 스타일이라서 상관없다.

 

산마처럼부터 올라간 주가는

미즈치처럼 가라 앉는 것이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면서

뛰어남까지 보장하는 시리즈가 되었기에.

올 여름 비채의 효자는 바로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658, 우연히

가 산마처럼보다 잘 팔려야

출판사는 기운이 날텐데...

 

<클라인의 항아리>와 <일곱도시 이야기> 는 상대적으로 묻힐 가능성이 많지만

숨은 보물로 회자될 가능성도 많다.

 

창룡전을 읽다 집어던진 이후로 지겨운 작가라고 생각하던 다나카 요시키지만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의 작가인데다가

시기가 '은하영웅전설'의 야심찬 재간과 맞물려 있기에

국내 다나카 요시키의 팬이라면 이 책을 잡을 공산이 크다.

 

<클라인의 항아리>는 읽어봐야 알 수 있을 듯하지만 설정자체가 굉장히 흥미롭다.

 

 

78월 나온 비채의 7권의 책은

사실 그 어떤 출판사의 책보다도 양도 질도 다양함까지도 임팩트가 엄청나다.

 

다소 실망했던 올초의 행보와는 달리

장르소설의 강자 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려는 듯....



 

날씨가 서늘해진다고 가을이 아니다.

비채가 시들해지면 그 때가 가을이다.

 

봄에는 봄나물 씹듯 씹었던 비채가

여름엔 냉장고처럼 자주보게 되고

선풍기처럼 껴안고 살게 되다니

 

책읽기의 4계란 오묘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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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로라 리프먼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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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립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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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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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의 술이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子不語는 怪, 力, 亂, 神이러시다.]

 

 공자는 괴이한 것, 힘센 것, 인간의 이치를 어지럽히는 행위, 귀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뜬금없이 공자로 글을 시작한 까닭은 오늘 살짝 억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

 

 조선시대 유교를 토대로 나라를 유지했던 터에, 아무래도 공자의 저런 말을 본으로 삼았던 나라에서 괴이한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자료로 남기고 발전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불교나 민간신앙, 무속 등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야기는 꽤 있을테지만 과연 이웃나라 일본만큼 괴담과 귀신이 우리에게 밀접하게 닿아 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긍정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괴담, 요괴는 수많은 만화, 게임, 영화의 소재가 되는 훌륭한 자원이다.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기록한 포켓몬스터의 경우 많은 부분 '요괴'의 이미지나 속성을 잘 이용한 좋은 예일 것 같다. 일본에도 물론 유교가 전파되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꽤 자유로운 문화를 보면 그 영향은 우리에 비해 미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이나 종교 면에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공자가 버린 괴,력,난,신에 대한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꽤 잘 보존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세한 건 모른다. 넘겨 짚고 겉핥고 아님 말고.)

 

 일본의 장르소설에도 괴담, 요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 중 거의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작가가 있다. '교고쿠 나쓰히코'.

  샤바케>나 <음양사> 등의 소설 또한 매력이 넘치겠지만 요괴소설 (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중에서 교고쿠 나쓰히코처럼 기괴함과 작품의 무게, 재미를 모두 갖추기란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를 위시한 백귀야행 시리즈와  <항설백물어> 시리즈로 유명한 그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웹진 판타스틱의 '교고쿠도 월드'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다. http://cafe.naver.com/nfantastique/1150  (저는 별 말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 이보쇼 선생, 세상에는 건드려서는 아니 될 대상이 있는 게요. "

"건드려서는 아니 될 대상...... 이라고요."

"그렇소. 보아서도, 들어서도 아니 되지. 들쑤셔서도 아니 될 일이오. 건드리자마자 재앙이 덮칠 무시무시한 대상이란 게...... 있소이다 선생. "

                                                                                                                                                          - '고와이' 중에서

 

  <항설백물어>를 읽지 않은 상황에서 <속 항설백물어> 를 잡았다. 교고쿠도 시리즈보다는 조금 시시해 보였으나 특유의 장광설이 그다지 많지 않아보여 편하게 읽어 나갔다. 그저 요괴를 소재로 이런저런 단편을 연작형식으로 묶은 것이겠거니 했는데 서서히 커다란 줄기가 드러나면서 작품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주인공 모모스케는 기담을 모으는 게 하는 일의 전부인 순진한 글쟁이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우연히 마타하치라는 정체불명의 사내와 연을 맺게 된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타하치는 요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호리병에서 여우를 꺼내 주술을 쓴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요괴라는 개념을 사람들 머릿 속에 심거나 지우면서 일종의 '사기'를 치는 셈이다. 마타하치를 중심으로 한 '소악당' 들은 언제나 잘 짜여진 판을 벌여 원수를 갚거나 정의를 실현하는데  (혹은 부적을 팔아먹거나.) 이런 과정은 '교고쿠도' 시리즈와도 상당히 닮았다. 팀을 짜서 '공사'를 통해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에서 '타짜'라던가'오션스 일레븐' 같은 영화도 문득 떠올랐고. 여튼. 

 

 처음 몇 작품은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다소 밋밋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요괴 이야기에 요괴란 사실은 어떤어떤 소문에서 비롯된 것이고 진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런 패턴이 과거를 무대로 매력적이기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닌 것 같다고 여기던 중에도 묘하게 증폭되는 긴장감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치닌미사키' 에 관한 풍문이었고 악녀 시라키쿠에 대한 언급들이었다.

 

 

 '후나유레이' '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로진노히' 로 이어지는 마지막 세 이야기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라붙는 '교고쿠 나쓰히코' 식의 글빨을 느낄 수 있다. 독자는 우연히 이야기 너머의 잔혹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황급히 돌아서지만 작가는 어느새 다가와 독자의 몸에 칼을 박고 그 칼을 비틀며 따라온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굉장히 글을 잘 쓰는 작가다. 소재와 독특한 캐릭터 설정은 허무맹랑해 보이면서도 탄탄하며 말 자체는 어렵지만 글은 매끄러운 기묘한 상황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 번역의 승리일지도 모른다만) 교고쿠도 시리즈에서도 장광설을 참고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작가의 압도적인 서술이고 그 뒤 결말까지의 폭발적인 전개다. 시대와 무대는 다르지만 이 책 <속 항설백물어>에서도 그 특유의 스타일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짠하게 만든다.

 

 " 사람은 슬픈 존재, 사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 누구나 사신에게 홀리는 적은 있습니다. 마음속에 악념이 들끓을 때, 사람은 누구나 사신이 되지요."

                                                                                                     -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중에서 -

 

 

 교고쿠 나쓰히코는 속 항설백물어의 다음 시리즈인 ' 후 항설백물어'로 나오키 상을 거머쥐었으며, 그 후에도 '전 항설백물어''서 항설백물어' 등의 시리즈를 계속 펴내고 있다. 요괴와 기담에 대한 박식함과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 교고쿠 나쓰히코 특유의 기괴함과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이 시리즈는 사랑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교고쿠 나쓰히코의 책 같은 소설이 나오는 것을 바라기란 굉장히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요괴와 기담을 소재로 한 책이라면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모두 독보적인 작가의 존재가 다른 작가들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교고쿠 나쓰히코' 의 책을 읽을 때면 역자 분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현대 일본어와는 다른 언어의 표기, 생소한 문화의 전설, 기담들과 어려운 한자어들을 번역해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란 보통이 아닐 것이기에. <속 항설백물어>를 읽고 난 느낌은 훌륭한 일식 코스 요리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기가 막힌 이야기는 요리에, 뛰어난 요리사는 작가에, 친절한 주인장은 번역가에 비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좀 안 되는 것도 같고...)

 

 전작인 항설백물어와 마타하치가 주인공이라고 하는 '웃는 이에몬'을 읽으면서 다음 작품 <후 항설백물어>를 기다려야겠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별 다섯에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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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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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 오리지널 소설 뿐만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작품들 또한 많은 관심과 호평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 영화는 셜록 홈즈를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성공적으로 그려냈고, BBC의 드라마 '셜록 홈즈' 는 비슷한 설정을 현대판으로 소름 끼치게 그려내면서 셜록 홈즈라는 컨텐츠의 뛰어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도 '셜록 홈즈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집 뿐만이 아니더라도 단편집, 기획물, 심지어 지하철 1천원 도서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외에 탐정인 셜록 홈즈와는 다르게 범죄자라는 입장을 갖고 있는 '아르센 뤼팽'이나 미스터리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 의 소설들은 전집으로 소개되었다.  초보자들의 미스터리 입문이 그리 힘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들 세가지 타이틀의 공이 컸다.

 

 하지만 셜록 홈즈도 다 읽고, 뤼팽도 왠만한 건 다 읽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서 포와로나 미스 마플 거기에 내키진 않지만 몇 권 더 읽은 사람들은 언제나 목말랐다. 언제쯤 나도 '세계의 명탐정 44인' 같은 책에 한페이지 소개된 저 탐정들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누군가의 동서추리문고나 일신추리문고 컬렉션을 보면서 부러워 해야만 했을 뿐. 행동력 있는 독자라면 전국의 헌책방을 순례하며 레어 아이템 획득에 두 눈에 쌍라이트를 켠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동서 추리문고' 가 있어 조금의 갈증은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고전들을 양분삼아 탄탄하게 자란 일본 미스터리나 영미권 스릴러를 맛 본 독자들에게 고전의 매력은 살짝 무미건조한 느낌도 주었다. 결국 미스터리의 고전을 읽는 일은 장르 소설 팬들 사이에서도 '추억'을 되살리거나 과거의 아쉬움을 '달랠' 행위 자체로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탐정 코난이나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게임' 같은 책에서 몇몇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캐릭터는 황금기의 탐정들의 이름에서 따 온 것들이 많다. 사실 이 쪽에서 인정받는 작품들은 과거 자신들이 죽고 못 살았던 탐정들과 소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데 그것과 같은 감정은 가질수는 없어도 짐작은 가질 순 있다. 아 물론 그것과 같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작가의 취향은 기쁨 그 자체이리라.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 이라는 책에 대한 반응을 살펴 보았을 때, 흥미로운 반응들은 두가지 정도였던 것 같다.

 

 ' 셜록 홈즈는 원톱이었다. 그 누구도 비교 불가능 한 것 아닌가.'

 ' 훌륭한 탐정과 작가들을 셜록 홈즈의 이름을 팔아 마케팅하는 것'

 

 내 입장은 처음에 두번째였다. 그게 잘 못 되었다기 보다는 출판사의 영리한 마케팅이라 여기는 입장. 하지만 책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니 말 그대로 동시대 서로 자극을 주고 받았던 라이벌들의 작품들이었다는 점에서 두가지 모두 무지에서 나온 반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아직 다 읽지는 않았다. 솔직히 궁금했던 오르치 여사의 ' 구석의 노인' 이나 손다이크 박사, 반 두젠 교수를 읽었고 셜록 홈즈의 패러디 물과 다이아몬드 커프스 & 멕시코의 예언자 정도 읽었다.

 

 특히나 구석의 노인 같은 경우는 지금 와서 보면 조금은 시시한 내용이라고도 여겨지지만 그 캐릭터의 기괴함과 비밀스러움은 정말 비교 불가능한 포스였다. 한 쪽 짜리 설명에서 느꼈던 호기심을 눈으로 확인하니 더 커지는 신기한 캐릭터...

 

 음악을 듣는 것과 조금 비교를 해보고 싶다.

 

 클래식 음악이나 비틀즈, 퀸의 음악을 지금 와서 틀었을 때 모든 사람에게 그 때와 같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들이 허접하다고는 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좋다고 여기는 음악들의 영감의 원천이 과거의 명곡들일 수 있듯이, 지금 장르 소설의 대부분은 과거의 명작들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 > 이 책은 지금의 관점에서 꽤 순진하고 어수룩해 보이는 부분들도 있다. 어떤 독자들에겐 시시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책들 중 잔인성에 감춰지고 기교에 흐려져 재미 본질에서 벗어난 책들보다는 훨씬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조금은 생소한 작품과 궁금했던 작품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또 책 또한 소장욕을 자극하도록 충분히 고급스럽고 일러 또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추억 팔이 장사' 의 경우 과거의 추억을 초라하게 만드느냐 나이든 나를 어린시절로 데려가느냐. 여기에 승패가 달려 있다.

 이 책은 후자다. 여러 모로 책에 신경 쓴 면들이 맘을 흡족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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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의 게임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5
올슨 스콧 카드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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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군대에서 당직근무를 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한 청년이 군대에서 워 게이머로 뽑혀 훈련에서 가상게임을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외계인과의 전투였고, 승리를 위한 단 하나의 활로가 대규모의 자폭작전이며 그것을 실행하기 직전에 그것이 게임이 아닌 실재라는 걸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와 나 완전 천재아닐까? 글빨만 있으면 이걸로 히트칠 수 있을텐데... 뭐 그런 자뻑과 함께 묻혀져간 이야기.

 

 그런데 후에 아주 유명한 작품의 소재가 그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책의 주인공은 10살도 채 되지 않은 천재 꼬마아이이며 우주함대를 주무르며 게임하듯이 전쟁을 한다고 했다. 아 이미 그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허탈했지만 작가 '오슨 스콧 카드'가 <엔더의 게임>과 후속편 <사자의 대변인>으로 2년 연속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석권한 대기록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억울해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더의 게임>을 명랑 쾌활한 어린아이의 전쟁놀이 쯤으로 생각하고 들었던 나에게 책의 전개와 엔더 위긴의 쌓여만 가는 불행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미래사회의 과학이 발달해서 어린 아이들의 자아가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어른들보다 더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고하는 방식이 경이롭다기 보단 불쾌했다고나 할까.

 

 '게임'이 오락용이 아닌 자극과 반응으로 인해 서서히 진화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이 책의 제목인 '엔더의 게임' 이 얼마나 무겁고 잔혹한 의미를 지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거기에 더해 엔더의 형과 누이의 '다른 의미'의 게임이 펼쳐지면서 이 천재성을 지닌 세 남매의 성장기는 맘편히 지켜볼 수 없는 한편의 스릴러처럼 위태위태하다.

 

 혹자는 어디선가 본듯한 소재가 이 책의 독창성을 떨어트린다고도 했다. 또한 엔더의 너무 높은 능력치가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킨다고도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소재를 엮어다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들기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류작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독보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진화'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가 싶다. 또한 엔더에게 높은 능력치를 준 대신 누가봐도 그 아이가 짊어진 사명이 무겁고, 고독한 삶이 생의 끝까지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되진 않았다.

 

 심지어 작가는 엔더의 능력치와는 별개로 아무리 강인해도 살짝은 망가질 수 밖에 없는 정신을 세심하게 표현함으로서 읽는 내내 불안과 불쾌감에 사로잡혔던 나를 결과적으로 주인공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끈기를 보여줬다.

 

 언제나 그랬듯이 전설이 될 SF의 첫 작품은 작가의 정수를 쏟아부은 경우가 많다. 이 책 엔더의 게임은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SF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내 인생의 SF 로는 꼽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로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만 불만이 있다면

 

 아무리 군대라는 설정이 있지만 10살도 되지 않는 꼬마아이들과 대령의 다,나, 까 식의 대화는 어색했고 그마저의 쓰임새도 부자연스러웠다. 무조건 ~였다. ~인 거다 이런 식의 대화는 읽는 입장에서 굉장히 피곤했다. 사실 이런 점에 대한 불평이 없는 것 또한 굉장히 놀라웠다. 역시나 굉장한 작품이란 것만 믿고 비싼 가격에 덜컥 내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짜증도 났다.

 

 용어에 대한 설명도 없고 고유명사를 멋대로 한국식으로 바꿔 놓고 역자 후기에서 대충 이렇게 바꿨는데 이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상당히 불쾌하고 어이가 없었다. 외국인들이 무슨 절도사 수군통제사 이런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냐고?

 

 최근에 나온 '심연 위의 불길' 정도의 납득이 갈 조어능력이나 빵빵한 용어설명할 능력이 없다면 그냥 닥치고 원본대로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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