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환의 심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6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경찰도 거짓말을 하고, 변호사도 거짓말을 하고, 증인도 거짓말을 하고, 피해자도 거짓말을 한다."

 

  죽여주는 도입부와 함께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마이클 할러가 돌아왔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읽거나, 영화로 접한 독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이클 할러- 미키 할러라는 변호사는 거짓말에 대한 결벽증이나 정의구현 따위 아주 조금 밖에 관심이 없는 쿨한 남자라는 것을. 따라서, 이 멋진 도입부의 독백은 법정 모독이나 구차한 자기 변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게임의 룰을 정확히 파악하고 파고드는 제대로 된 선수의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누군가의 승리로 게임이 끝난다면 승자는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뻔뻔하지만 한편으로는 믿음직한 프로의 자세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도입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곳에서 진실이 되는 것.' 이 소름돋고 짜릿한 좌우명을 들고 돌아온 남자. 얄밉지만 인정하자. 오직 그의 승리만이 진실이라고.

 

 <탄환의 심판>은 전작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로부터 2년 후를 다루고 있다. 미키 할러는 전작의 사건 이후 몸이 회복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몸을 더 망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치료과정에서 진통제 중독에 빠져 전처와 딸에게 점수를 많이 잃은 상태다.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무리하게 변호사 일을 한 것은 이해가 간다. 자신의 떨어진 명성을 회복하고 여전히 잘 나가는 남자로 남고 싶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약물 중독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은 조금 의외였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이기적인 모습 뒤에 의외로 허술하고 쉽게 무너져 버리는 약한 남자가 숨어있다는 것일까. 자신의 허영과 출세를 위해 승리를 얻으려 무슨 일이든지 하는 속물 변호사의 이면엔 그를 방해하는 약한 마음이 숨어있다. 하긴 그런 점이 없었다면 이 캐릭터가 사랑받을 구석은 보다 적었을 것이다.



 

 

 The Brass Verdict-<탄환의 심판>이라는 책이 유명한-볼만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다름 아닌 그의 이복형제 '해리 보슈' 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자님은 그 활약이 너무 미미하여 그냥 까메오 출연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이쪽 분은 다르시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대표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보슈의 실로 존재감은 대단하다. 분명 주된 줄기가 미키 할러의 이야기임에도 해리 보슈가 등장한다는 소리에 많은 팬들이 이 시리즈의 분류에 혼란을 겪었을 정도다. 아니 분명히 책에 등장하는 부분부터 그가 뿜어대는 아우라, 포스는 지나치게 멋있다. 해리 보슈 시리즈로 취급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탄환의 심판>이 미키 할러 시리즈 2 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폐인 생활에서 벗어나볼까 하던 차에 살해당한 동료의 굵직한 사건을 고스란히 맡게 된 미키 할러가 이 책의 알파요 오메가- 전체를 지배하는 확실한 주인공이다. 해리 보슈의 활약과 스토리에 기여하는 바는 그야말로 확실한 서포터. 마이클 코넬리는 영리한 역할 배분으로 자신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해리 보슈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도 이 스토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죽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찝찝함과 너무나도 탐나는 대박 건수 사이에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수상한 의뢰인을 품는 미키 할러의 모습은 전작의 속물 변호사 그대로이며,  판사와 검사, 해리 보슈 같은 성가신 형사, 귀찮은 증인과 배심원들, 위험한 의뢰인 사이에서 오직 자신의 승리만을 위해 카드를 고르는 모습은 그 특유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굳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운전사가 바뀌었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미키 할러에게 힙합음악을 들려줄 멋진 DJ이기도 했는데...

 

  2년 간의 삽질에서 복귀하려는 미키 할러는 그 여전한 속물 근성 외에 많은 면에서 약해졌고 여유가 없어졌지만 대신 그만큼 필사적이고 끈질긴 모습을 보여준다. 코너에 몰린 후 반격을 해나가는 모습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와 비교해 봤을 때 더 드라마틱하고 아슬아슬하다. 전작의 성공에 짓눌리지 않고 성공적으로 복귀에 성공한 이 작품에 속편 징크스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원제 The Brass Verdict 라는 조금 생소한 제목에 대해서는 후반부 해리 보슈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국내 제목인 '탄환의 심판' 은원래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맛을 잘 살린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키 할러 같은 속물 변호사에 의해 거짓말쟁이들은 진실을 말하는 자들로 다시 생명을 얻지만, 법정의 부조리가 법정 밖에서까지 그들을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일단 그들의 유능한 변호사는 너무나 바쁘고 애초에 그들에 대한 애정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소설 주인공 미키 할러에게는 그 법정에서 진실이 되는 것만이 가장 큰 목표이므로... 의뢰인의 에필로그 따위에는 관심이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의 명성에 흠집을 낸다고 한다면 약간의 에프터 서비스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고상한 옷을 입고 신사의 탈을 쓴 늑대들의 법정.

 어떻게 하면 서로를 찢어 발겨 놓을지 흉악한 궁리를 하면서도, 겉으로는 으르렁대는 모습조차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배덕의 싸움터로.  마이클 코넬리의 손 끝을 통해, 해리 보슈의 부축을 받으며 <론 레인져-마이클 할러>가 돌아왔다.

 

 별 다섯에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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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sky1004 2012-05-2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렇게 감상평 잘 쓰시는 분들 신기해요ㅎ 마이클 코넬리는 늘 옳지만!(아니다. 콘크리트 블론드는 심히 실망;) 탄환의 심판은 진정 끝판왕!! 인듯해요ㅋ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지,,진짜 born writer라는 말이 딱 맞는 작가. rhk출판에서 코넬리의 new 작품을 내놓기까지 어떻게 기다리나요;; 이 작가,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괜히 반가워서 주절주절 적고가요^^

이박사 2012-05-21 13:33   좋아요 0 | URL
RHK 출판사는 번역만 들어오면 바로 낼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보다 더한 코넬리빠로 알고 있습니다. 미키 할러는 정말 멋있다는 표현을 쓰면 좀 맛이 덜하고 속된 말로 간지가 자르르~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