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양질의 작품을 양질의 번역으로 만나는 일은 굉장히 기쁜 일이다.

 그리고 그 맛에 빠져 장르의 바다에서 놀다 가끔 물을 먹어도 즐거운 법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국내작가의 글은 읽기도 전에 폄하하게 되고,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언급 자체를 피하는 것이 매너있는 장르팬인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 바로 나처럼.

 나 또한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손에 잡고,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꼬투리를 잡고 싶어하고, 정말로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작가의 책을 잡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장르 소설은 무릇 독자에게 평가 받는 것이란 걸 망각한 채, 어딘가의 무슨무슨 상, 순문학성이 넘치는 거시기 뭐시기 라는 말에 혹하지 않는 이상...

 

 국내 작가란 이유로 많은 좋은 책들을 놓치고 살고 있다.

 

 장용민 씨의 '신의 달력' 이후로 우리나라 책의 경쟁력을 깨닫게 한 책이 바로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이다.

 

 하지만 장용민 씨의 책이 해외에서도 통할 것 같다는 점에서 날 감탄시켰다면, 이 책은 한글로 써내려간 장르소설의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아까도 말했듯이 양질의 작품을 양질에 번역으로 만날 때, 우리는 애초에 작가의 말을 두번 세번 거쳐서 접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때때로 어색함과 이질감 속에서 자신의 상식이나 감성에 이런 저런 표현들을 휘휘 저어 억지로 삼키진 않았나 생각해 보면, 과연 그렇다.

 

 최제훈 작가의 이 연작은 굉장히 끈적하게 독자에게 달라 붙는 책이다. 악몽인지 보통 꿈인지 아니 현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게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 주가 되는 방법은 작가의 말빨과 글빨인데, 이 표현들 하나하나가 우리 말로 전해지는 게 새삼 신기하다. '도구라 마구라''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처럼 독자의 정신에 닿아 흔들어 대는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서 맞물려 돌아가는 정신을 쏙 빼놓는 구성은 내 맘에 쏙 든다고 인정할 뻔 했다. ( 여전히 이런 구성은 제 취향이 ...쿨럭)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이 있는 듯 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투명한 꿈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겹쳐져 기이한 문양의 옷감을 짜낸 것처럼 보이며, 완성된 모습 또한 보는 이의 눈에 따라 꽤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첫 이야기 <여섯번째 꿈>이 클로즈드 서클의 전형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다가 환상소설처럼 마무리 되며 넘어져 버리는데, 이 포석이 두번째, 세번째에 이르러 다른 이야기들을 더 재밌게 꾸며주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는 책 전체의 완성도로 봤을 때, 이마저도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책 말미의 굉장히 지루한 서평의 초반에, 이 책의 내용을 누설하지 않고 어찌 서평을 쓰겠냐고 투덜대던 게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이야기의 어떤 부분을 가져다 서평에 더해야 할지 나도 스스로 결정을 못하겠다.

 그냥 재밌다. 우리나라 장르 소설도 읽을만 하다 라고 건방지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질투보다는 부러움이 앞서는.

 

별 다섯에 별 넷.

 

 

 世海羅子 를 그대로 읽으면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를 떠올리게 하는데도 세카이 라코라고 숨겨 속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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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0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그렇군요~
한글로 써내려간 장르소설의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는 말이죠?
기억해 두었다가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박사 2011-03-21 23:19   좋아요 0 | URL
독특하면서 재밌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