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쁜영화 100년 - 역사의 기록과 영화의 기억
ACC 시네마테크 기획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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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과 영화의 기억

 

ACC시네마테크에서 기획한 김지하 외 27인의 <한국 나쁜 영화 100>은 순종보다는 거절을 복종보다는 저항을 선택한 나쁜’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지은이로 참여한 이들은 편안한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영화계에 종사한 사람들이다이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저력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자국어로 된 영화가 특정 국가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한국 영화를 보는 것이 당연한 나에게는 어색한 사실이다대한민국은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와 외화가 비슷한 비율로 개봉하고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도 관객점유율이 뒤처지지 않는다.

 

2019년은 한국 영화에서 잊기 힘든 해이다마침 한국 영화 100주년이 되던 해이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한 4관왕을 수상하는 놀라움을 선보였다.

 

            Photo by Noom Peerapong on Unsplash

문득 한국 영화계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을 통해 이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한국 나쁜 영화 100>은 표지부터 예사롭지가 않다김수용 감독님의 <도시로 간 처녀>의 출연자 얼굴 사진이 잘려진 상태로 등장한다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검열된 작품을 통해 작가와 감독의 뜻이 잘려진 채로 대중을 만나야 했던 영화의 기록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누가 대중 문화를 검열했던가?

 

정권이 바뀌면 권력은 문화를 이용해 선전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시기도 있었다검열은 당연했고이를 저항한 사람은 나쁜 영화를 선택했다책에서 소개하는 한국 영화에 자휘를 남긴 작품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성장 서사가 떠올랐다.

 

1919년 최초의 영화인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를 지난 광복과 함께 해방된 이후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근대화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권위주의 체제는 영화를 국가의 정책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Photo by Noom Peerapong on Unsplash

80년 이후 사회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문화가 등장했고, 90년대는 영화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팽창하던 시기였다. 88년 올림픽은 한국을 국위 선양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둠이 존재했다.

 

<상계동 올림픽>은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상계동 일대의 빈민촌에 거주하던 이를 내쫓고 아파트를 건설했다영화는 이들 강제 철거민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은 개봉에 앞서 소송에 휘말리고 검열로 인해 많은 장면이 잘려나간 채 상영해야만 했다당시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이는 당시 사회 전반의 상황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기억에 나는 장면이 당시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영화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저항으로 국산영화를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책에는 이장호장선우김상수정선일 감독과 같은 영화감독과 평론가그리고 관객과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 작품에 대한 배경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외화도 즐겨보지만자막 없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를 아끼는 마음으로 본다이전에 보았던 작품에 대한 배경 이야기를 알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국 나쁜 영화 100>을 통해 중요한 영화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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