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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평점 :
“소멸하지 않는 지성의 불꽃놀이” 이어령 지적 대장정의 결정판, ‘한국인 이야기’ 완간
파람북에서 출판한 이어령 선생님의 <너 어디로 가니>는 한국인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학평론가이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 너 어디로 가니 책날개 중 ]
선생의 타계 소식을 듣고 한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큰 별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민족의 얼과 정신을 살리는 것에 몰두했고 이는 88서울 올림픽 기획으로 잘 드러났다.
<너 어디로 가니>는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12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로 한국인의 역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1. 천자문 고개 글자로 들여다본 어린 시절
2. 학교 고개 열린 교실 문 너머엔 무엇이 기다릴까
3. 한국말 고개 금지당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충동
4. 히노마루 고개 해와 땅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붉은 기
5. 국토 고개 상자 바깥을 향한 탈주
6. 식민지 고개 멜로디에 맞춰 행진하는 아이들
7. 놀이 고개 망각되지 않는 유년의 놀이 체험
8. 단추 고개 제복이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
9. 파랑새 고개 어둠의 기억을 거름 삼아
10. 아버지 고개 부재하는 아버지, 부재하는 아버지
11. 장독대 고개 근대가 상실한 사이의 공간
12. 이야기 고개 억압으로도 막지 못한 이야기
1933년생으로 식민지 교육을 체감해서 <너 어디로 가니>에는 일제 교육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있다. 나 역시 국민학교 출신이라 이 말이 ‘황국신민’의 줄여진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메이지 유신의 소학교령과 초등학교령으로 국가는 황국으로 변하고 아동은 소국민이 되었다. 초등학교는 ‘황국신민’을 군인처럼 단련시키는 도장으로 기능했다.
학생들은 전쟁 자원이 되어 신체검사하고 머릿니를 잡으려 DDT를 뿌리며 회충약을 주었다. 체력은 국력이라며 덴마크에서 가져온 체조교육의 줄임말인 체육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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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일제가 남긴 것 중 나이에 따른 학제의 구분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서당에서 나이 구분이 아니라 학습 진도에 따라 함께 공부했다면 학교 시스템은 전시에 맞춰 명령 체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상급자가 하급자를 통솔할 수 있는 나이에 따른 체제를 도입했다.
선생이 들려주는 식민지 교실에서 한글을 사용할 수 없는 경험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주권을 상실하고 언어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며,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한글을 사용하면 뺨을 맞고,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은 벌을 서고 그 속에서 울리는 풍금 소리와 조선어 노랫말이 애달팠다고 하니 당시 교실에서 벌어지던 광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식민지 말기가 되면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위한 국체명징, 조선인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내선일체’, 침략전쟁의 인고를 강요한 ‘인고단련’이 제정되어 학생들은 이를 암송하고 제창해야 했다.
선생은 어린 시절 36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도스토옙프스키, 톨스토이, 발자크, 호메로스를 읽었고, 일본의 전체주의적 군국주의 사상에 전염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일본어에 익숙한 선생은 일본의 도서와 사상을 소개한다. 가령 근대 일본 국가주의와 군국주의의 선생 격인 요시다 쇼인은 야스쿠니 신사에 추후 합사되어 최고위로 모시고 있으며 그를 참배하고 공물을 보내는 행위는 그의 정신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는 일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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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매년 말 ‘홍백가합전’을 방영하지만, 우리는 홍백전이 아닌 청백전을 선호하는 이유, 일본 초등학생의 입학 선물인 란도셀 가방이 지진을 위한 방어용이기도 하지만 일본 군인의 군장에서 유래한 이야기, 보자기와 단추에 관한 선생의 이야기는 흥미롭기만 하다. 일본 학자 중 다양한 목소리를 전파한 사람과 한민족 동질성을 발표해 교수직에서 물러난 사람, 한·중·일 문화의 교차점과 차이점과 한국인에 영향을 미치는 점과 이를 지적하는 내용은 선생의 방대한 지식의 넓이와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역사는 블랙박스의 블랙박스다.
한국의 젊은이가 역사추리에 흥미가 없거나 역사의 이면을 외면한다면 누가 이 블랙박스를 부숴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275쪽)
한국인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너 어디로 가니>를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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