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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배신의 시대 -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ㅣ 역사의 시그니처 1
정태헌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9월
평점 :
불과 100년 전, 누군가는 독립을 외치고 누군가는 조국을 버렸던 혁명과 배신의 20세기
21세기북스에서 출판한 정태헌 교수님의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20세기를 살았던 한·중·일 삼국의 지신인 6명의 혁명과 배신에 관해 소개하는 도서이다.
정태헌 교수님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에서 경영학사,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중국 베이징대학, 일본 세이케이대학 등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한국사연구회 회장,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이사장,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혁명과 배신의 시대 책날개 중 ]
21세기북스는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을 소개한다. <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시리즈의 1권으로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을 살펴본다.
20세기는 이데올로기의 혼재와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도 사회주의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허무주의에 집착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 동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일본 제국에 몰입해 친일파로 활동해 권력을 유지한 사람도 있었다. 저자는 이에 한·중·일 삼국의 지식인에 주목해 당대 사회 상황과 지식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기존에 알고 있어 그럴만한 인물도 있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인들도 있어 역사 속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Photo by Hasan Almasi on Unsplash
한국 : 민권을 위해 싸운 조소앙 vs. 근대의 ‘힘’을 추종한 이광수
20세기는 격변의 시기였다. 제국주의가 발톱을 드러내고, 일본의 위세가 등등할 때 이들은 청년기를 지나고 성인기를 맞는다.
이들은 모두 1880년생으로 봉건제국의 질서가 와해되고 새로운 근대 학문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던 시기에 살았다. 메이지 유신으로 가장 빨리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당시에도 세계에서 주목할 나라였기에 한국과 중국 지식인은 모두 일본에서 유학한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는 김구 선생, 안창호 선생 혹은 여운형 선생을 손꼽을 수 있지만, 저자는 조소앙 선생을 한국의 민권을 위해 싸운 선생으로 소개한다. 조소앙이라는 이름을 잘 알지 못해 이유를 살펴보니 납북이 되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메이지대학 법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1919년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해 국민주권국가로의 독립과 대한민주를 선언했다. 이후 2년간 유럽에서 외교 활동을 펼치며 삼균주의의 근간을 정리했다.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과 개인의 균등생활을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생활을 이루며, 나아가 세계일가를 추구한다는 이론체계이다. 삼균주의는 1941년 대한민국건국강령에 포함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되었다.
광복 후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한국독립당의 부위원장이 되었다. 1950년 선거에서 성북구에서 당선됐지만 한국 전쟁 때 납북돼 북한에서 사망했다.
한국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배신의 아이콘은 이광수이다. 이광수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 군인의 모습을 보고 조선의 이상형을 일제에서 찾는다.
독립 운동에 열정적이었던 이광수는 1919년 3.1운동 이후 친일파의 길로 들어선다. 1922년 잡지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했고, 3.1운동을 무지몽매한 야만 인종이 행했던 변화로 폄하했다.
안창호를 스승으로 삼았지만 중·일전쟁 이후 조선인임을 보리고 “피와 살과 뼈과 일본인이 되”라며 조선 청년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중국 : 중국인을 깨운 루쉰 vs. 친일의 상징이 된 왕징웨이
중국의 대표하는 지식인 혁명가는 루쉰이다. 그는 문학을 통해 중국의 혼란과 참혹한 민낯을 드러냈으며 서구 제국주의적 근대주의를 비판했다. 중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며 낡은 중국을 비판하면서도 새로운 중국을 준비했다.
루쉰은 보수반동 세력과 외세의 폭압에 대항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었으며 근대 중국의 진보적 청년을 격려한 인물이었다.
중국의 친일을 대표하는 사람은 왕징웨이다. 쑨원 사망 후 13년간 장제스와 왕징웨이 간의 정치적 동맹인 장·왕합작의 시도와 분열, 외유와 귀국을 반복했지만 새로운 중국을 이끌어낼 정치력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 반공정책을 고수하다 친일의 길로 나섰다. 결국 난징대학살이 1년도 지나지 않은 1938년 장제스 국민정부를 ‘말살’시키겠다는 일본의 분열정책에 조응해 별도의 괴뢰정부를 세우는 밀약을 일본과 맺었다.
일본 : 조선의 독립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 vs.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위해 일본과 법률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관동대지진 때 일본 민중의 조선인 학살 사실을 지적했으며, 일제의 조선 개발이 조선 민족을 위해 슬픈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변호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영화 <박열>에 나타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변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가네코의 유골을 들고 박열의 고향인 문경으로 향하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일본의 20세기 전쟁을 이끌었던 이는 도조 히데키이다. 그는 1937년 관동군 참모장을 지냈으며 1940년 육군대신을 거쳐 총리에 올랐다. 1941년 일본 제40대 총리이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이다. 여전히 도조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20세기 혼란스러운 한·중·일 삼국의 정치 사회 지형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혁명과 배신의 시대>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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