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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다비드 디옵 지음, 목수정 옮김 / 희담 / 2022년 7월
평점 :
낯선 시선으로 전쟁의 본질을 일깨우는 마술적 서사
회담에서 출판한 다비드 디옵의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했던 참호전의 실상을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라는 유례없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전쟁 방식이 새롭게 활용되어 양측의 막대한 전사와 희생을 요구했다.
PTSD가 알려지기 이전이었던 시기라 참호전을 겪은 군인은 넋을 잃어버린 경우가 허다하고 그들의 동공은 이전의 총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초점을 잃어버렸다. 참호 내 고인 물은 섞어 전투화 안으로 스며들어 발을 썩게 하고 전진하지 못하는 전선에 군인의 희생만 늘어갔다.
영화 <1917>에서 간단하게 선보인 참호전의 실상은 훨씬 더 열악한 거로 알려졌다.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던 참호전에 대해 저자는 세네갈군으로 연합군에 참전한 주인공 알파와 친구 마뎀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Photo by British Library on Unsplash
[ 주의 : 잔인할 수 있습니다.]
전선에서 돌격한 후 나는 마뎀바의 창자가 적에게 배가 갈려 쏟아진 것을 움켜쥐고 돌아온다. 배에 칼을 맞은 마뎀바는 자신을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세 차례나 애원한다. 나는 그의 부탁을 모두 거절했다. 그의 목을 빨리 내려치지 못하고 고통에 빠져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보며 나의 인격은 악마처럼 변해갔다.
친구의 죽음을 겪고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오로지 적군의 손목을 끊어와 나의 참호로 돌아오는 보상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 명, 두 명, 세 명, 적의 손을 끊어올 때마다 적군과 아군의 동료마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해갔다. 나는 스무 살 찬란했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은밀한 밀회를 나누었던 군인에서 악마로 자라났다.
일곱 명의 손을 가져왔을 때 동료들은 나의 곁에서 비켜 있으려 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나와 같은 혼혈이든 전쟁은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간다.
나는 적을 보면 배를 벌거벗기고 그의 뱃속에 담긴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오게 만든다. 빗속에서나 바람이 불면 그는 거대한 침묵의 고함을 지른다.
나는 그의 옆에 누워 그의 얼굴을 내 머리 쪽으로 돌려 그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바로 그의 멱을 딴다. 인간적으로 말이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Photo by British Library on Unsplash
이 작품은 2018년 <영혼의 형제>로 출간된 이래 각종 국제 문학상을 휩쓸고 있다. 2021년에는 미국의 시인 안나 모스코바키스의 번역으로 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했다.
언젠가 노벨문학상 수상작 다음으로 부커상 수상작을 눈여겨보고 읽고자 한다. 아마도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수상 이후 더 그렇게 된 듯한데, 다비드 디옵의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전쟁이 평범한 인간을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지 치밀하게 묘사한다. 이제는 100년이 넘어버려 참호전이 잘 벌어지지 않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백병전은 필수적이다.
주요 국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평화의 시대를 살아왔던 현대인에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신냉전을 지난 100년 전의 세계대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전쟁은 그 자체로 인간을 비인간적인 악마로 만들어버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선 상대를 먼저 죽여야 하는 야만의 상태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좀처럼 참호전의 참혹함을 기록한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터라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한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은 인류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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