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 십자군 유적지 여행 여행자의 시선 1
임영호 지음 / 컬처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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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이해하는 핵심 종교와 전쟁’, 십자군 유적지를 가다

 

컬처룩에서 출판한 임영호 교수님의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는 십자군 유적지 여행을 다루고 있다.

 

임영호 교수님은 서른 즈음에 미국 유학길을 떠나면서 비행기를 처음 타본 촌사람이자 40대 중반에야 영국 여행으로 유럽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뜬 늦깎이 여행자다이후 전 세계를 다니면서 새로운 문화에 대한 탐구를 시작해코로나19로 길이 막히기 전까지 76개국의 수많은 도시와 시골을 여행했다부산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저널리즘과 문화연구이론의 지식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책날개 중 ]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여행지에 대한 배경지식과 열정을 가지고 떠나는지에 달려있다저자는 성지 순례와 관광지인 요르단과 잃어버린 성지와 기사단의 최후의 여행지인 로도스보드롬몰타그리고 십자군의 고향인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십자군 유적지를 소개한다.

 

중세 유럽을 상징하는 주제는 십자군 전쟁이다십자군은 1095년 가톨릭 수장인 교황의 주창으로 시작되어 약 200년 동안 이어진 성지 회복 운동이다하지만 세속적 측면에서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평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이 참전해 이교도이자 이국적 문명의 국가와 벌인 장기간의 정복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과 이슬람 지역이 자주 접촉하면서 지중해 교역을 무대로 두 지역의 경제권이 연결되었습니다이 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선 기술도 지중해 무역을 활발하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활발한 교류는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섞이게 만들며 특색있는 유적지를 만들어냈다.

 

십자군 원정의 결과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 시절은 물론이고 현지 기독교 국가가 사라진 후에도 성지 순례는 이어졌다유럽인의 종교적 열망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 베네치아를 번성하게 했고이스라엘 땅이 주요 행선지였지만이웃의 요르단 지역 역시 중요한 성지 순례 장소였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뿐 아니라 십자군 중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이 쌓은 슈발리어 성이 압권이다이슬람 살라딘 휘하의 알딘 우사마는 우즐룬 성을 쌓았다요르단 북구의 제라시는 헬레니즘 시대부터 로마 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다로마 유적지에서 놀라운 점은 그토록 오래 전에느 하수구와 수도관을 모세혈관처럼 건설한 점이다공중화장실과 사우나집 앞의 수도관은 당시를 생각하면 놀라운 공공 혜택이다.

 

유럽인들이 로마 시민의 생활 수준에 도달하는데에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진다.

 

요르단의 백미라고 하면 고대 상업의 중심지 페트라라는 도시다십자군은 12세기에 이곳을 점령하고 언덕에 요새를 건설했다페트라의 유적지는 너무나 신기해 유네스코에 의해 현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되어 있고초입에 미국의 앤털로프 캐넌과 같은 모래 절벽을 어두운 공간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는 신전 알 카즈네의 모습을 인간이 만들어낸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높이 43m, 너비 30m를 깍아낸 신전인 알 카즈네를 만들어낼 정도로 페트라는 로마시대 상업의 중심지였다알 카즈네의 황홀경은 인디아나 존스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알 카즈네에서 페트라 안측으로 들어가는 길은 와디 무사즉 모세의 계곡이라고 한다모세의 경우 기독교이슬람교 선지자로 추앙받고 있어 모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예수의 세례터인 요르단강을 지나 로도스섬으로 가보자.

1291년 십자군의 최후 거점인 아코가 무슬림 군대에 함락되었다이로써 십자군 시대는 종언을 맞았다성지에서 창설된 여러 기사단의 이후 경로는 제각각이었다.

 

성전 기사단은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갔으나 프랑스 국왕의 음모에 말려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튜턴 기사단은 독일로 돌아가 프로이센 지역의 영토 정복에 몰두했다가장 오래 살아남은 기사단은 성 요한 구호 기사단이다이들은 성지에서 밀려난 후 무대를 옮겨 수백 년을 더 존속하면서 활동했다.

 

아코 함락 후 키프로스로 피신했다가 1310년 터키 땅 바로 코앞의 섬 로도스를 근거지로 삼아 200년을 더 버텼다튀르크의 젊은 술탄 술레이만 대제는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로도스섬을 침공했다.

 

역사적인 로도스 공성전이 서막에 올랐다로도스 성은 지금도 오스만 튀르크와 최후의 공성전을 벌인 그 시절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에서 다루고 있는 로도스 공성전은 대단히 치열했던 전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13년부터 8년 동안 기사단장을 포함한 건축가는 로도스 성벽을 대대적으로 개축했다땅을 깊이 파서 외부에서 성벽에 가까이 다가오면 넓고 깊은 해자를 마주하게 했다. 1522년 로도스가 오스만에게 함락되었을 때 폭발 사고로 심각하게 파괴되었지만, 400년 후 이를 다시 축성하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다. 1921년 튀르크와의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로도스섬을 손에 넣은 무솔리니는 자신과 에마누엘레 3세의 여름 궁전으로 재건했다.

 

기사단의 최후의 상징하는 곳은 몰타다성 요한 구호 기사단이 접수한 몰타는 기독교 세계에 남았고 열악한 환경을 재건하기 위해 기사들은 고군분투했다몰타는 기독교 기사단과 이슬람 군대가 최후의 결전을 벌인 곳이다현대에 이르러서는 중세 배경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촬영되었다.

 

 

십자군이 발생한 이유나 성지 순례의 목적지성지 회복의 결정적인 장소는 예루살렘이다예루살렘에는 예수의 무덤과 수많은 성서적 사건의 현장이 있는 곳이다하지만 예루살렘은 험한 비탈 위에 성벽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있어 공략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인근 배후지를 함께 점령하지 않으면 지키기도 어려웠다하지만 이 성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예루살렘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이 직접 벌어진 곳이며전 세계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장소다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유대교의 성지이자 마찰의 근원지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너무도 중요한 유적지 모여있어 예루살렘 성안은 기독교인무슬림유대인아르메니아인 등 민족별로 구역이 나눠 관리되고 있다.

 

성지 순례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이 가보고 싶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아코를 돌아보며 <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는 마무리된다.

 

단순한 여행에세이를 넘어서 해박한 지식으로 지중해 연안에 깃든 역사적 장소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 있다지중해 연안으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은 가기 전 꼭 한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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