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셀림 -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앨런 미카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근대 세계를 열어젖힌 오스만제국 최강 군주

 

책과함께에서 출판한 예일대학교 역사학과장인 앨런 미카일 교수님의 <술탄 셀림>은 근래 읽었던 가장 도발적인 책이다유럽에서 기인한 서양 역사관으로 학창 시절을 보내서인지 저자의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이책은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 인구를 추월하는 2030 년이 되면 새로운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측하게 된다이 책의 원제는 <God’s shadow>로 신의 그림자이다셀림을 신으로 해석한 것도 도발적이지만그의 주장은 학계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측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늘날 인류의 근대를 열어젖힌 사람은 술탄 셀림이다.

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대서양 개척의 추동력은 술탄 셀림이다.

3.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일으킨 원인은 술탄 셀림이다.

4. 서양이 동양을 압도한 시점은 술탄 셀림 이후 500년이다.

 

이 무슨 술탄 셀림 찬양자도 아니고 편향된 역사관을 반영한 듯한 논조에 너무 당혹스러웠다하지만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학과장에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안네리제 마이너 학술연구상을 수상한 이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그의 주장은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Photo by Adli Wahid on Unsplash

콜럼버스가 대서양의 서쪽으로 항해한 일스페인에서 유대인을 축출한 일마르티 루터가 교황청에 대항하기 위해 술탄의 기다란 그림자를 언급한 일이 1500년 전후라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을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근대 초창기 유럽 세계에서 일어난 이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오스만제국이 있었다.

 

16세기에 최정상의 권위를 획득한 오스만은 놀라운 군사적 지배력으로 당시의 어떤 국가보다 더 넓은 땅을 확보하고 더 많은 백성을 다스렸으며 광대한 무역로를 장악했다그들의 위력 앞에서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포기하고 신세계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리 상이 발견종교개혁식민지 개척은 서구의 자생적인 문명으로 세계의 흐름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강성한 오스만제국의 벽을 넘을 수 없었기에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럴 때에는 그가 왜 이런 주장을 펼치는지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가족이다여러 차례 구글링와 유튜브를 검색해 그의 인터뷰를 확인한 결과 가족이 이집트 혈통을 이어받았다그가 중동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고이집트 왕조인 맘루크 왕국을 정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한 오스만제국 아래의 이집트가 주요한 연구 주제였다그는 오스만제국을 연구했으며 가장 관심을 끌었던 주제는 술탄 셀림이었고이 책은 그의 오랜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 <술탄 셀림>은 오스만제국 9대 술탄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흔히 오스만제국을 대표하는 술탄은 비잔틴을 정복한 7대 메흐메드 2빈을 포위한 장엄왕 10대 술레이만 대제를 기억한다.

 

9대 술탄 셀림(1470~1520, 재위 1512~1520)은 전 세계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시기였다굳이 우리 역사로 치환하면 셀림은 광개토대왕에 버금가는 왕이다영토를 확장한 이력을 따지만 13세기의 칭기스칸에 뒤이은 손꼽히는 정복왕이 셀림이다.

 

할아버지 메흐메드 2세가 그랬던 것처럼 오스만제국이 술탄으로 오르기까지 여정은 대단히 험난했다아버지 바예지트 2세와 삼촌 젬의 권력다툼을 지켜보며 그는 성장했다아버지는 3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두었고셀림은 아들 세 명 중 막내였기에 술탄이 되고 못되고는 그이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다술탄은 초기 적자생존의 시대를 지난 형제살해의 시기에 접어들었다술탄이 사후 가장 먼저 장례를 치르고 술탄 자리를 이어받은 사람은 형제를 모두 죽여 권력을 공고히 했다.

 

셀림이 사파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맘루크 왕국을 정복하는 배경에는 그의 배다른 형제들과 권력다툼이 핵심이었다.

 

그의 잔인함과 호전성은 외교를 중시하는 아버지 바예지트 2세와는 양립할 수 없었다아버지는 큰 아들을 다음 술탄으로 염두에 두었고셀림은 오스만 제국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이라 할 수 있는 현직 술탄인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술탄 자리에 오른다.

 

그가 사파비 왕조를 정복하는 것은 사파비 왕조를 대하는 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차였다사파비와 외교를 강조하는 아버지와 정벌을 중시하는 셀림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예니체리와 비슷한 맘루크가 세운 왕국을 정복하는 배경에는 배다른 형제를 도운 맘루크를 정벌해야 권력의 뒤탈이 없기 때문이다.

 

          Photo by Hussein Himmati on Unsplash

여기에서 저자의 주장을 되새겨보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 항해는 인도의 향신료 무역을 가로막는 지중해를 장악한 오스만제국과 맘루크 왕국 때문이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사벨 여왕의 십자군 전쟁이 자리한다인간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돈과 신념이다특히 일신교를 믿는 종교의 배타성은 종종 광기를 허용한다.

 

이사벨 여왕은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유대인과 무슬림은 추방하는 조치를 취한다당시 전해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중국에서 기독교를 믿는 고위 관료를 만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는 중국과 화친해 오스만제국을 공격해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저자는 콜럼버스가 대서양에서 만난 원주민은 무슬림으로 착각해 그들을 몰살한다고 전한다지명이나 춤의 유사성으로 무슬림포비아가 만연한 유럽의 사정으로 콜럼버스는 착각했다고 한다.

 

 

마르티 루터는 이슬람의 비잔티움 정복과 유럽으로의 확산은 자신이 믿는 하느님이 벌을 내리는 계시로 판단했다루터가 정열적으로 연구한 것은 이슴람 경전과 교리였다그는 기존의 가톨릭의 판매하는 면벌부에 반박하는 조항을 내걸지만이는 오스만의 셀림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발현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예니체리와 하렘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셀림에게 주적은 이단이지 이교도가 아니었다기독교인과 유대인까지 품었던 셀림이지만 시아교도는 박멸의 대상이었다.

 

목을 참수한 적군의 머리를 공 차듯 행하는 셀림의 난폭함과 더불어 새로운 도시 정복 후살인약탈강간을 허용한 1일에서 3일이 지나면 셀림은 정복지 안정화 정책을 적극 펼쳤다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기존의 세금 정책보다 더 나은 경제 정책으로 인두세를 할인해 이교도를 품었던 정책은 오스만이 제국으로 도약하는 기폭제였다.

 

 

오스만투르크인이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인에게 심한 배척을 받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오랜 제국의 해체에 당면해 교황이나 서방의 기독교도보다는 투르크인들을 환영했다그들의 라틴 십자군에 대한 인상은 극히 나빴다십자군의 비잔티움 약탈로 인해 비잔틴 귀족은 교황보다 술탄이 더 낳다고도 여겼다.

 

투르크인에게는 예니체리라는 특수 부대가 있다이들은 일종의 공납 형식으로 기독교도의 아이를 뽑아다가 특수 훈련을 시켰다일견 잔인해 보이는 행위지만 이 소년들에게는 특전도 주어졌다훈련을 마치면 일종의 귀족 대접을 받았다.

 

예니체리부대는 오스만의 술탄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예니체리라는 말은 생명과 희생에서 나온 말로생명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집트에서는 예니체리에 해당하는 맘루크 부대가 만들어졌다.

 

셀림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당시 이를 지배하고 있던 미약하고 무력한 아바스가의 대표자로부터 칼리프의 칭호를 빼앗았다오스만의 술탄-칼리프 제도는 무스타파 케말 파샤가 폐지하기 까지 지속되었다.

 

이슬람 교도와 셀주크인의 욕망을 부채질한 막대한 전리품은 오스만의 것이 되었다오스만의 술탄은 눈을 서방으로 돌려 로마까지 넘보았다그들은 신성로마제국(독일)과 이탈리아를 위협해 각각 빈과 이탈리아 국경에까지 육박했다그들은 동방에서는 바그다드를 남방에서는 이집트를 병합했다장엄왕 술레이만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군림했다해상에서도 그의 함대는 제해권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아시아는 유럽을 침략했던 경우가 자주 있었다유럽이 아시아에 침입한 적도 없지는 않았으나 극히 짧은 동안의 일이었다.

아시아가 유럽의 침입한 마지막은 술탄 셀림과 술레이만이었다.

 

이후 18세기가 되면 유럽은 아시아 침입의 흔적을 남기고 아시아에 근거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술탄 셀림>은 기존의 서양 역사관에 길들여진 나의 사고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근대를 해석하는 다양한 세력 중국인도오스만의 관점에서 확인하는 시간을 추가로 가지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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