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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평전 :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
이호준 지음 / 꽃길 / 2022년 5월
평점 :
대한민국 벤처생태계의 기반을 다지고 반석을 세우다!
꽃길에서 출판한 이호준 기자님의 <이민화 평전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는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님의 평전이다.
이호준 기자님은 서울신문의 선임기자이며 뉴미디어국장 겸 비상임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그는 한가지 생각에 골똘히 빠져들었다.
“왜 우리나라에는 구글 같은 기업이 없을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협력하는 괴짜가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한국 벤처 정책은 지원과 규제 사이를 오갔다. 큰 흐름으로 보면 2000년 가장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고, 2003년 벤처 거품이 일자 규제가 강화됐다. 이후 정권을 거치며 규제는 풀리고 다시 지원 정책이 늘어나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의 벤처산업은 신화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벤처회사가 태동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육성정책과 1996년 코스닥이 설립됐고 1997년 벤처특별법 시행령이 등장한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벤처 특별법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코스닥에서 회수하는 구조”라며 “세계에서 가장 앞선 지원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님은 이민화 교수님의 평전을 통해 그가 걸어온 길은 소개한다.
이민화 교수님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벤처 대부, 벤처신화 메디슨 창업자, 사회 혁신가, 발명가, 교육자, 학자…….
숱한 서술어와 호칭으로 불린 이 시대의 거인 이민화.
이민화 평전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 서울대 공대생이 되는 과정에 이르는 과정을 ‘도전과 혁신의 DNA를 삼다’에서 소개한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 다니며, 조용히 책을 읽었던 소년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하며 문학을 좋아해 주변에서는 서울대 법대로 지원할 거로 생각했다. 1971년 ‘1차 사법파동’ 사건으로 그는 진로를 바꾼다. 시험을 한 달 앞둔 학생이 갑자기 문과에서 이과로 바꿨다. 순수과학을 좋아하는 그의 공부를 이해했지만, 가족은 반대했다. 더군다나 그가 선택한 전공은 서울대 전자공학이었다.
고3 때 이과로 전과한 덕분에 그는 문과와 이과 친구들과 모두 교류할 수 있었고, 이들은 후일 메디슨을 일구고 이끌어가는 자산이 된다.
졸업 후 그는 대한전선에 입사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양대 전자회사는 금성전자와 대한전선이 쌍두마차였고, 삼성전자는 후발 주자였다.
대한전선에서 첨단제품 특히 컴퓨터 단말기의 개발, 영업, 수출, 신제품 사업계획 모두 직접 했으니 그의 사명감을 대단히 투철했다.
대한전선에 재직하며 KAIST의 석사 박사과정을 밟았고, 1985년 초음파진단기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었다. 연구실의 연구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삼성, 현대, 대우의 대기업에 가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그들은 쟁쟁한 외국계 경쟁회사를 두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1985년 7인의 창업자와 함께 메디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성정을 잘 아는 아내 이사랑은 대치동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초기 자금을 확보했고 남편을 대신해 365일 인감도장을 들고 서류를 떼러 다녔다.
메디슨은 이민화의 아이디어로 메디컬과 소닉이 합쳐져 나온 말이다.
메디슨 직원은 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에 나섰다. 결과 7개국 자회사와 70개국의 대리점으로 전 세계 판매망을 구축할 수 있었고, 확보한 시장에 기술혁신을 통한 신제품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메디슨은 연방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사내벤처를 시작했다. 사내벤처로 시작해 사외번체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이민화 회장이 추구한 사내벤처, 사외벤처를 활용한 메디슨 연방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졌다. 그만큼 평가에 있어 논란이 크다. ‘벤처의 공생을 위해 의미 있는 시도였다’라는 호평과 ‘대기업의 문어발식 기업확장과 다르지 않다’라는 비난이 공존하는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당대에도 그렇고 현재까지 의료용 진단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는 GPS(GE, 필립스, 지멘스)다. 메디슨은 후일 삼성전자가 인수해 삼성메디슨으로 성능이 뛰어난 초음파진단기로 의료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후 이민화 회장은 벤처자금을 모으는 젖줄로 활용되는 코스닥 설립에 관여했고, 벤처기업 특별법을 제정해 대한민국의 벤처신화를 써내려갔다. 그의 모든 성장 신화는 2003년 닷컴 버블 붕괴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이후 한양대, 디지스트, 카이스트 교수와 기업호민관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규제 해소와 애로사항을 접수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모든 활동은 나라를 위한 애국심의 발로였고 미래를 예측한 4차 산업혁명과 모바일 인류, 공유 플랫폼 경제를 예상한 것이었다.
<이민화 평전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에는 수많은 그의 가족과 지인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어 인간 이민화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2019년 66세의 나이에 부정맥으로 불꽃같은 수명을 다했을 때 많은 후배 벤처사업가와 지인들이 안타까워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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