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천년을 살리라 1 - 안중근 평전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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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천년을 살리라. - 안중근 의사의 불꽃 같은 삶!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판한 이문열 선생님의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안중근 선생님의 소설 형식을 빌어온 평전이다역시 명불허전이었다이문열 선생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불멸>은 제목으로 안중근 선생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공허하고 무미건조하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의거가 있고 난 뒤이를 기리기 위한 손문(쑨원)과 원세개(위안스카이)의 칠언절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1880년에서 1910년 손문과 원세개는 중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다손문 선생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서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고원세개는 행적에 논란이 있지만중국의 대표 군벌인 북양군벌의 수장이고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이고 중화제국 초대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사람이다.

 

신해혁명을 주도한 손문과 선통제를 퇴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던 반동 원세개가 똑같이 안중근 의사의 죽음을 애도한 칠언절구의 시구를 남겼다는 말은 안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가지는 당대 의미를 실감케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가슴 한편이 먹먹하고 안중근 의사의 어린 시절부터의 활약상과 그의 업적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된다. 30세의 나이에 가족과 자신이 그동안 길러온 조직을 모두 뒤로하고 이토를 살해하는 의거를 벌이기까지 그의 인생은 짧지만불꽃 같았다.

 

소설 <죽어 천년을 살리라>는 안중근 의사의 태생에서 시작한다할아버지 안인수는 안 의사의 몸에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개의 점이 있다 하여 응칠이란 이름으로 상서로움을 가렸고관례나 혼례를 치른 뒤에는 관명인 중근이라는 이름이 쓰이게 했다.

 

아버지 안태훈은 진사 출신의 지식인이었고평안도에서 학교를 세울 정도의 부자였다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책보다 무를 좋아했으며 총을 잘 다루었고 아버지 의병부대에서 활약하고 어려서부터 조직을 이끌었다.

 

청계동천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과 안중근의 출진으로 시작한다동학농민운동이 봉기가 되어 전국에 퍼지고 있었으며 나라는 어수선했다안태훈의 의병부대가 김창수(김구 선생)의 동학 농민군과 상호 대치한다안태훈은 대치 상황에서 김창수에게 비밀협정을 제시해 자신의 두 부대가 서로 싸우지 말 것을 제안한다안태훈은 김창수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서로 충동을 피할 수 있었다만일 두 부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한국의 독립운동의 역사는 새롭게 쓰였을 것이다동학 농민군은 패배하고 안태훈은 김구를 청계동천으로 불러들인다.

 

이후에도 김창수는 수시로 청계동천을 찾아 안태훈안중근 부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안태훈의 동생 안태진은 서울에 몸을 피할 곳이 없을 때 홍 교사(빌럼 신부)가 소개장을 써 주어 서울 종현 본당에서 몸을 피할 수 있었다청계동천으로 돌아온 안태진은 형 안태훈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이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라는 것에 공감해 바오로라는 세례명도 받고 천주교에 귀의한다.

안중근 역시 토마스라는 세례를 받지만천주교가 아버지만큼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충효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었으나교리문답과 책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안태훈의 명성으로 인근 마을의 120여 명이 교리문답에 나서고다른 마을까지 퍼져 400여 명이 예비신자가 되었다서울의 빌렘 신부는 청계동의 신도가 확장하는 현상을 확인하고자 직접 방문하게 되었고 안중근을 만난다.

안태훈 형제인 안태건은 서울에서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고천주교 전도를 하던 안태훈은 해주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안중근은 빌렘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빌렘 신부는 감옥의 관리들과 그 곁에서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향리들을 휘어잡는다이때 보여 준 빌렘 신부의 대담성과 위력은 그 뒤에 있는 안태훈의 위세와 명망이 어우러져 황해도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천주교 입교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인구 1천 5백만도 안 되던 조선 인구에 황해도 지역에 1천 5백 명이 세례를 받고 천주고 신자가 되었다.

 

안중근과 빌렘 신부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진다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만난 사람도 빌렘 신부였다.

 

안태훈은 감옥에 출소한 후 건강이 약화하였고청나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갔다청나라 의사는 안태훈의 복부를 걷어차는 폭력을 행사한다.

 

안중근이 청나라 의사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안태훈은 북양함대에서 여자를 태우고 전쟁을 치른다고 비난했으나청나라 의사 서가는 청군의 사기를 올리고 배수진의 의미로 가족을 함께 태우고 전쟁에 나서는 것이라 했다의사는 안태훈이 청을 비난해 혼내주었다고 한다.

 

안중근이 청계동에 이르니 안태훈이 세상을 떠난 지 열흘이 지났다.

안중근은 동생 정근공근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청계동에서 삼화항으로 떠날 것을 의논한다.

 

 

갑오년 동학농민운동이 청일전쟁을 앞당기게 했으며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으로 하여금 러일전쟁을 앞당기게 했다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청나라로부터 받은 막대한 보상금 대부분을 영국제 무기 구입에 투입하여 해군 전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영국제 군함으로 새롭게 함대를 편성해러시아 발트함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렸다.

 

이토 히로부미는 여러모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떠오르게 한다문자도 깨우치지 못한 도요토미와 달리 이토는 하급 무사의 아들로서 일찍이 관청의 사환이 되어 호코인이라는 절에서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후 요시다 쇼인이 세운 사립학교인 마쓰시타 정경숙으로 잘 알려지게 되는 쇼카손주쿠에서 공부하게 된다그는 난학영어서양 문물에 눈떴고 암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그는 막부를 재건하려는 학자와 정치인을 암살했으며 영국 공사관에 불을 질러 테러를 자행했다.

 

그는 하관전쟁막장전쟁에서 기회를 잡는다막부를 쓰러뜨리려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이토는 조슈번의 실권을 장악하고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연합하며 1868년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다.

1870년 이토는 재정과 화폐 제도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에 다녀온 후 이른바 이와쿠라 사절단에 끼어 두 해나 구미 제국을 시찰하고 돌아온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다루는 내용은 <죽어 천년을 살리라> 2권에서 계속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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