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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평점 :
그리운 작가, 박완서의 <호미>를 다시 읽는다.
열림원에서 출판한 박완서 작가님의 <호미>는 거의 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쓴 글을 엮은 산문집이다. 국어의 아름다움과 작가님의 솔직한 소회를 담고 있는 <호미>는 작가님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글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1931년생인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경험했고, 한국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온 가족이 빠져들었다.
개성에서 10킬로 떨어진 산골 벽촌에서 태어난 선생의 할아버지는 20호 마을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다. 한문을 가르치셨던 할아버지는 유교 질서에 평생을 살아왔지만, 어린 손녀딸에게 공부를 시키고 총명함을 느꼈다. (내 소설 속의 식민지 시대 중) 한국전쟁은 선생의 가족을 서울로 피난오게 했고, 선생은 전쟁 와중에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지만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중퇴하게 되었다. (호미 책날개 중)
1953년 결혼 후 네 딸과 외아들을 출산하고 기르는 동안 십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자녀를 어느 정도 기르고 미8군에서 화가와 미군을 연결해주는 일을 했다. 이때 만나게 된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을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을 담은 <나목>이 1970년 <여성동아>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데뷔한다.
수필의 제목인 ‘호미’는 그녀가 사랑하는 흙을 만지는 도구이다. 한국의 호미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건 근래의 일이지만 호미는 땅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숟가락이나 젓가락과 같다. 아파트에 살면 땅이 있는 집이 그립고 땅에 자신이 심은 꽃을 가꾸고 바라보는 시간을 자연과 동화하고 교감하는 시간이다.
선생이 마당에서 흙 주무르기를 좋아하는 걸 아는 친지들은 외국에 나갔다 올 때 곧잘 원예용 도구들을 선물로 사 오곤 한다. (호미 예찬 중) 호미는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를 보이고 단순하며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 예찬 중)
호미를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 아마존에서 인기리에 판매되는 한국의 호미는 국내에서는 3,000원~4,000원에 구매할 수 있지만, 아마존에서는 약 15~25달러에 구매해야 한다. 이유인진 ㄱ자로 꺾어진 유려한 곡선이 주는 호미의 편리함과 튼튼함 때문이다.
자녀들이 출가하고 나이가 들어 홀로 지내면서 삶을 꾸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높기에 홀로 남은 여성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다 보니 괜스레 아내의 모습이 투영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무턱대고 버리는 것이 걱정스럽고, 절약 정신이 투철한 것이 자본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고 자녀와 손자녀가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최근에 읽어서인지 감동적으로 다가온 글을 개성공단에 방문한 이야기다. 정착 개성에 방문해 제대로 된 고향 방문이나 구경을 하지 못했지만,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개성 출신의 수많은 이들은 전화로 선생님에게 개성에 관해 무엇을 보았는지 꼬치꼬치 물어본다. 행여나 고향에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지, 어떤 모습이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선생님의 글은 삶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 사회가 50년 만에 얼마나 달라졌는지 많은 점을 느끼게 되었다. 결혼 문화, 부모 봉양 문화, 여성의 사회적 지위, 주거 문화, 이웃과의 소통…. 이번 <호미>에서는 종교를 가지는 사연과 딸을 포함한 가족에게 남기는 글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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