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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사람, 조광조
조성일 지음 / 시간여행 / 2022년 4월
평점 :
시대를 초월해 요구되는 조광조의 개혁 정신
시간여행에서 출판한 조성일 작가님의 <개혁하는 사람, 조광조>는 그의 생애와 개혁 정신을 다루는 책이다. 조성일 작가님은 한양 조씨의 후손으로 정암 조광조의 직계 후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조광조 선생에 대해 알려진 내용을 모은 것에 더해 집안 가문에 전해지는 선생의 이야기를 보충하고 있다.
우리는 정체되지 않고 개혁을 통해 진보와 발전을 이루어왔다. 개혁이라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일으켜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역사를 통해 개혁을 생각하면 몇몇 인물이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 조선 시대 개혁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 정암 조광조 선생이다. 정암은 정치 생활 불과 4년 동안 여러 발자취와 강한 영향력을 남겼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1482년에 태어난 1519년 사사되었는데, 당대는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 반정(1506)이 일어난 시기이다. 한양 조씨라는 본에서 알 수 있듯이 가문은 고려 시대부터 고위 관료가 즐비했고, 선생의 고조부 조온은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고, 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 편에 서 정사공신이 되었다.
선생의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인 조원강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지방 관리로 나갔던 아버지를 따라 희천에 갔다가 무오사화로 인해 그곳에 유배중이던 김굉필을 처음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김굉필은 김종직의 제자로 정암에게 철저한 도학주의적 실천 사상을 가르쳤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소학, 근사록, 사서삼경을 익히며 서서히 이름을 높였다.
중종반정의 주역 3인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은 권력의 핵심 중추 세력이 되었지만, 수명을 오래 하지 못하고 중종 초기에 세상을 뜬다.
지금까지 공신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중종은 마침내 제대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가 선택한 이가 조광조였다.
조광조는 서른네 살의 나이로 늦깎이 벼슬길에 나와 상소를 올려 직분을 다하지 못한 양사 즉 사간원과 사헌부의 대간들과는 함께 일할 수 없으니 이들을 모두 그만두게 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드라마 <7일의 왕비>로 알려진 단경왕후 신씨의 복권을 요구했다. 폐비 신씨는 신수근의 자녀로 연산군의 매부인 신수근으로 단 7일간의 ‘중전’의 자리가 허락되었던 터였다.
단경왕후 윤씨가 원자를 낳고 사망하는 바람에 중전의 자리가 비었고, 이에 조정에서는 중전 자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폐비 신씨의 복권은 반정 정국공신 전체를 적으로 삼으려고 촉구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피바람을 몰고 올 수 있는 터였다.
대간의 주장에 따라 대간이 교체되는 와중에 조광조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고 조정 내 조광조를 추종하는 신하 세력은 늘어갔다. 이어 그는 정몽주의 문묘를 새로 세우고, 향약을 보급해 유학을 장려했다. 과거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고 현량과를 실시해 인재를 등용했다.
현량과는 기존 훈구세력에게는 심각한 위기감을 주었고, 마침내 소격서를 폐지하는 문제로 중종은 조광조에 균열을 일으킨다. 소격서는 도교식 제례를 행하는 의식인데 유학을 추구하는 사림 세력은 소격서를 따르는 의식을 폐지하고 싶었다. 중종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지만, 훈구세력 중 남곤, 정광필, 홍경주에게 쿠데타를 지시해 조광조 세력을 꺾는다.
야사로 알려진 ‘주초위왕’ 사건은 <선조실록>에 등장하고 있어 훈구세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중종과 사림세력의 틈을 벌리려고 애를 썼다. 남곤은 나뭇잎에다 ‘주초위왕’이라 쓰고, 그 위에 꿀을 발라 벌레가 갉아먹게 했다. 그리고 벌레가 갈아먹어 ‘주초위왕’이라 새겨진 나뭇잎을 경복궁 뒤 자신의 집에서 대궐로 가는 어구에 띄워 보냈다. ‘주초’는 조광조를 가리킨다. 이걸 중종에게 고변하여 조광조를 처리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율곡, 퇴계도 성정을 극찬했던 조광조, 당대 축첩이 유행이었지만 부인인 한산 이씨와 금실을 과시했다. 그는 개혁가로 알려졌지만, 강경파인 동료의 정책을 만류해 온건한 개혁을 추구했다.
조광조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중종이 죽고 나서야 가능했다. 인종이 즉위한 해 복권에 대한 상소가 있었고, 선조 때에 가서야 조광조에 대한 추종과 문묘 배향이 이루어졌다.
저자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인 ‘팩션(faction)’으로 글을 써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조광조의 삶과 사상을 다룬 팩션을 선보인다. 공정과 개혁을 상징하는 조광조 선생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의 방향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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