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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세계사에서 출판한 후안 엔리케스 교수님의 <무엇이 옳은가>는 옳고 그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시사한다. 그는 가장 도발적인 이슈를 던지는 미래학자이다.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빠르게 발달하는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만들 미래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구조를 이야기한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지지하는 가치관과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일까? 무엇이 옳은가에 관한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양극화가 극심하게 펼쳐지는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는 위험할 수 있다. 당시에 옳다고 여겨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옳다고 여기는 가치가 변화하여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될 수 있고, 평가받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옳다는 가치는 변화한다는 것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고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변화한다.
지나고 보면 나의 할아버지 세대에는 결혼 생활 동안 첩이 있었던 집이 있었고, 온 가족이 모여있는 방안에서 어른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용인되었다. 자녀와 학생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체벌이 사랑의 매라고 했던 적도 있다.
세계사로 시야를 돌리면 로마의 노예 제도는 천 년 동안 지속되었고, 흑인의 노예 제도 역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마야 제국에서는 비를 내리게 하거나 신들의 화를 달래기 위해 사람의 육신을 제물로 바쳤다. 심지어 자신의 몸이 제물이 되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벌여 이기기 위해 노력했던 시대도 있었다.
봉건 시대를 살펴보면 공개적인 처형이 벌어졌고, 참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마녀로 몰린 여성은 화형을 당하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도 생리를 하는 여성은 부정하다고 해 우리에 가두는 나라도 있다.
동성애에 관해선 20년 전에는 2/3의 미국인은 반대했지만, 현재는 2/3의 미국인은 찬성한다.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한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체스코 교황은 가장 최근 인터뷰를 통해 ‘내가 누구라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동성애자의 온전한 인권을 존중한다고 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더욱 빠르게 변화한다.
에너지의 발견과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수명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천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던 지구촌 경제는 갑작스레 폭발할 정도로 발전했다.
세계 대전은 새로운 무기의 등장을 초래했으며, 총기의 폭탄은 자신과 가치관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겼다.
총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공격한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SNS상의 메시지를 통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현대에 들어선 피임과 체외수정, 대리모와 대리부, 유전자 편집 등 지금까지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항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 검토하는 단계가 되곤 한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윤리관에 영향을 미치고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빠르게 변화한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고 스스로 확실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겸손한 태도와 덜 비난하는 자세, 그리고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행위를 놓고 야만적으로 여기리란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무엇이 옳은가>에서 저자의 주장하는 것은 겸손한 태도와 용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살았던 선조들이나 앞선 세대를 평가할 때 좀 더 겸손하게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선조들이 받았던 교육을 받고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우리 역시 잘못된 일이 많이 저질렀을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와 그르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시대에 맞춰 변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용서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잘못된 말을 했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몇 달 전, 몇 년 전에 어떤 말을 하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틀린 일을 했다고 해서 그들과 적대적으로 지내선 안 된다.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는 변화하고 과거에 옳다고 여기는 생각이 지금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평화롭게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려면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고 사람들에게 배워야 한다. 설령 그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로에게 틈을 줘야 한다. 옳고 그름의 중간 지대인 공감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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