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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피니
코너 오클레어리 지음, 김정아 옮김 / 가나출판사 / 2022년 3월
평점 :
무일푼 청년 사업가에서 재산 9.4조를 기부한 진짜 부자
가나에서 출판한 코너 오클레어리의 <척 피니>는 그의 일생을 다룬 평전이다. 척 피니는 우리에게 매일 11억 원을 기부하는 부자로 알려져 있다. 매일 11억 원이라는 금액도 놀랍지만,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9.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점은 더 놀랍다.
‘더 기빙 플레지’를 만든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가장 존경하는 사업가가 척 피니이고 그의 기부를 보고 영감을 받아 억만장자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클럽이 ‘더 기빙 플레지’이다.
척 피니는 1931년 뉴저지의 아일랜드 허름한 집에서 이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 가정은 어려운 형편에 넉넉하지 못한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어린 피니는 돈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다.
Photo by Federico Di Dio photography on Unsplash
아버지는 보험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간호사로 가정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부모 덕분에 세계 대공황을 잘 견뎌냈다. 어머니가 마음씨 좋은 옛날 미국인 인만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그래서 척 피니도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몰래 선행하라고 몸으로 가르쳤다. 찰스는 엄마가 남을 몰래 돕는 모습을 보고 자라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해 자신의 선행과 기부를 숨겼다.
10살의 나이에 크리스마스카드 판매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중학생 때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돈을 벌었고, 여름이면 해변에서 파라솔을 빌려주거나 물풍선을 얼굴로 맞으며 돈을 벌었다.
194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찰스는 열일곱 살에 미국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우들은 그를 척이라 불렀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찰스는 목숨을 잃을뻔한 경험을 하고 제대한다. 미국 공군으로 복무하는 동안 미군에 납품되는 면세 주류를 팔기도 했다. 면세품에 대해 눈을 뜬 피니는 미군이 주둔하는 항구 도시를 찾아 상품 거래량과 품목을 늘려갔다.
Photo by Florian Wehde on Unsplash
제대군인의 대학 교육을 위한 기금을 이용해 척은 코넬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대학교를 입학한 경우는 대단히 이례적이었다. 척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코넬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들과 매일 샌드위치 장사를 돈을 벌었고, 코넬대학교 호텔경영학과는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주는 발판이 되었다.
1960년 29세 대학 친구와 면세점 사업체를 인수해 DFS 면세점을 공동 창업했다. 우리가 하와이, 홍콩에서 보는 DFS 갤러리아가 피니가 설립한 회사이다. 그리고 매년 천만 달러 이상을 벌기 시작해, 1970년대 후반부터는 5천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연간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되어, 1988년에는 약 1조 5,000억 원(13억 달러)의 자산을 달성해 <포브스>가 발표한 부자 순위 23번째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자신의 기부를 남모르게 시작했다.
1982년 비밀리에 아틀랜틱 기부 재단을 설립한 찰스는 사람들 몰래 기부했다. 자신의 기부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 기부를 끊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아일랜드 대학 총장들이 은연중에 피니의 기부 사실을 흘리려 했을 때 그들은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기부는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피니는 1997년 그의 기부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15년간 2,900회에 걸쳐 무려 40억 달러(4조 5천억)를 기부했다.
Photo by Gregory DALLEAU on Unsplash
모든 쇼핑 사업의 최고 포식자는 LVMH의 아르노 회장이다. 그는 자신의 명품이 판매되는 지점을 알고 있었고, 척의 DFS를 구매하기로 했다. 1997년 DFS 매각 실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틀랜틱 기부 재단의 돈이 흘러나가는 회계를 발견했다. 척의 기부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피니와 다른 파트너는 DFS의 각자 지분 38.75%와 20%를 매각하며 각각 16.2억, 8.4억 달러를 챙겼다. 피니와 파커는 회사 장기근무자에게 각각 1천 6백만 달러, 8백만 달러를 기부해 수많은 직원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모교인 코넬대학교와 그의 고향인 아일랜드 대학의 교육 사업에 지원했다. 이후 미국, 아일랜드를 넘어 베트남, 필리핀, 쿠바 등 많은 나라의 의료 교육 분야에 지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매일 하루에 100만 달러 한화 약 11억 원을 매일 기부했다. 2014년 자산의 무려 99%인 66억 달러를 기부했다. 2020년 마침내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으며 자산 대비 기부 비율 1위라는 명성을 얻었다. 척 피니는 자신이 설립한 총 기부액 80억 달러를 달성한 후 자신의 아틀랜틱 기부 재단을 해체했다.
현재 피니는 15달러 시계를 차며 자신 소유의 아파트와 차도 없이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지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척은 억만장자가 존경하는 부자가 되었다.
척 피니는 기부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부하는 이유는 내가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난 돈을 정말 좋아하지만, 돈이 내 삶을 움직이진 못하죠.”
진정한 부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척 피니의 사업상 우여곡절과 기부에 관해 궁금하신 분에게 <척 피니>를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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