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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평전 - 호랑이를 탄 군주
박현모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조선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강명한 군주, 태종 이방원의 진면목을 담은 단 한 권의 책!
흐름출판에서 나온 박현모 교수님의 <태종 평전>은 태종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인 박현모 교수님은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정조(正祖)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1년부터 14년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정도전과 최명길 등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일본 ‘교토포럼’ 등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형 리더십’을 강의하는 한편, 시민강좌 ‘실록학교’를 운영해 왔다 현재 여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및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세종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 태종 평전 책날개 중 ]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화제리에 방영되고 있듯이 태종에 관한 드라마와 영화는 자주 등장한다. 얼핏 기억을 더듬어봐도 <용의 눈물>,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모두 태종이 주인공이거나 주요 인물로 등장한 사극이다. 태종을 조망한 드라마가 자주 편성되는 이유는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정립한 여말선초는 극적인 상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와 더불어 태종 이방원이 조선 건국 후 창업기를 거쳐 수성기로 진입하는 역사의 전환기, 그 폭풍의 중심에서 태종의 일대기를 조망한다. 특히, 출생에서 문과에 급제한 청년기, 혁명적 정치가로의 성장, 세자에서 왕으로 그리고 상왕을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과정을 실록을 기반해 되살려냈다.
태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기 위한 왕비 원경왕후 민씨, 며느리 소헌왕후 심씨, 후궁 가희아를 소개하고, 태종 재위 기간 동안 가장 지근거리에 있었던 재상 3인방 조준, 하륜, 권근의 재상 리더십을 조망한다.
태종이 꿈꾸었던 ‘소강’이라는 나라는 구현하기 위한 정치 개혁, 민생 개혁과 사대교린의 외교 정책과 조선의 기틀을 완성한 충녕대군으로의 세자 교체에 이르는 성공적인 전위를 통해 태종, 세종에 이르는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태종 이방원의 인지도와 인기와 비교해 그에 관한 연구와 저작물은 빈약하다. 국내에는 이한우 님의 9,090쪽에 이르는 18권 <태종실록>과 이를 축약한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 상,하권과 한충희, 박홍규님의 단행본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학계 연구도 박사 학위논문은 겨우 네 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태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종은 위기관리에 매우 탁월한 군주였다. 그의 왕위에 오르기까지 5번의 위기, 즉 1388년 5월 위화도회군 때 이방원은 두 어머니를 피신시켰다. 당시 개경에 있던 이방원은 처자가 있던 자기 집에는 들리지도 않고 친어머니 한씨와 계모 강씨가 있는 포천으로 달려가 최영의 정부군보다 먼저 도착해 그들을 데리고 동북면으로 향했다.
두 번째 위기는 1392년 5월 명나라에서 귀국하는 세자를 맞이하러 간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졌을 때였다. 이성계파를 견제하려던 정몽주에게 이성계의 낙마 사건은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정몽주는 언관을 움직여 조준, 정도전, 남은, 윤소중을 탄핵하게 했다. 정몽주가 이성계파를 모두 제거하러 개경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방원은 “자신이 책임을 감당할 것”이라며 조영규를 거느리고 정몽주를 척살한다.
세 번째 위기는 1392년 8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직후 여덟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정한 때이다. 이방석의 세자 책봉으로 이방원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실제로 실권자 정도전이 추진한 군제 개혁으로 이방원 등은 큰 곤경에 빠진다. 신덕왕후 강씨는 태조 이성계에게 정안군 이방원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변한다. 그때 이지란이 ‘정안군을 명나라에 보내자’라고 제안했고, 이성계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네 번째 위기는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이방석을 세자로 세운 정도전은 이듬해에 중군·좌군·우군을 모두 아우르는 의흥삼군부를 설치하고 스스로 총책임자가 되었다. 정도전은 종친의 사병을 혁파하고 국왕 중심으로 군제를 개편하는 국군화하려 했다. 이방원은 그의 혁명 동지였던 정도전을 척살한다.
다섯 번째 위기는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간이 개국공신 박포와 더불어 궁중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정보가 새어나가 역으로 숙청당하여 ‘박포의 난’으로 불리는 때이다. 이 위기 역시 이방원은 탁월한 정보력과 결단력 덕분에 제압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위기의 순간마다 선발제지(先發制之) 즉, 먼저 일어나 그것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위험한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태종의 리더십에서 주목할 점은 민심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당시 민심은 태종이 스승과 동생들을 죽이고 아버지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냉혈한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덕왕후 강씨의 원수를 갚겠다며 반란을 일으킨 ‘조사의의 난’에서 보듯이 당대 사람들은 태종의 즉위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았다.
그는 인사(人事)를 제대로 해 일을 잘하면 말이 순조로워지며, 민심이 돌아온다고 믿었다. 조준, 하륜, 권근 등 당대 최고 인재들을 중용했고, 이전 정권의 사람이든(조준), 고려 충신 이색의 제자든(권근)간에 능력이 있으면 크게 인정하고 등용했다.
결과적으로 1422년 그가 54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20년 동안 백성들은 평화로웠고, 물산이 풍부하여 창고가 가득 찼다.”라고 평가했다. 백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은 마치 엉킨 실타래 풀 듯이 세심하고 신중하게 접근해 풀었고 실마리를 찾았다.
오늘날, 국제정세와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태종의 보여준 국제정세에 따른 외교 전략 수립, 올바른 인재 등용을 기반으로 백성을 위한 정책을 집행함으로써 백성의 민심을 얻어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은 많은 시사할 점을 보여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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