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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일제 침략사 - 칼과 여자
임종국 지음 / 청년정신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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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칼, 다른 손에 기생을 품고 조선으로 건너온 일제의 추악한 얼굴
청년정신에서 출판한 일제 청산을 위해 인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밤의 일제 침략사>는 추악한 강점기를 조망한 책이다.
지정학적인 사안과 당대 이데올로기 문제로 인해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2차 세걔대전 후 비시정부와 콜라보(독일군에 협력한 사람)에 대한 조치와 친일파에 대한 조치는 극단으로 나뉘게 된다. 반민특위마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고 마무리된 상황은 친일파 세력이 권력에 얼마나 많이 포진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친일파 연구에 일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의 인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생은 1929년생으로 부모의 뜻으로 고려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대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했고 시인 이상을 동경했으며, 이상 전집을 펴내며 문학평론가로 알려졌다. 당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서울대 이어령, 고려대 임종국이라 할 정도의 명성을 쌓았다.
1945년 선생이 중학생 때 한 일본군 패잔병은 20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멈칫했으나, 1965년 한일회담이 이루어지자 그는 충격을 받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문학평론을 위한 작가들의 자료 수집 과정에서 친일행적을 발견한 선생은 <친일문학론>을 저술했다.
한일회담을 기점으로 그의 인생은 오롯이 친일파 청산을 위한 작업이었다. 그는 자료를 모으는 도중 부친의 친일 행적과 은사인 고려대 유진오 총장의 친일 행적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했다. 살아생전 아들과 함께 도서관 자료와 친일파 행적을 15시간 이상 기록했으며 이를 13,000장의 카드로 정리했다. 그의 유업은 ‘친일파 총서’를 저술하는 것이었지만, 끝내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완성하지 못하고 1989년 돌아가셨다.
선생의 장례식에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민족문제연구소>이고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마침내 2004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부모에 대해 항의하러 온 사람은 선생의 카드를 확인하고 말없이 돌아갔다는 일화는 그의 집요하고 철저한 조사의 신빙성을 알려준다.
<밤의 일제 침략사>는 그가 연구한 내용 중 일제 강점기를 중점적으로 통감, 총독별로 밤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2대 소네, 3대 통감이자 1대 총독 데라우치, 하세가와, 사이토, 야마나시, 다시 사이토, 우가키, 미나미, 고이소, 아베 노부유키 이상 10명이 일제 강점기 통감과 총독이다.
1919년 만세 사건까지 이토, 소네와 총독부의 데라우치, 하세가와는 모두 야마가카, 가쓰라 등의 급진 병합론자와 지연을 함께 한 조슈벌의 실력자였다. 만세 사건을 기점으로 책임론이 일었고, 조슈벌의 실력자에서 사쓰마벌에게 총독의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육군에서 해군으로 바뀌었고 민심 수습책의 하나로 문무관 총독을 등용한다고 개정했으나, 문관 총독은 끝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일제의 조선 지배는 전략적 군사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대만정벌로 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일제는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한다. 1876년 재선일본인은 처음 남자 52명, 여자 2명의 54명으로 시작해 1945년에는 71만 2천 5백 명으로 증가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일어난 밤의 역사를 자괴감을 가지며 저술하고 있다. 일제를 알면 알수록 현실의 대한민국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야만 했다.
일본의 화류계에 가장 먼저 물이 든 사람은 송병준이다. 1900년 요릿집 청화정을 개업한 그는 1906년 개진정을 차림으로써 조선인 오키야의 창업공신이 된다.
서양에서는 이슬람의 침략을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으로 대변된다. 이토는 한 손에 대포, 한 손에 기생을 데리고 조선에 왔다. 이토는 화류계의 제왕으로 무시무시한 정욕을 자랑했다. 심지어 양녀로 알려진 배정자와 불륜 관계는 물론 스파이로 키운 배정자는 을미사변 후 고종의 핑양천도 계획과 블라디보스톡 외행을 사전에 일본공사관에 알려 이를 물거품으로 만든다. 배정자는 이후 일군의 시베리아 출병 당시 봉천의 마적단을 매수하고, 경무국장 마루야마의 지령으로 독립투사 체로를 위해서도 암약한다.
이토는 화류계 여성을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의 충족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조선의 양반 대감이 일제의 술자리를 어려워 할 것을 예상해 술자리에 참여한 모든 사람 곁에 기생을 앉히고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은 옆의 기생이 다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조선 지도층을 주지육림의 세계로 빠지게 했다.
가장 어이없는 일 중 하나는 차관 교섭을 위해 이토가 아끼는 기녀에게 화대로 1천 원을 지급했고, 화대를 합한 대일차관 1천 3백만 원을 갚기 위해 조선인은 금연 금주를 해가며 벌인 운동이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점이었다. 기녀 요시다가 받은 비파 한 곡조 1천 원의 전무후무한 화대를 뒤치다꺼리 하기 위해서, 조선인은 범국민적으로 담배까지 끊어야 했다.
일본 여성들은 조선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너나 할 것 없이 조선으로 들어왔다. 게이샤의 훈련 과정이 없었지만, 화장을 통해 게이샤처럼 행세했고, 조선에 생기자마자 번창한 요정은 이들을 필요로 했다.
조선의 이권을 하나둘씩 화류계 여인들이 있는 요정에서 그들의 시중을 받으며 취한 듯이 넘어갔다. 저자는 화류계 여인들의 활약상(?)을 통해 당대 시절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이면에서 활약한 이들의 행동도 소개한다.
러일 전쟁에서 군사력만으로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일제는 아카시를 이용해 1백만 엔이라는 엄청난 공작금을 쏟아부어 러시아의 사회당과 반체제 과격분자 기타를 연합전선으로 묶도록 획책했으며 로마노프 왕조의 타도를 부채질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은 이렇게 해서 터지고 말았다.
1905년 크로포토킨 장군의 37만과 일군 오야마의 25만은 최후의 전투인 봉천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로 수송될 2개 군단의 증원군이 오면 총공격을 개시하고자 했으나 ‘피의 일요일’ 혁명으로 증원군이 도착하지 못했고, 사기마저 크게 떨어졌다.
고마쓰는 정치학교 시절 제자인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을 구워삶아서 합병 전선의 첩자로 투입한다. 이인직은 이완용과 고마쓰의 사이를 왕래하면서 합병의 이면 공장을 추진한다.
<밤의 일제 침략사>에는 지금까지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던 기생과 함께 탄생한 친일 매국노의 활동을 다루고 있으며 악의 꽃이 탄생한 요정의 실체를 조망한다.
요정을 둘러싼 조선 침략의 3대 원흉인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 총독부, 한국 주차군의 권력 다툼이 전개 및 진행되는 과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10명이 통감, 총독 중 이토와 소네를 제외하고는 메이지 유신의 공신이 조슈벌과 사쓰마벌 출신의 군인들이 총독으로 부임한다. 이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밤에도 그 속성이 변하지 않았다.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땅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의 세월은 훨신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무기보다 더 무서운 일본의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그로 인해서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면서 노예적인 삶을 오랫동안 살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임종국 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가 추구하고자 한 시대 정신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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