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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를 품은 이야기 - 최남단 도서 해안 구석구석에서 건져올린 속 깊고 진한 민속과 예술
이윤선 지음 / 다할미디어 / 2022년 1월
평점 :

레퓨지움 : 최남단 도서 해안 구석구석에서 건져올린 속 깊고 진한 민속과 예술
다할미디어에서 출판한 이윤선 작가님의 <남도를 품은 이야기>는 남도의 민속과 예술 이야기다. 저자는 민속학자이자 판소리와 무가 등 남도 소리에 밝은 예인이라는 소개가 책의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호남’이라는 말은 자주 사용해서 ‘남도’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궁금했다. 호남과 남도는 유사한 개념 혹은 동질의 장소를 지칭한다. 소박하게는 전남북 지역만을 통칭하기도 하고, 통시적으로는 호서, 영남 등과 견주어 제주를 포함한 광역권을 말한다. (5쪽)
저자는 ‘호남학’과 ‘남도학’의 차이점을 소개한다. 호남학은 역사 중심의 용례가 많고 남도학은 문화 중심의 용례로 접근한다. 호남학의 경계는 금강 이남, 섬진강 이서라는 권역을 설정하고 그 속의 민속문화적 특질을 규명한다면 남도학은 어떤 특질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
저자는 서울에 치인 여타 지방의, 낮은 이들이, 민중들이, 여성과 소외된 이들이, 작고 하찮은 것들이 비로소 부상하여 또 다른 중심을 이루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런 목적으로 ‘전남일보’에 꾸준히 연재한 칼럼 중 42편을 추려 탄생한 것이 <남도를 품은 이야기>이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는 여성을 포함한 민중들의 생활문화를 찾는 데 주목한다. 남도의 도서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인문학적 발굴과 소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남도의 정서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남도는 중앙 정치에서 좌천되어 유배를 당한 사람이 머물던 곳이었다. 대표적으로 정약용, 정약전 선생의 이야기는 주목할만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기에 정약전 선생으로 알려진 문순득 이야기는 흥미롭다. 홍어잡이를 떠난 문순득은 바다에 표류해 오키나와에서 8개월, 여송(필리핀)에서 9개월, 마카오(중국)에서 14개월을 체류했다. 그는 3년 만에 다시 돌아왔고 우이도에 귀양 가 있는 정약전이 정리한 책이 <표해시말>이다.
그는 필리핀의 세인트폴 대성당을 보고 또 다른 세상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생의 의지로 새로운 언어를 접할 때마다 빠르게 적응해 하늘 아래 최초 여행자라는 별칭처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지금도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신안 우이도의 생가에서 오키나와의 북춤을 공연하고 있다.
나주의 운봉리에는 조선 창업의 주역 중 한 명인 정도전이 유래를 왔다. 권력에 떠밀려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술을 빚어 그에게 대접하는 지인도 있었고, 천민들이 모여 사는 부곡마을인데 농부와 노인의 경륜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은 고려를 세울 때 반대했던 백제의 유민 후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황연과 술을 마시는 중 정도전은 국가경영의 위기를 경험한다. 불교에서는 윤회론을 들어 지은 농사 대부분을 권문세족과 사찰이 가져가지만, 농부들에게 이번 생을 이승에서 참으면 다음 생에는 복락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정도전은 사찰과 무신 세족의 전횡을 확인하고 이때의 경험을 <불씨잡변>으로 남겨둔다.
남도의 예술이라고 하면 한이 서린 인생과 득음을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했던 <서편제>가 떠오른다. 같은 아리랑도 진도 아리랑이라도 남도의 소리에는 고난과 한이 서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춤에서도 남도를 대표하는 춤꾼으로 공옥진 여사가 소개된다. 지금이야 2NE1의 공민지의 할머니로 유명하지만 어린 시절 공옥진 여사의 춤을 보면 보통의 춤선에 비해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정형을 깨어버리고 창조의 모습이었다. 여사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던 1938년, 춤을 배우기 위해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에게 몸값 천 원에 팔아넘기기로 했다.
기대와 달리 일본에서 식모살이하며 몰래 최승희의 춤을 보다 혼나기도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옥진을 불러다 춤을 가르쳐줬다. 7년이 흘러 천황의 항복 선언을 듣고 옥진은 조선으로 돌아왔다. 사실 공옥진 여사의 춤은 ‘병신춤’이라 했지만, 이후 ‘동물춤’으로 1인 창무극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다.
옛말에 이르기를 “안동에 가서 제사법 가지고 따지지 말고 진도에 가서는 북 치는 법 가지고 따지지 말라” 한다. 진도의 북춤과 관련한 춤 이름과 소리가 그만큼 다양하다.
판소리의 명인인 장월중선(1925~1998)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한국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편의 고향인 목포 인근의 섬으로 피난하지만 남펴은 갑작스레 사망한다. 그녀는 그동안의 명성을 살려 목포에 국악 강습소를 차렸고, 후일 판소리계의 거목으로 성장하는 안향련과 딸 정순임을 가르쳤다. 목포의 예술계는 해방이 되자 들썩이게 된다. 안중근전, 이준열사전, 유관순전 등 창작판소리를 만들어 민족혼을 고취하려 한 박동실이 월북하게 되면서 곤란한 처치에 이른다. 전쟁 직후 <열사가>를 가르치거나 말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도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있다. 이름도 빛도 없던 소외된 이들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레퓨지움에 관한 바람이 간절하다. 레퓨지움은 빙하기와 같은 대륙 전체의 기후 변화기에, 다른 곳에서는 멸종된 것이 살아있는 지역들을 말한다. 피신처와 난민을 뜻하는 레퓨지(refuge)를 생각하면 레퓨지움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레퓨지아이다. 우리가 되돌아보고 추구해야할 가치는 레퓨지움을 일으켜 그곳으로 회향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남도를 품은 이야기>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레퓨지움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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