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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인생 수업
에디 제이쿠 지음, 홍현숙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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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인생 수업
동양북스에서 출판한 에디 제이쿠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그의 감동 실화와 인생 교훈을 담고 있다.
에디 제이쿠는 1920년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유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 유대인으로 독일에 정착했다. 정밀 기계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어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세우고 에디가 태어났다. 라이프치히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향악단이 있었으며, 바흐, 슈만, 멘델스존 등의 음악가뿐 아니라, 괴테, 라이프니츠, 니체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시인 및 철학자에게 영감을 준 도시였다.
유대인은 수백 년 동안 라이프치히 사회의 중추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기 시작한다.
에디는 기계공학을 공부했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다. 아버지는 그에게 가짜 서류를 만들어 독일인 이름으로 기계공학 대학에 계속 다니도록 했다.
1938년 11월 9일,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스무 번째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 결정은 그의 인생에 있어 최악의 실수였다.
그날은 ‘크리스탈나흐트’라고 ‘수정의 밤’으로 불리는 날이었다. 독일인은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독일 전역의 유대인의 집과 상점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으며 허물었다. 군중은 폭도로 변했고 전날까지 함께 웃었던 이웃과 친구들은 폭력과 약탈에 가담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200년 된 그의 집은 무너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닥스훈트 룰루는 군인의 칼에 쓰러졌다. 그는 존엄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죽지 않을 만큼 구타를 당한 그는 군인에 의해 이송되었다. 수용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의 신변에 닥친 파도는 격동에 휩싸였다.
‘크리스탈나흐트’가 지나고 부헨발트로 이송된 날에는 더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부헨발트는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제 수용소로, 인근 너도밤나무 숲의 이름을 붙인 곳이다. 이곳은 고문당하는 수감자들이 지르는 비명 때문에 ‘노래하는 숲’으로 악명이 높았다.
부헨발트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화장지도 없었고, 그곳에서 일을 보고 나면 무엇이든 눈에 띄는 누더기나, 그것마저 없으면 손으로 직접 닦아야 했다. 제대로 된 변기조차 없었다. 대신 도랑같이 길게 판 거대한 구덩이가 화장실이었고, 그것도 스물다섯 명 정도가 동시에 일을 봐야 했다. 어떤 광경일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의사, 변호사, 교수였던 스물다섯 사람이 긴 나무 널빤지 두 개 위에서 조심조심 몸의 균형을 잡으며 인분이 가득한 위에서 일을 보는 모습을. (53쪽)
나치는 매일 게임을 벌였다. 문을 열고 이삼백 명 정도를 밖으로 나오게 해서 기관총으로 사람들을 마구 쏘아 죽였다.
어느 날, 부헨발트에서 에디는 기계공학을 공부할 때 기숙사에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수용소장에게 에디가 뛰어난 기계공이라 소개했다.
기계공으로 일을 하다 가족과 연락이 닿은 에디는 탈출에 성공해 벨기에로 도주한다. 에디는 가족과 만나고 딱 2주 동안 자유를 누리고 벨기에 헌병대에 사로잡힌다.
그는 다음 수용소에서 들어갈 때 악명 높은 문장이 새겨진 철조망을 보았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아우슈비츠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수용소였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감자 생존율은 1%보다 낮았다. 평균 생존 기간도 4개월을 넘지 않는 이곳의 지옥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생존자의 증언으로 국제 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영하 8도인 추운 날씨에 발가벗고 자야 했다. 매일 동사자가 속출했고, 체온을 나누기 위해 껴안고 잔 상대방이 얼어 죽은 것을 발견하고 했다.
에디 역시 친구 쿠르트가 없었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목이 아플 때 스카프를 반으로 잘라 나누었고, 영혼이 사그라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영원한 작별을 한 것이다.
그는 미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벗어나 벨기에를 거쳐 호주에 거주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고 아들을 낳으며 자신의 내면에 쌓여있는 증오를 행복으로 바꾸었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증오는 자신의 적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또한 자신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란 걸 알았다.”
호주에서 그는 기계를 잘 만지는 실력을 발휘해 자동차 정비공으로 시작해 자동차 수리 센터를 운영했고, 사업은 더 크게 성공했다. 이후에는 자동차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컨설팅 업체를 운영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식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노년이 되면서 털어놓기 시작한 그는 결국 1992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에서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강연하는 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 방문객에게 자신의 경험을 웃음을 띈 채 들려주는 에디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방문객에게 살아있다면 당신은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비극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잊어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고, 긍정적인 마음과 행복한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살아있다면 행복을 즐기고 웃을 시간을 가지자. 주위에 친절을 베푸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앞을 걷지 마세요.
저는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 뒤에서 걷지 마세요.
제가 앞장서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옆에 걸으며 친구가 되어주세요.”
에디는 세상 사람에게 행복한 삶에 관한 교훈을 전달하고 2021년 10월 시드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다루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에디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옆의 가족에게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 건네본 적이 없다면 지금 한번 건네보세요.
우리의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답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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