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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한 뉴에디트 완역판, 책 읽어드립니다
혜경궁 홍씨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궁중비사
스타북스에서 출판한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은 영조, 정조, 순조 대의 궁중비사를 다루고 있다. 최근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조와 성덕임(의빈 성씨)의 사랑에 주목하고 있다. 한중록은 혜경궁의 입궁 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사도세자(경모궁)가 죽임을 당하는 임오화변(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 홍씨 집안의 내력과 억울함, 혜경궁의 회상을 서술한다.
혜경궁 홍씨는 조선 21대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빈이자 조선 22대왕 정조의 생모이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의 차녀로 1735년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이다. 열 살의 나이에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의소세손과 정조, 청연공주와 청선공주를 낳았다. 맏아들 의소세손이 세 살 만에 죽고, 남편 사도세자는 당쟁의 대립 속에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에 갇혀 죽는 비운을 겪었다. 마흔두 살 때 둘째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올랐는데, 아버지 홍봉한을 비롯한 외가가 정조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으로 간주되어 배척당하게 된다. 1800년 손자 순조가 즉위했지만 나이가 어려 영조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고,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인물들이 대대적으로 숙청되면서 혜경궁 홍씨의 동생 홍낙임도 처형되었다.
[ 한중록 책날개 중 ]
평소 즐겨 읽는 역사블로거 히스토리님의 글에서 자주 다루었던 <한중록>으로 평소 궁금하던 내용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누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고 정치적인 의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한중록’ 역시 임오화변이 일어난 원인, 몰락한 풍산홍씨 가문의 재건을 부탁하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작성되었다.
총 네 번에 걸쳐 저술된 한중록을 스타북스에서는 최신 언어로 읽기 쉽게 번역했다. 안 그래도 한자어가 많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읽기에는 수월했고 평소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혜경궁은 1735년에 태어난 1815년까지 생존해 당시 수명을 생각하면 장수했으며, 열 살에 궁에 들어와 임오화변이 있었던 직후 잠시 친정에 왔을 뿐 70여 년 평생을 궁에서 생활했으니 조선 후기 궁에 관해 가장 정통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혜경궁의 5대조가 선조의 사위로 집안은 재상 가문이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받지는 않아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녀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잘 키우라며 유모를 보냈다. 아버지 홍봉한은 성균관의 진사로 송시열의 문묘에 배향하자는 상소를 올려 영조에게 불만은 산다.
후일 사도세자가 성인이 되고, 베필을 알아볼 때 홍봉한의 집안이 부마 집안(왕의 사위)으로 혜경궁을 세자빈으로 염두에 둔다.
세자빈을 간택할 때, 세 번의 간택 과정을 거치지만 혜경궁은 미리 낙점이 된 듯하다. 홍봉한은 딸의 세자빈 간택으로 권력의 중심으로 거듭난다.
영조 후기와 정조 초기 권세를 누렸던 집안이 풍산홍씨 가문이다.
임오화변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다루는 주제로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의 악행을 참다못해 뒤주에 가둬 죽이는 사건이다. 이에 대해 영조가 노론의 정치력에 굴복한 사건이라는 의견과 영조의 의지로 실행한 사건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의 병이 심해져 이를 참다못한 영조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 한다.
정조가 성덕임을 향한 사랑이 진심이듯, 영조 또한 사랑하는 영빈 이씨(선희궁)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불행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선희궁과 낳은 화평 옹주를 지극히 사랑했다. 문제는 그녀가 일찍이 출산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영조의 상실감이 아들인 경모궁(사도세자)에 불똥이 튄 거로 보인다. 혜경궁은 경모궁의 일탈이 시작한 것이 상궁에 의해 어린 시절 칼을 들고 놀게 한 것에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경모궁이 상궁을 죽이고 악행을 저지르며 의대증(옷을 입지 못하는 병)을 겪는 것은 그가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에 할머니 선희궁, 할아버지 홍봉한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나 실은 영조의 눈밖에 벗어날 수밖에 없던 경모궁의 일탈이 원인이었다.
오히려 혜경궁은 임오화변(1762) 때 자신 역시 죽으려 자결을 실행했으나 동석한 이의 제지로 죽을 수 없었고, 이후 세손(정조)의 앞날을 생각해 마지못해 살았다고 회상한다.
혜경궁은 10살에 간택되어 15세에 합궁을 하고 첫째인 의소세손을 낳았지만, 그는 3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사망한 해 정조가 태어난다. 혜경궁은 20살 이전에 자식을 보내고 새로운 자식을 얻는 삶의 희로애락을 겪었다.
남편인 경모궁이 후궁을 살해하고 박하게 대했을 때도 후궁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
풍산홍씨 가문의 홍봉한과 홍인한 형제는 영조 후기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한 사연으로 정조가 왕위로 오르자 화완옹주, 정후겸과 함께 가장 먼저 처벌을 받는다. 혜경궁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왕에 오르자 친정이 몰락한 모습을 지켜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에 앞장선 이가 자신의 10촌 형제인 홍국영이었다.
홍국영은 세도정치를 처음 시행했던 이로 정조의 복심이라고 알려졌으나, 동생 원빈 홍씨를 정조의 후궁으로 삼는다. 원빈 홍씨가 가례를 치른 후 1년 만에 죽자 홍국영은 은언군(사도세자 3남)의 아들을 양자로 삼고 이름을 완풍군으로 고친다. 이는 왕실의 완산(전주), 풍산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이 일로 홍국영은 정조에게 미움을 사고 처벌받는다.
<한중록>은 첫 번째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정조가 승하하고 어린 왕 순조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다. 혜경궁의 <한중록>은 <인현왕후전>, <계축일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궁중문학 작품으로 평가된다. 현대 언어로 새롭게 선보인 스타북스의 <한중록>으로 조선 후기 궁중에서 벌어진 많은 궁금증을 알 수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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