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열일곱 살여고생들의 섬세한 이야기들

 

소담출판사에서 2005년 에쿠니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리커버판을 새로 출시했다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김난주 님의 번역으로 인해서인지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 사람의 감정을 예리하지만 덤덤하게 그려 낸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워낙 인상적으로 읽었고근래 <도쿄 타워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도 기대하며 읽었다.

 

역시 이번에도 묘한 느낌이다단편소설 모음집인지 모르고 읽다 보니독립된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중간중간 겹쳐나오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었다.

 

여고생 시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저자는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그 시절을 소중한 시절이었다는 점을 알려준다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지만아직 정신은 다 성숙하지 못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고등학생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현재의 나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마음을 가졌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은 당시 친구의 회상을 통해 재발견하곤 한다.

 

 

저자가 전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는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빠가 전근을 가 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기쿠코는 통하길 전철에서 사람의 손길을 느꼈다.

 

손은 오른쪽에서 내 재킷 안으로 침입하여 재빨리 등을 스치고 지나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아주 꽉가늘고 싸늘한 손가락남자의 손이 아니었다금방 알 수 있었다.

 

손가락은 즐기듯 잠시 내 왼쪽 옆구리를 오르내렸다점퍼스커트 위로적당히 힘주어만진다기보다 겨드랑이에서 가슴그리고 허리로 이어지는 빈약한 선을 확인이라도 하듯빈틈없는 동작이었다. (19)

 

강렬한 이야기로 시작한다전철에서 치한이라고 생각한 손길이 예상과는 달리 여자인 것을 깨닫자 기쿠코는 찰나의 시간에 갖은 감정을 경험한다자신은 불감증이라 생각했는데다음에 그녀의 향수를 맡고 궁금증이 일어 따라 내리게 된다.

 

<초록고양이>에 등장하는 에미는 신경이 예민하다같은 반의 여자아이들도 눈치채고 에미와 주인공 모에 주위에 선을 그었다에미는 반에서 외톨이였다모두들 에미를 피했고에미가 손을 댄 것은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다에미의 책상과 교과서에 저질스런 낙서를 갈겨 놓기도 했다. ‘노이로제니 비정상이니, ‘세균이라고.

 

사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에미는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마침내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멍한 표정으로 에미가 말했다.

나는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어다시 태어나면.”

보라색 눈의 초록 고양이라고 말하고 에미는 꿈을 꾸듯 미소지었다병원 침대 누워서도 그 생각만 했다고 한다. (91)

 

<사탕일기>에 등장하는 카나는 날씬한 남동생과 체형이 다르다의자에 앉을 때도 엉덩이가 끼어 불편할 때가 더러 있다아르바이트 가게의 아줌마는 카나가 성격도 명랑하고 일도 잘하니까결혼하면 잘 살 거라는 칭찬을 건넨다단골손님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이런 날이면 카나는 아줌마와 단골손님에게 검정 사탕을 잔뜩 선사한다.

 

사탕은 독약지금은 그저 수첩에다 달아 놓은 뿐이지만.

 

파란 사탕은 가벼운 독가벼운 벌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아마도 미미한 두통과 구역질 정도검정 사탕은 독한 독죽음에 이르는 독이다지금까지 사탕일기를 쓰면서 몇 명이나 독살했는지 모른다한 명을 몇 번이나 죽인 적도 있다몇 번이고몇 번이고반복해서. (159)

 

카나는 원조교제를 하는 친구 아야와 묘하게 친하다서로 노는 친구도 다르고 밥도 같이 먹는 사이는 아니지만 카나는 아야를 바보 취급도 하며 존경한다얼굴도 별로고 머리도 별로지만아야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신의 힘에만 의지해 살기 때문이다.

아야는 기대란 것을 품고 있지 않은 듯하다.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는 여고생들의 생활이 마냥 어리고 달콤하지는 않다성장통을 겪고 사랑에 대해 쓰디쓴 경험을 하며 성인이 된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우리의 서툴렀던 시절과 그때의 감정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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