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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요즘 들어 부쩍 불면증에 시달려 한 시간도 잘 자지 못해 불면의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운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지고 내가 만들어낸 공간은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한다.
단 며칠 동안 내가 만들어낸 공간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인데, 휴고상으로 수상한 수재나 클라크는 자신이 건강이 악화해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그 시간 동안 축성한 자신만의 공간을 <피라네시>로 펼쳐낸다.
책을 읽는 동안 이미지를 그리고 배경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피라네시를 시각적으로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잔상 효과는 뛰어나 피라네시가 머무른 홀과 수많은 현관에 자리를 잡은 방, 방을 가득 채우는 조각상의 이미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굳이 영화로 해석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갇히게 된 다른 차원의 공간 속을 ‘메멘토’의 레너드가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수많은 홀로 이루어진 공간 속을 헤집고 다니는 역할이 ‘피라네시’다.
Photo by beasty . on Unsplash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나는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 세 개의 밀물이 합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것은 오직 팔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홉째 현관은 웅장한 계단이 세 개 있어 눈에 띄는 장소이다. 벽에는 대리석 조각상들이 무수히 늘어서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한 단, 한 단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다. (17쪽)
이 책은 피라네시가 경험한 네다섯 동안의 기록을 기반으로 펼쳐진다.
피라네시가 머무르는 공간은 수많은 방과 현관, 홀이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집은 세 층이 있다. 아래층 홀들은 조수들이 들어오고 어류, 갑각류, 해조류가 영양분을 공급한다. 위쪽 홀들은 구름의 영역이다.
그는 세상이 시작한 이래 열다섯 명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모두 죽고 자신의 집에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피라네시는 열다섯 사람의 이름과 위치를 기록했다.
Photo by Marius George Oprea on Unsplash
다음으로 등장하는 나머지 사람은 이 세상 어딘가에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피라네시’라는 이름도 나머지 사람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가 기억하기로 자신의 이름은 ‘피라네시’가 아니다.
피라네시는 자신이 관찰한 바를 열여섯째 사람에게 남기기 위해 기록한다.
“그게 아니야, 피라네시. 이게 자네한테 중요한 일이라는 거 나도 알고,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유감스럽네. 하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야. 정반대지. 이 사람, 16은 나를 해치려고 하네. 16은 내 적이야. 그러니까 자네의 적이기도 하지.” (111쪽)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를 확인하듯 질문하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다. 그는 ‘16’이 나타나면 말을 걸지 말고 물러나야 그 사람이 피라네시를 보지 못 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피라네시는 16에 글을 적어 소통하는 동안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피라네시’가 만들어내는 잔상을 강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믿어야 할까? 자신이 믿고 살았던 사람이 의도하지 않게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피라네시’를 읽는 동안 개인사와 겹쳐져 작가가 쌓아 올린 미로에 빠져들어 인간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진실과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이고, 정신이 만들어낸 환영과 진실의 틈은 얼마나 큰 걸까?
내 마음속에는 모든 조수, 각각의 때와, 밀물과 썰물이 담겨있다. 내 마음속에는 모든 홀, 그 끝없이 이어진 홀들이, 그 복잡한 경로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이 너무 버거워질 때면, 소음과 오물과 사람들에 지겨워질 때면, 나는 눈을 감고 특정 현관을 마음속으로 불러 본다. 그러고는 어떤 홀을 불러 본다. 나는 현관에서 홀로 가는 길을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342쪽)
SF소설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거로 예상되는 수재나 클라크의 <피라네시>에 미궁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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