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맛 모모푸쿠 - 뉴욕을 사로잡은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이 들려주는 성공하는 문화와 놀랍도록 솔직한 행운의 뒷이야기
데이비드 장 지음, 이용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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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사로잡은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이 들려주는 성공하는 문화와 놀랍도록 솔직한 행운의 뒷이야기

 

푸른숲에서 출판한 데이비즈 장 지은이이용재 옮긴이의 <인생의 맛 모모푸쿠>는 뉴욕의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의 자서전과 성공담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장은 데이비드 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 셰프이다한인 2세대 교포로 대학 졸업 후 여러 나라와 직업을 전전했다자신이 책상에 앉아 일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뉴욕 명문 요리학교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The French Culinary Institute에 들어갔다이후 그저 그런 요리사였지만 2004년 언더그라운드 음식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올 수 있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 맨해튼의 좁고 구석진 공간에 모모푸쿠라는 이름의 작은 누들 바를 차렸다주변에서 다들 뜯어말린 이 멍청한 선택’ 덕분에 2010년과 2012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이름을 올리며 요식업계 트렌드를 이끄는 전 세계적인 셰프가 됐다.

인생의 맛 모모푸쿠 책날개 중 ]

 

모모푸쿠라는 가게 이름은 듣고 나는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매일 한 끼 라면을 먹다 돌아가신 분이다그의 나이는 97세였지만 말이다인간 최고의 음식 중 하나인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고컵라면을 개발한 모모푸쿠 안도이다대만인이지만 오사카의 닛신식품을 세웠고 일본 포장용기 라면의 닛신이 그가 설립한 회사다.

 

일본 라멘 식당은 수타면에 육수를 끓여서 영업하는 곳이 많은데뉴욕의 라멘가게 모모푸쿠 누들 바는 미국의 스타 셰프 데이비즈 장과 함께 성장한 가게이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2세이고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어린 시절 재능을 보인 분야는 골프지만 대학 이후에는 자신의 재능을 넘어서는 사람을 지켜봐야만 했다이민 2세대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한국인 유학생 그룹에 어울리기에는 너무 미국인이고미국인에게는 너무 아시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자신의 맡은 일이 얼마나 지루한지 회사 파티에서 폭탄 발언을 하지만 직장 상사는 오히려 솔직한 그의 모습에 감탄한다.

 

직업 박람회에서 우연히 눈에 띤 일본 영어 교사직에 지원한 후일본의 와카야마현에서 일본 사회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인 이민자의 모습도 관찰한다처음으로 양극성 성격장애의 한쪽 끝인 조증을 심하게 겪었다이 시기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카뮈를 접하고 자살자의 심리에 빠져든다.

 

뉴욕으로 돌아와 금융 서비스 회사에 다니던 시절 그의 생활은 엉망이었다스키를 타다 나무로 돌진했고버스가 후진할 때 사고가 났다가장 최악인 시절은 2000년 새해 전날 파티에서 온갖 약물을 섞어 마신 술을 취해 유리 식탁 위로 쓰러졌을 때였다간신히 죽음의 길에서 비껴간 데이비드는 마침내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고 죽음을 집착하지 않고 삶을 위한 실행을 다짐한다.

 

그는 요식업 특히 레스토랑에 빠져들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음식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4년 미국에서 일본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한국식 오데가에서 스시가 팔리는 모습을 보고 데이비드는 국수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장은 2004년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1번가 163번지 56에 월세는 6천 달러의 작은 가게 모모푸쿠 누들 바를 열었다소원한 관계로 지냈던 아버지가 버지니아의 유지와 회계사 추천으로 10만 달러를 빌려주셨다데이비드의 27천 달러로 가게를 열 자금을 마련했다지금도 회사명은 조 장과 데이브 장이 함께 세웠다는 의미로 회사명은 JCDC 유한회사이다.

 

모모푸쿠 안도에서 가게 이름을 만들었지만영어로는 상호가 너무 음란하다며 인가해 줄 수 없다고 했다환경 보호국은 돼지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이유로 영업을 막으려 했다.

 

처음 그의 손님들은 데이비드의 라멘 요리에 혹평을 쏟아붓는다데이비드와 동료 셰프인 퀴노는 가족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음식을 요리하고 싶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창의적인 노력으로 메뉴를 개선했다각기 다른 세계 문화를 아우르는 누들바는 서서히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모모푸쿠 누들 바는 뉴욕을 대표하는 맛집이 되었고이후 모모푸쿠 쌈 바모모푸쿠 코를 성공한다.

 

모든 일에 성공의 오르막길이 이어지면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데이비드는 인터뷰 자리에서 청중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요리사에 대해 농담을 건네지만그의 말은 이제 공신력을 가지고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다그는 요리에 관한 수상이 이어지고 자신이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다그의 가게는 미쉐린 별을 획득했다이 모든 유명세를 그는 불안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모모푸쿠 누들 바의 동료 셰프 퀴노와의 이별 후 아버지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모모푸쿠의 핵심 인물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끼던 셰프의 죽음은 커다란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2004년 10년 임대하기로 계약한 모모푸쿠 누들 바의 계약 연장을 합의하지 않았다계속 영업한다면 다음으로 죽을 사람은 그 자신이라 느꼈다.

 

데이비드는 이후 럭키 피치라는 앱에 성공했고 잡지로 발간했다.

 

모모푸쿠 그룹은 요식업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다세계 각지에 지점을 열고 있고셰프 중심의 문화를 확립해 새로운 메뉴 개발을 주문한다.

 

데이비드 장은 스타 셰프를 넘어 연예인과 같은 인기와 명성을 얻었고 그의 제국을 만들어가는 경영인이다.

 

<인생의 맛 모모푸쿠>는 그가 걸어온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어려움과 동료 요리사와의 갈등과 화해특히 여직원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부족했던 점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특히 아들을 위해 예전 친구지인과 화해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코로나19로 모모푸쿠 레스토랑은 현재 전부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뉴욕을 비롯한 엄청나게 많은 요식업 종사자가 비슷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

 

라멘을 생각하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라면이라는 점이 떠올랐다내게 라멘을 상징하는 인물은 모모푸쿠 안도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의 배고픔을 덜어준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노르웨이 라면왕 미스터 리와 이제는 뉴욕의 누들 바에서 시작한 모모푸쿠 그룹의 데이비드 장이 새로이 새겨졌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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