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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r/e/reimmagen/IMG_tokyo_ueno_station_00.jpg)
“나는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소미미디어에서 출판한 유미리 지은이, 강병화 옮긴이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 철거당하는 사람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돌아본다.
우리는 노숙자를 마주치게 되면 으레 냄새가 나던지 나에게 무슨 요구를 할지 몰라 애써 외면하고 가능한 개인 간 거리를 멀리하고 피하게 된다. 철저하게 방역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상대처럼 저 사람은 젊어서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노숙자로 전락했을 거라 쉽게 단정한다.
노숙자로 전락한 이유는 개인에게 온전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저자인 유미리 작가님은 1968년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한국 국적의 소설가·극작가다. 외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마을처럼 살아라”라는 뜻으로 지어 준 ‘美里’라는 이름과 달리 ‘일본 속의 한국인’으로서 굴곡진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지메(학교 괴롭힘)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뮤지컬 극단 ‘도쿄 키드 브라더스’에 입단, 연기와 연출 경력을 쌓다가 1988년 희곡 『물속의 친구에게』로 극작가로 데뷔했다.
1997년 <가족시네마>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데, 자신을 우익 단체 소속으로 밝힌 남성의 협박 전화로 인해 사인회 행사가 취소되는 사건을 겪는다.
이번 작품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2014)>으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선다. 사회가 애써 외면한 불우한 이웃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건’을 표방한 2020년 도쿄 올림픽 준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 말았다.
일본 언론에서 전미도서상 수상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일자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말해 다시 한번 일본 사회에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지방에 살아서인지 서울과 도쿄는 같은 여행지도 다가온다. 서울과 도쿄는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에노역은 도호쿠 지방 사람들이 도쿄에 입성할 때 관문과도 같다. 우에노역에서 야마노테선 지하철이 실어나르는 시민을 보면 서울 지하철 2호선이 떠오른다.
우에노는 마치 서울의 청량리나 영등포역과 같은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우에노 공원은 두 차례 여행을 통해 느낀 점은 서울 종로의 탑골 공원에서 받은 느낌과 흡사하다.
공원에 있는 사이고 타카모리 동상과 왕인 박사 기념비가 함께 있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사이고 타카모리는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된 메이지 유신의 핵심 인물로 바쿠후 시대를 종결시키고 일왕복고와 개화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일본 영웅이다. 우에노 공원은 이전 우에노 언덕이었고 보신 전쟁(메이지 정부군 vs. 바쿠후 군)이 벌어진 장소이다. 그는 정한론의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그 옆에 백제의 문물을 일본에 전달한 왕인 박사 기념비가 있어 좀 기이하게 다가온다.
소설은 도호쿠 지방민인 주인공 가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본 사회상이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주인공 가즈는 1933년 후쿠시마현 소마 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후쿠시마를 떠난 적이 없었고, 가즈가 태어난 이후로 동생 일곱 명이 줄줄이 태어났다.
우에노 공원에 사는 노숙자는 도호쿠 출신이 많다. 북쪽 지방에서 상경하는 사람들은 경제 고도성장기에 도키와선이나 도호쿠본선의 야간열차를 타고 돈을 벌기 위해 처음 내리는 역이 우에노 역이다.
도쿄 숙박비를 생각하면 공원에서 노숙하고 하루 숙박비를 아끼는 것은 그럴 수 있다.
가즈도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이전 경기장 공사를 위해 도쿄로 상경했다. 고향에서는 버는 일당의 서너 배를 도쿄에서는 벌 수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위해 도쿄에서 열심히 일했다.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생활해본 시간은 거의 없었다. 도쿄에서 20여 년을 일하는 도중에 집에서 연락이 왔다. 1981년 어느 날 외아들이 자다가 죽었다고 한다.
1960년 2월 23일 아들이 죽은 날 라디오 아나운서는 쾌활한 목소리로 뉴스를 전했다.
“황태자비 전하께서 오늘 오후 4시 15분, 궁내청 병원에서 출산하였습니다. 친왕께서 태어나셨습니다. 모자 모두 건강하십니다.”
아들이 죽은 날도 비가 내렸고 황태자가 태어난 날에도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 우연히 교차한다. 두 계층의 적나라한 대비다. 백성이 떠받쳐야 왕족이 있는 것인데 가즈가 외아들을 잃어비리는 것에서 황태자의 탄생이 떠오르는 것은 그에게 묘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다.
가즈는 아들의 죽음 이후 문상객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의 모습을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혼한 지 37년, 돈을 벌기 위해 외지에 가 있느라 아내 세쓰코와 함께 지낸 날은 모두 합해 한 해도 안 될 것이다.
아들 고이치가 죽은 지 1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아내마저 잠을 자는 도중 죽었다.
가즈는 이제 잠을 자는 것이 두렵다.
가즈는 매시간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노력에서 해방되고 싶다. 죽고 싶다기보다는 노력하는 데 지쳤다.
딸은 아버지를 혼자 두는 것이 두려워 손녀 마리를 가즈의 집으로 보내지만 가즈는 손녀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다.
그는 다시 한번 도쿄의 우에노 공원으로 돌아와 노숙자로 살아간다.
2011년 어느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역에서 가즈는 손녀 마리가 운전하는 차가 쓰나미에 잠기는 것을 바라본다.
손녀딸의 자동차가 어둠에 녹아 시야에서 사라지자 물의 무게를 등에 업은 어둠 속에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빠앙, 덜컹덜컹, 덜커덩덜커덩, 달카당, 달카당, 달캉…….
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 사람, 남자, 여자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스며 나모고 승강장이 어른거리며 떠올랐다.
“잠시 후 2번 승강장에 이케부쿠로·신주쿠 방면 열차가 들어옵니다. 위험하오니 노란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p.188)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축제의 장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고도성장을 기념하는 신호탄이 도쿄 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집이 철거되어야 한다. 이 글을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철거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노숙자는 시민이 오면 언제든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마치 지하철이 나아가는 것을 위해 탑승객을 자리를 물러서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후 2번 승강장에 이케부쿠로·신주쿠 방면 열차가 들어옵니다. 위험하오니 노란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십시오.”
2020년 올림픽은 일본의 부흥을 알리는 올림픽으로 준비되었다. 올림픽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다.
소설은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대의를 위해 철거되어야 하는 사람, 누군가의 시선에 띄지 않기 위해 이동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부자 나라 일본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하고, 누군가는 차별의 대상이고 괴롭힘에 시달린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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