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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빌리의 비참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오.서정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식민지의 민감한 역사에 대한 비판이 담긴 증언서
프랑스령 알제리 카빌리 지역의 비참한 실태를 날카로운 문장과 각종 수치, 증언을 통해 고발하다!
메디치미디어에서 출판한 알베르 카뮈의 <카빌리의 비참>은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산간벽지 지역인 카빌리 사람이 겪는 비참함을 소개하는 글이다.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쟁 만세! 전쟁은 적어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리라…….” (9쪽)
카빌리는 알제리 수도 알제를 중심으로 동서로 가로지르는 아틀라스 산맥 중에서도 험준한 곳에 자리잡은 곳이다. 구글 지도에서 카빌리를 검색해보면 현재는 티지우주 베자이야 지역을 지칭한다. 이 험준한 지역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카뮈가 태어난 알제리는 지금은 프랑스와 분리된 나라지만 카뮈 당대에는 프랑스와 하나의 나라였다. 우리로서는 해외 식민지에서 태어난 본토인에 대한 이해가 쉽사리 다가오지 않지만, 카뮈 역시 이로 인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거로 생각된다.
자신은 프랑스인이라 생각하지만, 프랑스 본토에서는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와는 분리된 변두리 지역, 식민지 지역으로 치부했고 알제리의 현실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알제리는 프랑스보다 오히려 더 오랜 찬란한 역사가 있다. 기원전부터 지중해 해상무역의 거점이었고, 그 이전인 선사시대에도 아프리카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카빌리 지역에 살았다. 잘 알려진 대로 기원전 12세기에는 카르타고의 해상 무역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고, 기원전 2세기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의 속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7세기 이슬람의 우마이야왕조가 알제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무슬림과 베르베르인의 차별이 이루어졌다. 무슬림에 쫓겨난 베르베르인은 알제리 남부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 와중에 카빌리에 거주하는 베르베르인은 험준한 지세로 카빌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한마디로 카빌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가장 천대받는 베르베르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인 것이다. 이곳의 빈곤은 너무나도 심각해 프랑스의 행정력이 제대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시민들은 굶주리고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에 노동력을 제공했다. 근로 시간은 10시간을 넘어서기가 다반사였고 그런데도 프랑스계 지주와 카빌리 지주들은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황으로 일자리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용주는 유리한 입장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문맹이었던 어머니가 종신연금과 다른 집의 가정부로 생계를 꾸려간다. 카뮈는 백인이었지만 자기 가정의 가난을 어려서부터 인식했다.
카뮈와 같은 불우한 환경에서 위대한 작가가 탄생한 배경에는 가정환경과는 무관하다. 장학생으로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글을 쓰고 작품을 발표했던 카뮈는 자신의 작가로서의 역량에 반신반의했다.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하고 철학 반에서 만난 철학 교사 장 그르니에는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장 그르니에는 카뮈의 재능을 알아보고 카뮈를 격려했으며, 그의 가르침과 지도로 카뮈는 지성인으로 성장한다.
어렸을 때부터의 가난으로 카뮈는 폐결핵이 지병이 되었고 후유증으로 공직 부적격자가 되어 철학 교수가 되고자 했던 카뮈는 계획을 철회한다. 이때 <알제 레퓌블리캥>지를 창간한 파스칸 피어를 만나 편집 기자로 활동한다.
이 책 <카빌리의 비참>은 그가 <알제 레퓌블리캥> 기자로 카빌리를 취재하고 발표한 11편을 묶어 번역한 책이다. 카뮈가 카빌리에 찾아갔을 때 다 해진 소매 밖으로 여윈 손을 내밀며 손을 내밀던 아이들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과 개들이 쓰레기통 속 쓰레기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운다. 집이 없는 헐벗은 주민은 모닥불을 피우고 주변에 모여 가끔 몸을 움직여 몸이 굳는 것을 막는다.
일반적으로 굶주려 죽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노동이다. (43쪽) 카빌인의 절반이 실업자이고 4분의 3이 영양실조라고 썼다. 실업자가 아닌 노동자는 하루 10~12시간을 일하며 평균 6~10프랑을 번다. 이는 노예제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금액으로는 생계를 꾸려갈 수 없다.
집들은 모두 쓰러져 가고 모든 하수도가 지상에 그대로 드러나 모든 길이 하수도가 되고 만다. 길에는 보랏빛이 도는 시커먼 진창이 흐르고, 그 속에 죽은 닭들과 배가 산만한 두꺼비들이 뒤엉켜 있다. (…) 주민, 닭, 죽은 두꺼비 모두 최근 홍수로 쓸려 내려갈 위기에 처해 있다. (55쪽)
카빌리에는 평균적으로 주민 6만 명당 의사가 단 1명이라는 사실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15년 전부터 의사가 방문한 적이 없는 곳도 있다. 원주민 학교에도 의사가 방문한 적이 없어 출산한 한 산모는 아기와 함께 처참한 고통 속에서 죽었다고 한다. (66쪽)
카빌리 사람들은 배고픔에 시달리고 4분의 3은 행정 지원에 의존해 살고 있다. 카뮈는 카빌리 지역의 문제를 빈곤, 급여, 주거, 원조, 교육, 경제, 정치 분야로 분석해 카빌인이 겪고 있는 실상은 낱낱이 보고한다.
카뮈는 카빌인의 안일한 정신 상태와 게으름으로 그들의 겪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편견에 분노한다.
본토 프랑스 관료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지만 아우성은 전달되지 않는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요즘에는 프랑스 어느 지역의 가난을 폭로하면 나쁜 프랑스인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오늘날 좋은 프랑스인이 되는 법을 배우기는 어렵다고 해야겠다. 수많은 온갖 사람이 스스로를 좋은 프랑스인이라고 뽐낸다. 하지만 보잘것없고 탐욕스러운 많은 사람이 스스로가 그런 줄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의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 프랑스를 가장 정확히 상징하고 옹호하는 것은 정의로운 행위다. (121쪽)
<카빌리의 비참>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1939년을 생각해본다. 카빌리 지역 사람과 비슷한 빈곤과 고통을 우리 선조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일 전쟁으로 국가 총동원령이 발령해 나라의 모든 인적자원, 물적자원을 수탈당하던 식민지 치하의 선조들의 모습이 카뮈가 서술하는 카빌인의 비참한 모습에서 겹쳐져 떠올랐다.
카뮈가 전하는 11편의 기사를 묶은 <카빌리의 비참>으로 전쟁을 기대하던 참혹했던 주민의 모습을 살펴보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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