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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내게 필요한 건 나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이야.”
전미도서상 수상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최신작 <어떻게 지내요>의 영문 제목은 ‘What are you going through’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는 말이다. 지금 무슨 일을 겪고 경험하고 이겨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인사말이다.
저자인 시그리드 누네즈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95년 장편소설 <A Feather on the Breath of God>을 시작으로 여덟 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수전 손택을 회고한 산문 <우리가 사는 방식>을 펴냈다. 2018년 <친구>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지내요>는 누네즈의 최신작으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다시 한번 확장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죽음,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여성의 삶 등 무거운 주제들을 감상적이지도 않게, 가볍지도 않게 다룬다. 책은 그 여정을 함께하는 두 여성의 우정, 유대감, 서로를 이해하고 지탱해주는 모습을 그려내는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삶의 미묘한 단면들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 어떻게 지내요 책날개 중 ]
저자의 이력에서 우리나라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 작가님이 여러모로 겹쳐서 떠오른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건조하지만 통찰력 있게 전개된다.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낀 점으로 글로써 풀어내는 실력을 수상 작가라는 명성에 어울린다.
두 친구의 우정을 다루는 로드 무비와 같은 소설이라 알고 있어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화자인 주인공과 친구를 두 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친구의 병문안으로 찾아간 지역에서 열리는 전 애인의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의 반응에 놀란다. 다수의 인간이 머무르는 지구는 기후변화로 고통이 커지고, 인구가 줄어야 한다는 지극히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설파하는 전 애인은 주인공의 친구가 말기 암으로 치료를 중단하려 한다는 이야기에 당연한 듯 찬성한다.
두 사람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출판사에서 만난 사이로 아는 사이지만 서로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이별 여행을 떠나자는 말에 주인공은 놀라지만 서로 함께 있을 때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주인공은 친구의 제안을 수락한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친구의 연락을 받고 병문안하러 다녀온 주인공은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안락사 약을 구했고, 어딘가 적당한 곳에서 평온하게 끝을 맞고 싶다는 친구의 바람과 함께 있어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수락하고, 주인공과 친구는 마지막을 향한 여정을 떠난다.
친구의 암이 발병한 원인은 아무래도 가족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부유하고 평온한 가정에서 사랑스러운 부모님에게 자란 친구는 남자친구의 동의 없이 딸을 낳으며 지옥 같은 인생이 시작된다. 친구의 딸은 주위에 모든 사람이 아버지가 있는데 자신은 그 아버지가 엄마의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처음부터 자기는 가질 수 없었기에 엄마에 대해 분노가 쌓이고 주변인에게 표출한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져 주인공의 친구가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려 할 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망치려 들고, 패악질하고 심지어 친구의 남자친구를 유혹하기에 이른다. 친구는 결국 암을 진단받고 치료에 나서지만, 암세포는 갈수록 퍼져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말기 암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과 한국의 암 환자를 대하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마지막까지 치료하는 시점이다. 김범석 의사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는 이 점을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치료가 통계적으로 사망 6개월 전이고, 이로써 환자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6개월가량 가지게 된다. 한국의 경우 사망 1개월 전까지 치료를 계속하고, 심지어 병원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친구도 암 환자 모임에서 암은 신이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치료에 경주하라고 조언한다. 실재 암 환자의 받는 항암치료는 대단히 힘들다. 경험하지 못한 내가 이런 말을 적는다는 게 가당치 않지만 얼마나 힘든지 집 인근의 대학병원의 암 병동의 환자 이야기를 지속해서 들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친구 역시 항암치료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속해서 속을 매스껍고 토악질은 끊임없이 나를 고통의 극단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항암치료를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는 약물 치료나 처치가 있지만 잘 모르는 환자는 이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재 인근 암 병동의 환자들 대부분도 이를 알지 못했다. 행여 항암치료를 앞둔 본인이나 지인이 있다면 항암치료를 약간은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환우회를 통해 알아보시길 권유한다.
주인공의 친구도 부모님의 잃고 하나뿐인 원수보다 못한 딸은 어머니의 항암치료 중단에 태연하게 긍정할 따름이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을 고통받고 있나요? Quel est ton tourment? (122쪽)
주인공은 주변의 노인에 대한 단편을 소개하며 노화가 인간에게 가져오는 의미를 재조명한다. 또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조르주 심농과 같은 수많은 작가와 사랑에 얽힌 리턴 스트레이치와 도라 캐링턴의 사연을 알아보는 것도 인상적이다.
예순이 넘어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두 여성의 우정어린 이별 여행을 확인하고 싶은 분에게 <어떻게 지내요>를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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