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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 - 조선시대 살인사건 수사일지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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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36건의 살인사건을 기초로 조선의 과학수사 지식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역작 <흠흠신서 欽欽新書>
오늘 소개할 책은 홍익미디어 출판그룹에서 나온 다산 정약용 선생의 <흠흠신서>를 바탕으로 오세진 작가님의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이다.
영화 <조선 명탐정> 시리즈는 김탁환 작가님의 소설을 토대로 했지만, 주인공은 정약용 선생을 모델로 한 듯하다. 다산은 지방의 수령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가까이에서 아버지가 형사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산은 황해도 곡산 부사, 형조참의, 암행어사 직을 수행했고, 정조 대왕은 형조참의 정약용 선생의 재주를 각별하게 생각해 형옥에 관한 일을 자주 묻곤 했다.
가끔은 믿기 힘들 정도의 전방위적 지식을 드러내는 정약용 선생은 30권 10책으로 흠흠신서를 저술했고, 508권이라는 믿기 힘들 분량의 책을 완성했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1표(表) 2서(書)인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꼽는다.
흠흠신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흠흠신서 欽欽新書>는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말로 형벌로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고, 하늘이 준 권한을 잘못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삼가고 삼가라’라는 뜻은 사건을 판단할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는 의미다.
당시 지방 고을에서는 살인사건이 한번 발생하면 한 마을이 온통 쑥대밭이 될 정도였다. 수령이 시신을 검시하고,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아전들은 백성들의 세간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을 감옥에 가두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사건을 감독하는 관리는 일신상의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안이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 다산 선생은 이를 신중하게 다루라는 의미를 담았다.
<흠흠신서>에는 총 350건의 사건을 기술하고 있지만,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는 그중에서 36건의 당시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살인사건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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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5의 주제를 통해 한 주제당 7개~8개의 사건을 배치하고 있다.
1장.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면 안 된다
2장. 나라에 법이 있다면 어찌 이럴 수 있겠는가?
3장. 법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4장. 조선판 유전무죄 무전유죄
5장. 법이란 억울한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점은 정조 대왕의 애민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사건의 최종 결정자는 국왕이었고, 판결은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현재에도 사건 판단의 기준에 여론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듯 당시에도 백성의 민심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했다.
정조와 다산은 법과 인정을 함께 고려하여 판결을 내렸다. 인정은 어떤 상황 속에서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지는 마음 상태와 감정을 말한다.
정조 시대에는 살인을 저질렀을 때 법대로 죄를 적용하면 사형이지만 인정을 고려하여 사형을 면해주는 일이 많았다.
조선의 건국 초기인 15세기에는 사형죄를 지은 사건의 경우 97%가 사형을 받은 반면 정조 때에는 오직 3%만 사형을 받았다.
이는 정조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결과였고,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처벌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다고 보았던 것 같다. (64쪽)
정조와 다산은 사건을 대함에 있어 주범과 종범을 자세히 검토하고, 사건이 일어난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조는 의심이 드는 사건에 대해서는 1차 조사와 다른 지방의 부사가 2차 조사를 하게 하고 형조의 판단도 모두 문서로 보고하게 해 이를 토대로 사건을 판단하려 했다.
다른 특징은 여성의 인권에 관한 부분이다. 조선 시대 후기 여성의 인권은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보인다.
아내를 죽인 경우 처벌하는 법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었다.
첫째, 아내가 간통을 했고 이를 현장에서 목격하여 찔러 죽인 경우로, 이럴 때는 죄를 묻지 않는다.
둘째, 아내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아서 때려죽인 경우로, 이럴 때는 형장 100대를 때린다.
셋째, 어떤 일로 인해 부부간에 싸우다가 죽인 경우로, 이때는 살인죄로써 사형에 처한다.
하지만 영조 임금 때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죽인 사건에서 정황을 살펴보고 고의가 아니었다는 판단하에 사형을 면해주고 석방한 일이 있었다.
다른 특징은 다산의 집요함과 꼼꼼함이 흠흠신서를 저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유전무죄 편의 함봉련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 오로지 1차와 2차의 조사 문안을 자세히 검토해 사건이 이상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어떤 사건에 최종 판결을 내릴 때는 세 가지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피살자 가족의 진술, 다른 하나는 시신에 대한 검시, 마지막은 공인된 증거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합치하면 그 사건의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세 가지가 서로 어긋나면 그 사건은 아직 규명된 것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함봉련 사건을 해결한다.
조선 시대 형사 사건을 통해 사회상을 알고 싶다면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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