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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정원
아나톨 프랑스 지음, 이민주 옮김 / B612 / 2021년 7월
평점 :
“아파한다는 것, 이 얼마나 신비롭고 신성한가! 우리가 가진 모든 선함,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은 다 고통이다.”
오늘 소개할 책은 B612에서 출판한 아나톨 프랑스(1844~1924)의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다.
2021년은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 <펭귄의 섬>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출판사는 이를 기념해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 책은 명상록으로 저자의 철학을 담고 있다.
아나톨 프랑스는 누구인가?
생몰년대를 보면 격정의 프랑스를 온몸으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제정, 왕정복고, 공화국 체계를 겪었고, 식민제국으로서의 프랑스가 가장 팽창한 시기를 살았으며, 그의 활동 기간은 현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정교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어가는 시기와 맞물린다.
그는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이나 프랑스 문학과 철학사의 고전에 정통한 고전주의자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파리 센강의 강변에서 고서점을 운영했기에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아나톨 프랑스는 지적 호기심을 광범위하게 확장할 수 있었다.
애서가로서 나는 파리에 여행을 가면 시테섬을 사이에 두고 책방골목을 거니는 것을 즐겨한다.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주인은 문학상을 시상하고 인근 책방 주인들을 현직 작가거나 소설가인 경우도 있어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프랑스 사람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20세기 초 도시 정비계획에 따라 센강 변의 고서점을 철거하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작품에 서점을 서성이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말년에는 서점에 들러 책을 구매한 다음 다른 서점 주인에게 다시 나누어주는 행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파리 시민들은 그렇게 책을 사랑하고 가난한 고서상들을 배려한 작가를 기려 그 한 구간을 ‘아나톨 프랑스 강변’이라고 부른다.
아나톨 프랑스를 특징짓는 또 다른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이 터졌을 때, 그는 간첩으로 몰린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며 프랑스 사회 주류의 국가주의와 인종주의에 저항하였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대위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로 프랑스 사회를 환기하고, 이후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장례식에서 “진실과 정의의 수호자에게 바치는 경의”라는 글로 이 사건을 조사한 사람이 아나톨 프랑스이다.
아나톨 프랑스는 드레퓌스 사건 이후 지식인을 포함한 부르주아적 사회 질서와 교회를 격렬히 공격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펭귄의 섬>을 통해서는 섬에 사는 펭귄이 성령을 받았을 때, 이 펭귄들은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우화로 나타낸다. 이를 통해 프랑스 기득권 세력인 교회와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계급 사회의 폐해를 드러낸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는 그의 철학과 그리스·로마 시대 저자의 이야기, 성경, 미학에 관한 이야기가 망라되어 있다.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 굳게 믿었던 옛날 사람의 생각을 우리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11쪽)
세상은 얼마든지 경박하고 헛된 곳이다. 그렇다 해도 정치인에게는 꽤 괜찮은 배움터다. 오늘날 의회가 세상이라는 배움터를 좀 더 알지 못해 참으로 유감이다. 무엇이 세상을 이루는가? 여성이다. 바로 여성이 세상의 주권자다. (36쪽)
아나톨 프랑스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강조한다. “세상은 여성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작은 기호들이 늘어서 있는 공간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 기호들에 해당하는 형태와 색채,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40쪽)
책을 즐기는 취미는 진정 칭송받아 마땅하다. 사람들은 흔히 애서가들은 놀리곤 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놀림을 당하기 쉬운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이는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은 특성이다. (...) 수집가의 장서와 그림은 같은 게 아닐까. 오직 탓할 대상은 존재의 성쇠와 짧은 인생뿐이다. 바다가 모래성을 쓸어가듯 경매인은 수집한 작품들을 흩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열 살 때 모래성을 쌓고, 예순이 되면 책을 수집해 쌓아둔다. 결국 우리가 쌓아 올리는 그 무엇도 남지 않을 테니, 고서에 대한 사랑이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애착보다 헛되다고 말할 수는 없다. (92쪽)
아나톨 프랑스가 책을 대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학자들은 자주 마주하다 보면, 이들이야말로 가장 호기심이 없는 사람들임을 깨닫는다. 몇 년 전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유럽의 어느 대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의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다. 한 학예사가 대단히 자신만만한 태도로 화석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 그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는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 순간 내가 눈치 없이 행동했음을 깨달았다. 학자에게 전문 영역이 아닌, 우주의 다른 신비에 관해 물어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영역 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다. (93쪽)
아나톨 프랑스는 지식인 계급에 대해서는 직설적인 화법을 거두지 않는다.
자신이 혁명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던 세대인 만큼, 다음 세대의 청년세대가 다른 일에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혁명을 일으켜본 자들은 후대가 혁명에 나서고 싶어 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혁명을 통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면 그들은 이전의 모습을 잊어버리곤 한다. 이는 많은 사회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 다음 세대가 혁명을 논하는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의 특성이다.
아나톨 프랑스의 명상록인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는 볼테르의 신념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라는 말은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아쉬운 점은 그리스·로마 시대 고전과 성경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었다. 성경에 대한 인용과 등장인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각주를 참고하지만, 여전히 해석하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아나톨 프랑스의 명상록 <에피쿠로스의 정원>은 많은 생각거리와 실천하는 지식인을 표방하는 프랑스 지식인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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