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방송가의 불공정과 비정함에 대하여
이은혜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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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인생에서 출판한 이은혜 작가님의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을 읽었다. 전직 방송작가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TV 뉴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일했다. 고양이, 만화, 베이킹처럼 따끈하고 말랑한 것들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노동 분투기가 되었다. 이런 따뜻한 성격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이번 책을 쓰신 거로 보인다.

 

라디오는 묘한 매력이 있다. TV처럼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 않아, 귀만 얼어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을 도와주는 것처럼 느낀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쓰시는 작가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맞는 주제를 가지도 애청자에게 어필하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날씨와 음식 이야기도 하루 이틀이지 라디오 프로그램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부스의 상단의 ON-Air 사인에 불이 켜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The show must go on” 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라디오 작가에게 있어 오프닝 멘트쓰기는 업무 분장의 10%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막 기자가 되었을 무렵, 선배 기자가 왜 기자가 되고 싶었어?”라는 물음에 저자는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선배는 기자는 쓰는 직업은 아닌데.”라 대답했다. 일반인의 인식에 쓰는 직업이라 여겨지는 기자와 작가에게는 쓰는 것 이상의 일이 항시 대기 중이다.

 

기자는 비판하고 탐구하는 자리이지 쓰기가 목적인 직업이 아니다. 라디오 작가의 경우, 내가 만든 오프닝이 제시간에 방송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자료 조사와 섭외, 취재, 행정 업무, 스케줄 조절, 대관 업무, 디엠 발송 등 흔히 상상하는 방송 작가의 우아한 업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님은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해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사서, 대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다 남편을 만나 제주도로 이사하게 된다.

 

남편이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는 응원에 글을 쓰는 직업에 도전에 마침내 방송 작가의 꿈을 이룬다. 남들이 보기에 제주에서 방송 작가라 하면 멋진 바다를 보며, 커피 향을 맡으며 글을 쓰는 부러운 직업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의 뒷면에는 많은 모습을 드러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것은 언제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작가님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했을 때, “업계 관행이 그게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기센 작가로 불린다.

 

방송 작가를 꿈꾸는 고등학생에게 인터뷰를 통한 솔직한 급여를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그녀를 계속 생각하게 한다. 자라는 꿈나무에게 현실을 알려줘 팩트를 알려야 할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을 해야 할지 갈등한다.

 

더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어느 정도 급여가 보장되면 좋을 텐데, 방송 작가를 하는 동안 월급이나 연봉이 아닌 페이라는 용어가 불문율처럼 들린다. 행사를 맡았는데 페이는 얼마 안 된다. 일을 배우는 시기에는 이런 것들이 다 경험이다는 말로 최저시급의 반도 되지 않는 제안을 받는다.

 

저자는 도저히 참지 못해 PD에게 한마디 하지만, 그도 역시 비슷한 처지의 회사 관리자일 뿐이다. 얼마전 내가 즐겨보는 세계테마기행의 PD가 혼자서 17역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한다는 말을 듣고 평소 세계테마기행의 출연진이나 PD가 너무 부러웠는데, 세상에 보기만큼 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저자가 소개한 tvN2016년 드라마 <혼술남녀>를 제작한 조연출 이한빛 PD가 목숨을 끊은 사연은 안타까웠다. 나도 즐겨 시청했던 프로라 PD가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없는 장기간 노동인 디졸브 노동으로 시간을 어마하게 쏟아야 완성된 화면을 우리가 거부감 없이 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활하게 방송하기 위해 촬영 기간 55일 동안 발신 통화가 1,547건이라는 사실은 그의 하루가 얼마나 빈틈없이 돌아가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한빛 PD는 의상, 소품, 촬영 준비, 영상파일 딜리버리,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차량 통제 등의 일을 맡았다고 한다.

 

저자는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으로 세 개를 소개한다.

 

어떤 정부도 역사를 검열할 권리가 없다.”

일본 외무성이 뉴욕 총영사에게 미국의 한 출판사의 세계사 교과서 속 위안부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을 때

[ 시사프로그램 2015.02.17.오프닝 중 ]

 

오늘은 ‘6.10 민중항쟁기념일입니다. 민주헌법, 민주정부라는 말들이 어쩐지 멀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라는 말이 수없이 들려오던 때도 있었습니다. 불과 28년전 얘깁니다.

[ 시사프로그램 2015.06.10.오프닝 중 ]

 

소설을 통해 4·3을 직시한 인물, 4·3 진상규명운동의 선구자, 재일 소설가 김석범 선생입니다. 올해 2월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석범 소설가의 방한이 저지됐습니다. 한국정부에 의해섭니다.

[ 시사프로그램 2015.10.14.오프닝 중 ]

 

그녀는 방송사의 쉬운 해고와 그에 대항하는 약자들의 연대기를 쓰고 지인에게 정호승 시인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를 받았다.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방송 작가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방송국의 생생한 묘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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