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일본 지도에 독도는 없다 - 맵 트레이드의 역사를 통해 보는 독도 발견사, 개정증보판
이상균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맵 트레이드의 역사를 통해 보는 독도 발견사

 

북스타에서 출판한 이상균 박사님의 <19세기 일본지도에 독도는 없다>는 울릉도와 독도가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영역에 속한 사실을 맵 트레이드를 통해 살펴본다.

 

저자인 이상균 박사님은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프랑스 껑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서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오늘 뉴스에 2021년 일본의 방위백서에 17년째 독도가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일본의 행위를 바라보는 마음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의 문제를 한일 간의 갈등 양상으로 몰고가서 국제사법재판소 등 제3의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저자는 누가 보더라도 과거 일본이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다거나, 일본이 이 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된다면, 지금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행태를 지속하지 못 할 거라 판단했다.

 

19세기 동안에 일본이 독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정황을 맵 트레이드의 역사를 통해 확인해보자.

 

맵 트레이드는 지도의 매매 거래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행위자들 간에 지도에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지리정보 수집, 교류, 전파에 이르는 수준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저자는 사용하고 있다.

 

19세기는 동서양의 만남과 교류가 극대화되던 시기로서 탐험과 항해를 통해 지도 제작이 완성되던 시기이다.

 

17세기까지 서양에서 제작된 동아시아에 관한 지도와 지리정보는 대단히 부족한 상태였는데, 1700년을 기점으로 현격한 변화를 보인다.

 

16세기 무렵부터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중심으로 모피 무역이 급격하게 증가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서구인들의 탐험과 항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피 무역이 급증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소빙하기의 출현으로 지구의 기온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추운 날씨가 많아지고, 빙하의 면적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소빙하기의 시기에 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대륙 및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국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관점은 태양 흑점활동의 주기에 관한 것인데, 태양의 흑점 활동이 가장 저조했던 1450년에서 1534년 사이, 그리고 1645년에서 1715년 사이에 지구의 기온이 현저하게 하강했다는 것이다.

 

소빙하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일본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과 관련한다.

 

일본은 세계지도 제작 과정에서 영국 등 서구의 지도 제작 전통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영국의 상선 아르고노트호의 극동 항해 이후, 지도상에 잘못 표현되었던 의문의 섬 아르고노트를 일본에서 그대로 따라 그리는 과정에서 울릉도를 아르고노트 섬에 비정하고, 독도를 다즐레(울릉도)에 비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한마디로 일본에서는 19세기 동안 독도를 지도상에서 누락시켜왔고, 그러한 상태를 1904~1905년 무렵 러일전쟁 시기에 독도에 대한 지정학적 중요성이 두드러짐에 따라 일본은 독도에 관한 재설정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청나라와 러시아에서 체결한 네르친스크 조약(1689)으로 러시아의 국경이 확정되었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청나라의 국력이 쇠락해 1857년에 러시아가 아무르주와 연해주를 설치하는 등 영토 일부를 취한다.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할 청나라 강희제는 나라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도가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정확한 지도를 원했던 강희제는 1708년부터 전국을 실측하여 10년 후인 1717년에 중국 최초의 실측지도인 <황여전람도>를 완성한다.

 

지도 제작에 참여한 프랑스 선교사는 <황여전람도>를 프랑스의 거장 당빌에게 보내고, 당빌이 제작한 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가 표기되어 있다.

 

지도를 가지게 된 서구 열강은 한국의 동해상을 탐험하면서 울릉도를 목격하고 독도를 목격한다. 라페루즈는 울릉도를 발견해 프랑스 왕실에 전하고 영국의 제임스 콜넷은 모피 무역선 아르고노트호를 이끌고 한국 동해상에 새로운 섬을 목격했다고 한다.

 

독도가 재발견되는 과정에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의 크림 전쟁(1853~1856)이 관련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 함대가 동해상에서 독도를 발견해 독도의 존재는 확실하게 인식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를 살펴보면 한일간의 해상경계를 한국해협으로 선명한 붉은 선으로 표현했으며, 울릉도와 독도는 명확히 한국의 영역 안에 표현되어 있다.

 

1810년에 일본에서 제작된 <신정만국전도>에는 영국의 지도를 모사하여 영국의 지도에 포함되어 있던 울릉도와 부속 섬들이 일본에서 제작되는 지도에도 동일하게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19051117일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였으며, 일본은 독도를 그들의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킨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을 끊임없이 감행했다. 19세기에 일본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에는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함에도 오늘날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 망령을 되살아나게 하는 형태다.

 

일본 정부는 방위백서를 포함한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단념하고 한일 간 발전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선 과거 역사에 관한 정확한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9세기일본지도에독도는없다 #이상균 #지리 #지리학 #독도 #일본 #책과콩나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