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공간을 찾아서 - 우리가 잊지 않고 꿈꾸는 것에 대하여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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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않고 꿈꾸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나무에서 출판한 안정희 작가님의 <기억 공간을 찾아서>는 전쟁, 죽음, 사고, 도시개발, 재난 등의 이유로 소멸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여행하며 적은 기행문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라 생각했지만,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이 다녀온 기억 공간을 소개한다. 우리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서서히 흐릿해지는 기억과 왜곡되는 기억으로 과거 사실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작가님은 독일, 일본, 한국의 기억 공간이 가지는 의미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전달한다.

 

저자인 안정희 작가님은 기록전문가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와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지금은 증평기록관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기록을 전문으로 다루는 작가님은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사실이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한다.

 

독일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곳은 브레멘항구의 이민박물관이다. 이곳은 떠난 사람들의 집이라 불리고 19세기부터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던 독일 이민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에 세워졌다.

 

박물관은 항해를 마치고 뉴욕항의 앨리스 아일랜드에 도착해 이민 수속을 밟는 공간을 재현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 국민이 처음으로 유럽에 이민을 한 나라다. 한국의 간호사와 광부, 조선 기술자들은 독일로 들어갔다. 최초 3년이었던 계약은 6, 9년으로 연장되었고 대다수 간호사는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영구히 독일에 살았다.

 

브레멘항구의 이민박물관은 미국으로 떠난 독일인과 독일에 이민 온 한국인의 새로운 곳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독일 뮌헨에는 이미륵 박사님의 묘가 있다. 그는 독일인이 사랑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통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소설로 녹여내고 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여섯 달 동안 망명 생활을 하며 프랑스 파리를 거쳐 독일 뮌헨에 도착한다. 이미륵은 거처를 정하고 처음 눈이 온다고 좋아하던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편지를 받는 것으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끝이 난다.

 

독일의 구텐베르크 박물관에는 1974년 한국관이 만들어졌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본보다 78년 앞선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던 박병선 박사님이 발견한 덕분이다. 선생이 직지를 발견하고 이를 입증하는 과정은 극적인 영화와 같은 일이었다. 1955년 여성 최초의 유학비자를 받았던 선생은 스승이 건넨 말을 잊지 않았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실과 국가행사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외규장각 의궤>를 비롯한 여러 책을 불법으로 가져갔는데 어디에 있는지 꼭 찾아보라 했다.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였는 그녀에게 하루는 동료가 한자로 적힌 오래된 듯한 책이 한 권 본적이 있다고 전하고, 이를 확인한 그녀는 이것이 <직지>임을 확인하게 된다.

 

 

일본의 기억 공간은 오키나와의 슈리성과 아리랑 위령탑,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이다. 오키나와는 과거 류큐 왕국으로 우리나라 조선과 교류했던 역사가 깊은 왕국이다.

 

일본은 류큐를 병합한 후 오키나와 현지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로 배워야 했으며 황국신민으로 하나의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강제 편입되어야 했다. 왕국의 왕족은 슈리성에서 쫓겨나 본토와 섬에 강제 분리된 채 살고 있었고 귀족들은 왕의 몰락과 함께 집과 생활용품을 팔고 나하시로 옮겨가 월급쟁이 직장인이 되거나 시골로 낙향해 농부가 되었다.

 

1945년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최대 격전지였다. 주민의 1/412만 명이 사망하고 주거지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종전 후 오키나와는 미국에 이양되었다. 미군정은 27년 동안 오키나와를 점령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했다.

 

개인적으로 슈리성을 방문했을 당시 정전에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곳 공사 현장의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로 슈리성은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2차 대전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던 아픔이 완전히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한번 소실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오키나와 나하시에서 페리를 타고 1시간 30분 거리에 게르마제도의 도카시키섬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다. 하나는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힌 배봉기를 기리는 아리랑 위령비이고 또 하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집단 자결지 탑이다.

 

미군의 상륙과 함께 일본의 전세가 기울자 일본군은 섬 주민들이 미군에 생포되었을 경우 일본군의 동향을 발설할까 두려워 그들의 집단 자살을 부추겼다. 미리 주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주고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터트리도록 압박했다. 터트리지 못한 주민에게는 칼이나 면도날 몽둥이로 서로를 때려죽이거나 서로 목 졸라 죽이기를 강요했다.

 

 

 

한국의 전라북도 진안에는 용당댐이라는 같은 주제로 진안 역사박물관, 한국수자원공사 물문화관, 사진문화관, 계남정미소가 전시되고 있다.

 

사진문화관에는 1995년부터 용당댐이 준공된 2001년까지 댐 아래에 살았던 사람들의 댐 건설 반대 투쟁, 이주, 철거 등을 촬영한 24,010점의 사진과 각종 문서, 이주하는 동안 남겨진 수몰민의 생활용품 2,255점을 보유, 전시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에는 현대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심도직물 굴뚝이 자리 잡고 있으나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공장이 문을 닫은 후 무너진 굴뚝만 남았다. 2015년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굴뚝 앞에 강화 심도직물 사건을 기념하는 조형들을 세웠으나 소리소문없이 철거되었다.

 

 

안정희 작가님의 <기억 공간을 찾아서>는 기존의 여행에세이와는 다른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기록을 통한 공간의 기억이 우리에게 다음 상상력을 전하고, 과거로 돌아보면서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거주하는 공간 주변에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들이 있을 것이다. 그곳이 가지는 의미를 새기며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나의 과거와 미래를 완성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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