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 - 한국 프로야구 40년
허구연 지음 / 다할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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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 대쓰요!

한국 야구의 성장이 내 인생의 기쁨이다!

 

다할미디어에서 출판한 허구연 위원님의 <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KBO 출범과 함께한 40년 동안 야구해설 한 길을 걸어온 위원님이 꼽은 한국 프로야구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고 있다.

 

한국 야구는 오랜 역사가 있다.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린게 1919년이라고 하니 아마야구를 거쳐 프로야구가 출범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미국, 일본보다 늦게 출발한 한국 야구는 한국 사회가 발전해온 속도만큼이나 빠르고 강렬하게 성장했다.

 

기록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했던가. 40년을 돌아보면 야구 현장에서 떠나지 않은 누구보다 밀접하게 지낸 허 위원님이야말로 프로야구 40년을 기록할 적임자임을 알 수 있다.

 

 

허 위원님은 야구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뼛속까지 야구인이다. 초등학생 때 야구를 시작, 촉망받는 선수 생활을 했으나 갑작스러운 큰 부상으로 선수의 꿈을 접고 한국 프로야구(KBO)가 탄생한 1982년부터 야구 해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MBCMBC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으로 수많은 야구 경기를 해설했으며, 지금도 KBO 리그 5개 전 경기뿐 아니라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경기 중계를 늘 챙겨보고 분석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바탕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일본식 야구 용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문 용어로 정립한 공이 크다.

[ 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 책날개 중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을 꼽으라면 한 손에 드는 종목이 야구이다. 정규시즌 당 경기 수 720경기를 하다 보니 매일 각본 없는 드라마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있으면 야구는 일상의 한 부분을 넘어 인생의 한 축이 된다.

 

돌이켜보면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박철순 선수는 국민적 영웅이었고, 야구 점퍼와 야구 모자를 쓰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곤 했다.

 

고교 시절 1992년 롯데자이언츠가 우승할 당시 내가 사는 도시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야구는 팬들을 하나로 만든다.

 

허구연 위원은 책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가 10 구단이 되기까지 자신이 관여하거나 조언한 역할을 소개한다. 구단주와 자신과 얽힌 사연과 더불어 택진이 형’ NC다이노스가 창단한 일, MBC 청룡의 매각 소식에 구본무 회장과 연락해 LG트윈스의 탄생하는 일, 허민 의장에게 조언한 일과 키움 히어로즈 창단 등이 소개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프로야구 출범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야구 창설에는 문화방송 MBC가 앞장서고 이루어졌고, 축구는 다음 해 KBS 주도로 프로협회가 출범했다. 80년대는 군부의 힘이 막강했다.

KBO 초대 총대는 군 출신인 서종철 국방부 장관이 맡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육사 출신들이 프로야구 창설에 관여했고 영향력이 컸다.

 

198112월 구단과 연고지가 정해졌다.

 

서울은 MBC, 두산은 충청, 롯데는 부산, 광주는 해태, 인천은 삼미, 대구는 삼성이었다. 두산은 3년 후 서울 이전을 확보해, 오늘날 두산과 LG는 잠실의 한 지붕 두 가족이 됐다. (50)

 

2장은 한국 야구를 호령한 5대 왕조와 명장들을 소개한다.

 

전설의 시작을 1983년 김응용 감독이 선진 야구를 배우겠다며 미국 유학을 떠나고 맡았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이다. 해태의 왕조 구축은 뛰어난 스타들이 많았던 데다 개성 강한 그들을 이끌고 간 김 감독의 리더십이 한데 뭉친 결과였다.

 

5년간 3번의 우승(2000, 2003, 2004)을 기록한 김재박 호의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에서 1998년 첫 우승을 했다. 왕조의 시작을 알린 것은 2000년이다. 페넌트 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기록했다. 수원에서 거둔 첫 우승이라 더 의미가 컸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선 무승부를 세 차례나 기록해 9차전 한국시리즈였다.

 

뒤이어 김성근 감독 시절의 SK 와이번스(2007, 2008, 2010)와 류중일 감독 시절의 삼성 라이온즈, 김태형 감독의 두산 베어스 왕조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3장에서 소개하는 한국 야구의 별들에서는 영원한 맞수 선동열, 최동원과 마운드 위의 스타 박철순, 너구리 장명부 선수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1984년 최동원 선수가 롯데자이언츠 우승을 이룰 당시 미친 기록은 이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이고, 나와서도 안 되는 기록이다. 최동원 선수는 한국시리즈에서 7전 가운데 혼자 4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한다.

 

최동원, 선동열 선수가 벌인 최고의 맞대결은 1987516일 벌어진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15이닝 209, 선동열은 15이닝 232구의 명승부를 펼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경기다. 통상 투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선 100구 이상 던지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MLB를 생각하면 232구를 던지면 투수 어깨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숨 막히는 역투 속에 이 둘의 자존심이 불을 뿜어내고 있어 코치들조차 두수 교체를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장명부 선수가 60경기 출장에 선발 투수로 44경기를 나가 5,886 투구 수로 30승을 거둔 사연과 이후 부진하게 된 사연은 당시 청보 핀토스 감독이었던 저자라서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야구가 세계에서 주목받게 된 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다. 야구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지금도 역대급 경기로 회자되는 한국과 쿠바의 결승전.

 

전 대회 우승팀인 쿠바와 힘겹게 경기를 펼쳐가던 9회 말. 호투한 선발 투수 류현진에 이어 정대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이 3-2로 앞선 1사 만루.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율리에스크 구리엘(현 휴스턴 애스트로스)이 타석에 들어섰다.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쿠바 선수 중 가장 뛰어나며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3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순간 올림픽 금메달의 꿈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구나싶었다. 그러다 정대현이 그를 6-4-3 더블 플레이로 잡아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 하는 탄성이 나왔다.

 

유명한 허 위원님의 고영민, 고영민~~~ 아아~~~”가 탄생한 순간이다.

 

 

그는 1950년부터 2016년 은퇴할 때까지 67년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중계방송을 전담한 빈 스컬리를 존경한다. 67년간 단일팀을 중계한다는 의미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헌신, 철저한 자기관리 능력과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위원님은 MBC에서 40년 가까이 방송하고 있다. 그동안 그의 인생은 야구와 함께한 인생이다. 돔구장 건설에 앞장서고, 소외된 지방, 지역을 넘어 해외에서도 야구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야구 용어가 일본식 야구 용어를 들여와 쓰는 풍토에서 정확한 본래 의미에 맞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야구 용어를 바로잡는 데 앞장섰다.

 

이제 그는 한국 야구의 산업화와 함께 야구 구단이 흑자 운영을 통해 프로 스포츠의 산업화가 진전되기를 희망한다.

 

한국 야구의 지난 40년간의 비화와 허구연 위원님의 야구 인생이 궁금하신 분에게 <그라운드는 패배를 모른다>를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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