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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 선지식과 역사를 만나는 절집 여행
제운 옮김, 양근모 사진 / 청년정신 / 2021년 5월
평점 :
주련을 통해 선지식과 역사에 관한 지혜와 깨달음을 가져오는 절집 여행
어제가 ‘부처님 오신날’인데, 평소 이날을 기려 절에 가자고 하시는 어른이 올해는 아무 연락이 없다. 전염병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라 생각하고 내년에는 같이 절에 가자고 연락을 하실지 궁금하다.
어른과 같이 절에 가게 되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절을 가는 도중 마주하는 비석, 건물에 붙어 있는 글귀다. 절의 역사를 생각하고 지금 이름을 떨치는 절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은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증인이기도 하다.
수많은 깨달음과 역사에 관한 지식을 글로 새겨둔 것이 ‘주련柱聯’인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련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평소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에 한자를 찾아 해석해보려고 시도하지만 생각보다 해석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청년정신에서 출판한 주련은 제운 스님의 주련 해석과 양근모 작가님의 글과 사진으로 엮여진 도서이다.
사찰에 얽힌 주련에 얽힌 선지식을 알려주는 부분과 사찰에 얽힌 역사적 경험을 전달하는 부분, 마을을 쉬다라는 주제로 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네에 있는 범어사의 불이문에는 다음가 같이 쓰여있다.
神光不昧萬古徽猷 신광불매만고휘유
入此門內莫存知解 입차문내막존지해
사람의 본성은 만고에 불매하고 아름다운 것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라
[ 범어사 불이문 ]
불이문은 우주 만물과 내가 둘이 아님을 일러주는 관문이라는 표시이다. 등산을 가다 자주 마주쳤던 글귀의 뜻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범어사는 한국 현대불교의 초석을 놓은 용성 큰스님의 제자이자, 선의 꽃을 피운 성철스님의 스승인 동산스님의 사리탑과 비석이 있는 절이다.
주련을 해석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해 불교 대중화와 생활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한자 경전의 한글화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던 운허스님은 봉선사와 인연이 깊다. 봉선사는 세조의 원찰로 조선시대 교종의 총본산이다.
봉선사의 ‘큰법당’이라는 대웅전 편액과 한글 주련을 다음과 같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을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로 못하고
[ 봉선사 대웅전 ]
세월을 오래 겪어낸 사찰의 주련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글자씩 떠올려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있는 구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생기는 것이다.
부여 부소산의 고란사는 창건 연대가 백제 말기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백제의 패망과 관련한 일기를 살펴보자.
660년 7월 10일, 계백이 이끄는 주력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패하면서 수도 사비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에 의자왕은 전력을 재정비하고자 웅진 공산성으로 피신했으나 예식진에 의해 묶여 소정방에게 끌려오고, 이에 부소산성에서 항전하던 둘째 왕자도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의도가 있는 이야기 꾸미기인지 패망한 군주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기 위한 거짓 기록을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예식진은 당시 반격을 준비하던 왕이 웅진의 수비 대장으로 임명한 장군이다. 백제 멸망 후, 그는 당으로 건너가 입신에 성공한다.
사실 백제의 멸망을 의자의 향락이나 폭정에서 찾는 건 설득력이 적다. 실제로는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내부 분열과 그에 따라 김유신의 회유에 넘어간 좌평 임자와 같은 배역자 그리고 당과 고구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당시 신라와 연합하여 군대를 보낼 여유를 갖게 되었던 세력균형의 변화에 찾아야 한다는 게 많은 사학자들의 의견이다. (196쪽)
백제에 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주련과 관련한 내용과 사찰에 얽힌 이야기로 살펴보는 백제의 멸망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은 유익했다.
서울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자신을 보호해 준 진관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가람을 세우고 진관사라 하였다.
근래 지인이 보던 이준기, 이지은 배우님이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를 보고 호족의 도움으로 고려왕조를 개창한 왕건의 후계 구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공인 광종의 왕권강화를 이루는 과정을 간략하게 극적인 요소를 추가해서 다루고 있었다. 이전에 채시라 배우님의 <천추태후>를 보지않은 터라 태조부터 후계구도를 유심히 보았다.
997년, 고려 겨종의 뒤를 이은 6대 임금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경종의 황후이자 성종의 누이동생인 헌애황후 낳은 황자 송은 18세였다.
송이 제위에 올랐고 이는 목종이다.
아들이 제위에 오르자 ‘천추전’에 머무르던 헌애황후는 정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목종이 후사가 없자 간부 김치양과 밀통하여 낳은 아들을 제위에 앉히기 위해 왕위계승권자인 대량원군을 죽이려다가 강조의 정변으로 파멸한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대량원군을 없애기 위해 암살자들을 계속 보낸다.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이다. 대량원군이 제위에 오르니 이는 현종이다.
현종은 제위에 오르고 난 뒤 진관스님의 은혜를 갚고자 신혈사를 크게 중창하여 진관사를 만든다.
이 책 <주련>에서 눈에 띄는 점은 양근모 작가님이 촬영한 흑백으로 펼쳐지는 멋진 사찰의 모습이다. 절이 가지는 운치를 여러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뇌리에 자리매김하게 한다.
불교의 부침이나 사찰이 가졌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고 주련에 담긴 글귀가 궁금한 사람에게 <주련>을 소개한다.
주련에서 소개하는 사찰은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다. 주변에 있는 사찰이나 평소 가보고 싶었던 사찰이 있다면 주련을 미리 학습하고 간다면 절의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고 올 것이다.
선지식을 만나다
ㆍ서산 연암산 천장암 경허, 콧구멍 없는 소를 끌다
ㆍ예산 덕숭산 수덕사 만공, 보름달은 떠오르고
ㆍ서울 삼각산 도선사 청담, 이 길의 끝을 잡고
ㆍ의정부 도봉산 망월사 춘성, 도봉산정에 달은 뜨고
ㆍ남양주 운악산 봉선사 운허, 옛사람의 그림자
ㆍ부안 능가산 내소사 해안, 흰 나비가 춤추던 날
ㆍ부산 금정산 범어사 동산, 산중의 법고 소리
ㆍ평창 오대산 월정사 한암 탄허,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길
ㆍ양산 영축산 통도사 경봉, 학은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ㆍ합천 가야산 해인사 성철, 물은 물, 산은 산
ㆍ순천 조계산 송광사 효봉, 바다 밑 제비집에서 사슴이 알을 품네
ㆍ곡성 동리산 태안사 청화, 고개 숙인 부처
ㆍ장성 백암산 백양사 만암 서옹, 어둠 속에 길 찾기
역사를 만나다
ㆍ부여 만수산 무량사 김시습, 술 권하는 날들
ㆍ안성 서운산 청룡사 남사당 바우덕이, 첫사랑의 떨림으로
ㆍ해남 두륜산 대흥사 추사와 초의, 남도의 길 끝에 서서
ㆍ부여 부소산 고란사 백제 최후의 날, 꽃은 떨어지고
ㆍ공주 태화산 마곡사 김구, 어느 테러리스트의 이야기
ㆍ서울 삼각산 진관사 현종과 천추태후, 생과 사는 다르지 않나니
ㆍ여주 봉미산 신륵사 목은과 나옹을 만나다
ㆍ안성 칠현산 칠장사 칠 형제 그리고 갖바치 스님
ㆍ포천 명성산 자인사 궁예의 눈물
ㆍ화성 화산 용주사 사도, 지극히 귀한 몸으로 태어나
ㆍ구례 지리산 천은사 붓 한 자루로 화마를 제압하다
ㆍ강진 만덕산 백련사 다산 그리고 뿌리의 힘
ㆍ광주 남한산 장경사 병자년,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니라네
ㆍ고성 연화산 옥천사 신돈의 꿈, 연꽃 봉우리 가운데 걸터앉아
ㆍ제주 한라산 관음사 바람 타는 섬에서
ㆍ화순 천불산 운주사 장보고, 천불 천탑의 꿈
ㆍ부안 능가산 개암사 소금 꽃
ㆍ구례 지리산 연곡사 녹천 고광순, 죽음이 서 있는 자리
마음을 쉬다
ㆍ서산 상왕산 개심사 솔 숲에 마음을 씻고
ㆍ남해 금산 보리암 관음의 곁에 서서 바다를 보다
ㆍ봉화 청량산 청량사 사랑이 뭐길래
ㆍ안동 천등산 봉정사 곱게 늙어가기
ㆍ여수 금오산 향일암 파도 위에 피는 꽃 한송이
ㆍ강화 정족산 전등사 처마밑의 벌거벗은 여인
ㆍ순천 조계산 선암사 뒷간에 앉아 매화에 취하다
ㆍ양양 오봉산 낙산사 발 밑을 돌아보라
ㆍ고창 도솔산 선운사 동백이 먼 이유를 알겠네
ㆍ해남 달마산 미황사 삶의 길 죽음의 길
ㆍ예천 소백산 용문사 청룡이 머무는 곳
ㆍ강화도 마니산 정수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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