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경영 - 백제인 금강조 일본 건축을 쓰다
홍하상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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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하상 교수님은 한중일 기업인들에 관한 논픽션은 38년 동안 저술했으며 이제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장수기업이 많은 국가는 독일, 스위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인데, 이 국가들은 100년 이상 된 기업의 숫자가 650개를 넘지 않는다. 일본의 23700개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숫자가 적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수치 또한 공식적인 노포 리포트에 포함된 목록이고, 비공식적인 수치는 약 10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 기업이 오랜 업력을 가지게 된 사연을 연구하고, 가장 오래된 회사인 금강조를 주목한다.

 

이 책 <천년경영>은 저자가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3년간 금강조를 60여 회 방문하면서 지켜본 관찰기록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를 생각하면 유럽의 회사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가장 오래된 회사는 서기 578년에 백제인 류증광이 창업한 금강조이다.

 

당시 한반도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치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백제의 국력이 약해지고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했을때, 수많은 백제의 유민은 신라에 항복을 하느니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한다.

 

특히, 백제인이 자리를 잡은 지역은 큐슈를 출발점으로 오사카, 나라 일대이다.

백제는 7, 80톤에 이르는 규모의 목선으로 바다를 건넜다. 지금도 포항 지방의 속담에는 "왜 가는 배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떼로 몰려다닌다는 표현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짐작하게 하는 표현이다.

 

과거 오사카, 나라 여행을 할 당시 호류사를 견학한 적이 있는데, 국보인 금당벽화를 보관한 절로 알고 있었는데, 이 절을 중건한 사람이 백제인이 설립한 금강조에서 만든 절로 짐작되는지 전혀 몰랐다.

 

1,400여년 동안 이어내려온 금강조의 사장님에게 한국의 정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백제의 후손이라는 점과 전남 구례군의 문화 류씨의 후손이라고 전한다.

 

1대조인 류중광이 금강중광으로 바뀐 것은 그의 탁월한 건축 솜씨를 본 용명천황이 그이게 '금강'이라는 성을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일본에서 일어난 49년간의 불교전쟁에서 기인한다. 일본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10만여 개 이상의 신사를 가지고 있다. 서기 587년 백제계 출신의 성덕태자는 불교전쟁에서 승리한다. 정권을 장악한 그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헌법을 만들고 부처님에게 바치는 사찰을 세운다.

 

이 절이 사천왕사이다. 성덕태자는 사천왕사를 짓기 위해 백제에 기술자 파견을 요청했다. 백제의 위덕왕은 요청을 받아들여 기술자를 파견했는데, 그중 우두머리는 4명이었다.

 

그들의 이름이 금강, 도자, 다문, 중촌이었다. 사천왕사는 부여의 정림사를 모델로 지어졌다. 사천왕사의 총 설계자인 금강중광은 일설에 따르면 부여의 정림사를 완공한 총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런 추정하는 근거는 정림사와 사천왕사의 가람배치도와 구조가 똑같다. 둘다 일탑일금당식, 즉 탑 하나에 대웅전 하나인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후 1대에서 40대에 걸친 금강조의 기록을 차장서 보관하기로 한 저자는 금강조의 역사와 후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금강조는 1,400년 동안 건재하다 193237대 금강치일이 할복자살로 충격을 남긴다. 그가 자살하게 된 것은 그의 대에서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가 망한 이유는 금융 대공황 때문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한 금융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파탄 나고 이어 독일의 도이체 뱅크가 파산했다. 그 여파는 일본에도 넘어와서, 일본도 연일 실업자가 쏟아졌다.

 

이후 1934년 오사카의 사천왕사 내의 높이 48미터의 오중탑이 무너져 이를 재건하기 위해 금강치링의 부인 38대 금강요시에게 맡긴다.

할복자살로 남편을 잃은 금강요시는 오중탑의 재건과 함께 금강조도 다시 살아났다. 금강요시는 1950년 사위인 39대 금강리융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현재 금강조는 40금강정화대에 이르러 다시 한번 파산을 경험하고 일본 다카마쓰 건설의 한 사업부서가 되었다.

 

1400년 전에 백제의 금강조가 전수해 준 목조 건축 기술은 여전히 금강조에 전수되어 남아있다.

 

<천년경영>을 읽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친밀한 과거 역사에 대해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이런 사실은 반기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제 소수에 불과하다. 홍하상 교수님의 오랜 노력이 미래에 양국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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