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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험 - 너머의 세계를 탐하다
앤드루 레이더 지음, 민청기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3월
평점 :
BEYOND THE KNOWN : 한계 너머의 세계를 탐험하다
알려진 것 너머의 세계로 선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소의책에서 출판한 앤드루 라이더 지은이, 민청기 옮긴이의 <인간의 탐험>은 인간이 한계를 너머 탐험한 역사를 선보인다.
인간은 왜 탐험하는가?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리프트 밸리를 처음으로 떠난 이유는 언덕 너머에 새로운 먹을거리가 있을거라는 가능성과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자인 앤드루 레이더는 캐나다의 작가이자 항공우주 엔지니어로,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업체인 스페이스X의 총괄 관리자다. 칼턴 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았고, MIT에서 ‘장기 우주 비행’에 관한 연구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과학 연구와 발전을 관리하는 캐나다 국립연구위원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책표지 중)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현재 인간의 탐험사에 있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우리가 탐험하는 바를 소개한다. 2015년 12월 21일, 지구 궤도에 위성을 성공적으로 올려놓았던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이 지상에 무사히 착륙했다. 이는 유례가 없는 역사상 최초의 위업이었다. ‘팰컨 9호’가 성공적으로 회수되었던 점은 인간이 우주로 탐험하는 비용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재사용 로켓은 이제 우주로켓의 표준이 되었고 우주 여행을 가능하게 할 혁명적 기술이 되었다.
인간은 어떤 탐험을 해 왔는가?
제1부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인류가 유라시아로 향한 인류 대이동의 첫 번째 물결에서 시작한다. 고대인부터 로마인은 문명은 주도하는 세력은 탐험과 무역, 사상의 교류가 문명의 발전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바깥 세상으로 탐험을 나선 것은 호모 에렉투스다. 이를 ‘아프리카 기원설’로 보고 현생 인류의 조상 중 일부가 아프리카를 벗어난 것을 ‘2차 아프리카 기원설’로 부르기도 한다. 12만~7만년 전에 두 차례에 걸쳐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탐험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아 인도네시아, 유럽, 중동, 스페인까지 이들이 탐험한 광범위한 지역을 탐험했다.
그리고 1만 4,000년 전에는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었다.
학창 시절 우리는 베링해협을 빙하기 때 이어진 베일 해협을 통해 인류가 이동했다고 배웠다.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걸어서 두꺼운 빙판 위를 이동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저자는 이보다 베일 해협 아래 위치한 알류산 열도의 섬을 주목한다.
고대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운 점은 대홍수 신화가 문명의 곳곳에 확인되는 점이다.
지중해는 한때 거대한 소금밭이었다. 600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충동하면서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이 육지로 막히는 ‘메시니안 염분 위기’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지중해에 갇힌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소금이 쌓이고 해양생물은 대부분 멸종했다.
500만 년 전에는 스페인과 모로코 사이 지브롤터 해협이 생기면서 바닷길이 열렸고 대서양의 바닷물이 폭포처럼 밀려 들어왔다. 아마존 강 유량의 1,000배에 달하는 폭포가 거의 1.6킬로미터 높이로 떨어져 내렸다. 흑해 역시 같은 이치로 기원전 5,600년 전 보스포루스 해협이 열리면서 지중해의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이 지역에 ‘노아의 방주’ 같은 홍수 신화의 원형이 생겨났을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을 포괄하는 지중해는 문명의 고속도로가 되었다. 이 지역에 등장한 페니키아인은 문명이 전파하도록 매개했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최초로 동서양을 연결함으로써 문화 교류를 촉발했고, 비로서 세상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의 사상이 아시아로 확산되고 아시아의 사상도 지중해 세계에 알려졌다.
제2부는 로마 제국의 멸망 후 바이킹 이야기에서 마젤란 원정으로 이어진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전성기의 맞았던 로마가 내리막을 걷는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은 312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영구히 분리되었고 410년에는 서고트족이, 455년에는 반달족이 로마를 약탈했으며 476년 8월 28일에는 로마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었다.
로마 제국이 분리된 이후 1,000년 동안 지속된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유럽인에게 대항해 시대를 촉발시켰다.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 제국이 실크로드를 장악해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로가 단절된 것을 우려한 유럽인들이 대체 무역로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보통 ‘대항해 시대’라고 하면 유럽인들이 배를 타고 해상 무역이 발달하지 않은 낙후된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사실 유럽인이 갔던 곳에는 이미 잘 짜인 해상 무역망이 존재했으며, 유럽인의 모험도 실제로는 더 큰 대포로 무장한 채 많은 사람이 살고있는 지역을 정복하러 갔던 것이다.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을 때 만난 아랍 상인들 중 일부는 그에게 왜 찾아왔냐고 화를 내며 바스코 다 가마의 2차 탐험을 왔을 때는 반포르투갈 세력을 모아 ‘캘리컷 전투’를 벌였다.
지중해보다 세상의 중심이 되었던 바다는 인도양이었고, 이곳은 아랍, 인도, 중국의 뱃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뛰어난 항해술을 기반으로 해상무역망을 갖추고 있었고 무역이 활발했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유도 유럽은 변방에 위치했고, 유럽인의 제품은 인도와 중국인에게 흥미롭지 않았다. 유럽의 권력자들은 아시아인에게 팔 만한 상품을 찾기 위해 애썼고 무력으로 아시아인의 상품을 강탈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것은 1839년에 대영제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15세기에서 19세기의 세계의 맹주는 중국이었고 그 지위는 견고했다. 명나라 집권기였던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 제독이 지휘하는 함대가 인도양으로 일곱 차례 원정을 떠났다. 60척이 넘는 거대한 ‘보물선’과 그보다 작은 200척의 지원선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승선 인원이 3만 명에 달했다. 함대에서 가장 큰 배는 4층짜리 갑판에도 길이가 120미터, 폭이 52미터를 넘었고 엄청난 양의 화물과 1,000여 명의 선원을 태웠으며 아홉 개의 돛대에 달린 돛을 펴고 항해했다. 배의 규모를 상상하기 힘든 정도인데 콜럼버스 선단에서 가장 컸던 산타마리아 호가 23미터에 달하는 것을 비교하면 정화 원정대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정화는 원래 중국인이 아니었다. 그는 원나라 시대 중국 윈난 지방의 공직자였던 이슬람교도의 아들로 태어났고 원래 이름도 정화가 아니었다.
정화의 원정대 이후 명나라가 해상 무역을 차단하고 봉쇄정책을 취하는 것은 유럽으로 주도권을 넘어가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대국이어서 외부 세계와 교류하지 않아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외국과의 교류가 중국의 권력자에게 위협이 되는 새로운 사상을 유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점도 중요한 이유다. 보수적인 유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나라의 문을 걸어 잠갔으며 외국과의 접촉은 차단되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되면서 중국의 기술 발전은 침체했고, 중국이 열망했던 세계무대의 주도권은 유럽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제3부는 인간이 비행 기술을 완성하면서 하늘로 과학 탐험을 떠나 최근까지 우주 경쟁을 벌였던 이야기를 다룬다.
무역로가 생겨나면서 전 세계가 연결되었지만 유럽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에 닿을 수 있다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젤란이 나름 항로를 찾아냈지만 너무 멀어서 현실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북극을 지나거나 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는 다른 길을 찾아다녔다. 탐험가는 북극, 남극의 극점을 차지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지구상 위치한 모든 육지에 발자취를 남겼다.
인간의 탐험은 이제 하늘로 향했다.
인류가 비행기를 설계하고 제작하고 운용하는 기술을 개발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비행기는 여전히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비행하는 공간은 점차 확대되었고 마침내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기로 향했다.
1969년 7월 20일, 전 세계에서 약 5억 3,000만 명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아폴로 11호의 사령관 닐 암스트롱이 달착륙선에서 나와 인류 최초로 다른 천체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시청했다. 우주선 아폴로는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달에 착륙했고 총 열두 명의 우주인을 달 표면에 내려놓았다. 아폴로 계획 중에서 마지막 세 차례는 우주인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월면 이동차를 가져갔으며, 마지막 탐사였던 아폴로 17호에는 해리슨 슈미트라는 지질학자가 탑승했는데 그는 다른 천체에 간 유일한 과학자였다.
인간은 달보다 더 멀리 있는 화성으로 무인 탐사선을 약 50회를 발사했으며 그중 절반가량이 성과를 거두었다.
2019년 탐사선 뉴호라이즌은 그동안 탐사했던 천체 중 가장 먼 ‘울티마 툴레’의 사진을 찍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는 태양계를 넘어 다른 항성 주위를 도는 행성을 관찰하기 위해 꾸준히 기술을 개발했다. 거대한 우주가 지구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류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위험을 감수했으며 그 대가로 번영을 누렸다. 인류의 영역을 넓히고 같은 목적으로 인류를 통합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우리가 사는 영역을 밖으로 넓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우주 탐사라는 큰 도전에서 중요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 화성에 유인 탐사선이 착륙하는 순간은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인류는 화성 너머의 탐험을 지속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방랑의 유전자를 계속 개발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평소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이었고, 팍스 몽골리카의 원정, 훔볼트, 이븐 바투타의 여정, 인도 대륙의 패권 국가와 이집트, 로마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 이야기는 너무 흥미로웠다.
역사, 세계사와 인간의 탐험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대단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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