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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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찬란한 헌사

 

창비에서 출판한 신경숙 작가님의 <아버지에게 갔었어>13년 전 그녀가 들려준 <엄마를 부탁해>가 어머니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감명 깊게 읽었던 부모에 관한 책을 돌이켜보니 김정현 님의 <아버지>와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났다. 신경숙 작가님의 차분하고 마음속에 켜켜이 묻어둔 감정을 끄집어내는 문체는 이번에도 내 마음을 울렸다.

이번 소설도 많은 분에게 사랑받을 작품이라 생각했다.

 

저자인 신경숙 님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이번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그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로, 삶과 세상에 대한 무르익은 통찰과 철학, 여러겹의 아버지의 모습과 가족을 향한 연민에서 비롯된 깊은 사유를 시리고도 찬란하게 펼쳐놓는다. (책날개 중)

이번 소설은 주인공 헌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자신의 눈앞에서 딸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 사건은 그의 삶을 중지하고 가족 단톡방에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가족 모두 그녀를 이해한다.

 

엄마의 병이 위중해 서울로 치료차 입원하게 되어 고향 J시에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 헌은 자진해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내려간다.

아버지 마음에 응어리진 돌을 하나둘씩 끄집어내 헌과 공유한다. 헌은 자신이 느끼는 수면 장애를 아버지도 가지고 있고, 자신만 몰랐던 아버지에 관한 사실을 하나둘씩 확인하며 아버지의 인생을 되새긴다.

 

 

아버지는 내가 J시를 떠났을 때 눈이 붓도록 울었다.

 

아버지는 J시의 집에서 1933년 초여름에 태어났다. 처음부터 장남은 아니었다. 위로 형이 셋, 누나가 둘이 있었으니 여섯째였으나 전염병이 돌던 해에 형 셋을 잃고 장남이 되었다. 조부는 전염병이 무서워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는 대신 명심보감, 소학을 익히도록 했다. 아버지가 열네 살 때 다시 전염병이 돌았고 조부의 큰아버지를 문병 다녀온 조부, 조모도 감염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 여름에 이틀 간격으로 부모를 잃었다.

 

아버지는 동네의 다른 아버지들과 달리 농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선글라스에 오토바이를 타고 하얀 얼굴로 다리 위에서 헌을 마중 나왔을 때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외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헌은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해 J시로 내려간다. 아버지는 밤이 되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는 헌을 위해 산낙지를 사러 시장에 가자고 하지만, 헌이 기억하기에 산낙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학사모 사진을 거설 벽에 걸어두고 싶지만 딸은 좀처럼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딸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의 청을 들어드리고 싶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려 하지만 직접 보내드리진 않는다. 아버지는 딸이 자신에 대해 쓴 글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린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 (p.6)

 

작은방의 아버지 곁에 가만히 누워 발을 뻗어봤다. 아버지의 정강이뼈와 내 무릎이 부딪쳤다. 살집이라곤 전혀 없는 아버지의 정강이. 죄송해요, 아버지. 허무와 두려움이 밀려들어 어둠 속에서 아버지처럼 내 이마에 손등을 얹어봤다. (p.73)

 

내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름서 살믄 그게 사는 것이냐. 아버지가 스스로 치매 검사를 받아봤다는 말에 나는 침울해졌다. 가족 누구에게서도 아버지가 치매 검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을 아버지. (p.92)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섬망증세와 우울함 때문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밤에 일어나 바깥으로 나돈다. 이런 증상에 딸은 걱정이 앞서지만 인지 능력은 이상이 없는 아버지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p.92)

 

아버지는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p.92)

 

결박당한 송아지의 코청을 뚫고 나올 때 손이 떨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송아지의 코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송아지의 몸부림에 핏방울이 아버지의 얼굴에 튀었다. 아버지는 누나가 가져다놓은 양푼 속의 흰 소금을 한움큼 집어 외조부가 일러준 대로 송아지의 코에 뿌렸다. (p.99)

 

내 아버지도 어린 시절 소를 몰고 꼴을 베고 소를 몰았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소의 코뚜레를 생각하니 누군가 소를 길들이기 위해 코뚜레를 뚫었을 것이다. 헌의 아버지가 열네 살 때, 이틀 새로 부모를 여의고 외조부는 아버지를 위해 송아지를 주었다. 송아지가 자라 아버지가 몰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의 송아지는 자신이 코뚜레를 하겠다고 한다. 그 송아지는 집안의 큰 재산이었고 아버지는 동네 사람의 논밭에 송아지를 몰고 가 이랑을 만들고 쟁기질을 했다.

 

나중에는 총 쏘는 것도 아까웠던가벼. 또랑가의 팽나무에 쭉 둘러앉게 해놓고는 죽창으로…… 그것으로 죽을 때까지 찔렀다. 나중에는 저들은 가만있고 서로 쯔르게 해서는…… 온 마을이 비명 쇨에 피 냄새에 눈알이 터지고 배가 터지고 창시가 터지고…… (p.108)

 

전쟁이 J시에 다가왔다. 6사단 사람들이라고 불리던 인민군은 농촌인 마을 사람들도 죽이고 지나가려 했다. 난리통에도 살아남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헌의 아버지도 기적과도 같이 생존하게 되었고, 징집을 피하게 하려는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검지 손가락이 잘리게 한다.

 

큰봉은 아무것도 모른 채 긴장하고 있는 아버지 오른손 검지를 작두 사이에 끼워 넣고는 빠른 속도로 작두날을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놀라서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눈을 가린 수건을 벗겨냈을 때 큰봉은 잘린 손가락을 짓밟아 으스러뜨리고 있었다고. (p.110)

 

아버지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고통스러운지 어깨를 움츠리고 등을 구부렸다. 아버지는 사람이 무서웠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누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p.116)

 

 

마음이 안 조앗다

가난한 아비를 만나 이른 나이에 집을 떠나 생면부지의 타지에서 혼자 밥 끄리머고 살게 한 것도 모질라 혼인을 앞두고서 기픈 시름에 잠꼈쓸 너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저리고 미안햇따

내가 할 수 있는 거슨 소의 숫자를 줄이지 안는 것엇따

네가 사준 일곱 마리에서 한 마리도 줄이지 안으려고 노려햇따

경운기타고 낙천이랑 소몰이 투쟁에 나간 것도 그래서엿다 (p.184)

 

처음으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아버지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염병으로 이틀 사이에 부모를 잃은 마음을, 전쟁을 겪을 때의 마음을, 얼굴 한번 보고 엄마와 결혼하던 때의 마음을, 큰오빠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이 되지 않았다. (p.197)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 시대를 지나올 때 갖은 고생으로 오늘을 만든 분들이 아버지세대이다. 과거 아버지는 책임감이라는 짐을 어깨에 지고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족을 건사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길 제안한다.

 

자녀의 동영상을 찍는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부모의 모습을 기록하라는 조언은 금과 같다. 어색해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 간격만큼 서로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니 서로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저자의 전작 중 하나인 <엄마를 부탁해>와 묘하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전작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이야기라면 이번 책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시간 속에 아내와 자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있는 분은 통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리길 추천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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