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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거울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2021년 2월
평점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미진사에서 출판한 유성애 님의 <철학자의 거울>은 특히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을 담고 있다.
저자인 유성애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15년째 공부모임을 이어오며 예술 관련 주제를 공부 중이다. <해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집필했고 예술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문신저술상, 한국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책날개 중)
저자는 회화에서 철학자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느 시대에 철학자를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지 확인한 후 바로크 시대에 주목한다.
철학과 철학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어원으로 찾아보면 철학Philosophy은 사랑함philos과 지혜sophia가 합쳐진 말이다. 철학은 잘 정리된 개념 체계를 뜻하지 않는다. 지혜의 사랑은 활동이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17쪽)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바로크 시대에 철학자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크 시대(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와 종교개혁 시기를 지나 기존의 지식을 독점하던 계층에서 더 넓은 계층으로 지식의 확장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던 생산자 역할에서 자의식이 싹트고 스스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다. 음악으로 치면 귀족의 주문에 곡을 만들었던 모차르트에서 예술가의 독립성을 찾아간 베토벤의 시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식이 보편성이 가져온 다른 영향은 철학자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철학자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티칸성당 벽화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벽화에는 고대 그리스의 걸출한 철학자들이 모두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탄탄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 철학자를 가장 잘 그려낸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는 철학자를 연작으로 그려내지만, 그가 그린 철학자는 정돈되지 않은 얼굴과 가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누더기 철학자의 모습이다. 철학자의 위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리베라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원자에서 찾으려 했던 웃음의 철학자로 알려진 데모크리토스와 만물의 근원을 불로 꼽았던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렸다.
철학자가 과거의 지위를 잃어버린 건 16세기에 두드러진다. 중세의 철학자는 기독교 신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철학은 신神존재 증명, 신학 논쟁의 중심 학문으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궁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철학자는 궁정의 지원으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갔다. 16세기 말부터 철학자와 궁정의 관계는 단절되기 시작했다. (51쪽)
철학자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대항해 시대로 영토와 부가 가져다주는 열망을 맛본 유럽의 왕은 도덕적 관점을 주목하는 철학자의 간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심을 더욱 내어야 했다.
견유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컵을 가지고 호숫가에서 물을 마시는 순간 옆의 소년이 컵이 없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컵을 던져버린다. 스스로 컵을 버림은 과거 자신과의 단호한 결별을 뜻한다.
죽음은 화가가 즐겨 다루는 주제다.
바로크 시대 미술 작품에서 철학자와 일반인의 죽음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죽음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 공부이다. 17세기 회화에서 죽음은 해골을 드러내고 모래시계, 다 타버린 초, 시들어진 꽃으로 표현한다. 마트에서 받은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바래지듯이 인간이 가진 의식도 서서히 사라진다.
철학자의 죽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그림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이다. 이는 죽음 이후의 진실에 대한 철학자의 확신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이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를 주목하는 청년들의 존재는 그의 사상이 제자인 플라톤으로 인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망 당시 병으로 집에 누워있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비드가 플라톤의 모습을 그림 속에 삽입한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구성하고 전해지는 이야기 때문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죽어가는 세네카>(1612-1615)도 주목할 작품이다. 세네카는 스토아학파 대표 철학자이자 고대 로마 정치가다. 그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네로 황제에게 자살을 명받아 죽음을 택했다. 죽는 과정은 매우 끔찍했다. 독약을 마시고 혈관을 잘라도 숨이 붙어 있었고, 끝내 증기탕에서 질식사했다고 전해진다. (154쪽)
그의 죽음은 외부 힘에 짓눌린 비참한 삶보다 스스로 인생을 종결한 권리를 행사하고 신념에 따르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는 의미가 다르다.
‘손에 쥔 비눗방울’ 편에선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소재로 비눗방울을 소개한다.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과 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등바등하는 모습도 비눗방울처럼 터지기 쉬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크 시대 회화에 드러나는 철학자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나는 시간이다. <철학자의 거울>에 소개되는 철학자와 작품의 도록을 부록 편에 별도로 수록하고 있어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철학,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철학자의 거울>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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