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
이지은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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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사랑까지 독일에 대해 알아보자!!

 

유럽연합을 선도하는 두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로 파병된 광부, 간호사분들이 근무한 나라이고 전후 처리에 있어 일본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양심으로 인정받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70년대 80년대 독일유학을 떠난 분이 많이 있고, 지금도 독일유학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있는 거로 보인다. 독일과 독일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담북스에서 출판하고 이지은 교수님의 <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는 그동안 궁금했던 많은 질문에 관한 답을 얻었다.

 

오늘날의 독일과는 달리 프로이센왕국(독일제국, 1871)이 형성되기 전까지 독일은 유럽 내 2등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가장 큰 원인은 1618년에 일어난 30년 전쟁 때문이다. 힘이 없어 유럽에서 벌어진 국제전의 전쟁터가 된 독일 지역은 이후 1/3의 인구가 사망했고 300개국 이상으로 분열되었다.

 

독일인이 질서를 잘 지킨다고 알려진 배경에는 두 가지 큰 요인이 있다. 과거 유럽 어떤 나라보다 통일된 나라가 없었던 독일은 '질서'만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고 인식했다.

 

두 번째 요인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청교도적인 요소와 관련 있다. 두 종교는 지속적으로 질서를 강조했고 나라를 통일한 프로이센의 국가 정책과도 잘 어울렸다.


 


17세기까지만 해도 독일인은 다른 유럽 민족들에 비해 무질서하고 음주벽이 심했고 삶의 쾌락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고 한다. (21)

 

독일인의 특징짓는 또 다른 것은 의무를 잘 지키는 사람이다. 칸트와 헤겔의 의미에서 국가는 도덕적 법칙의 대변자라 생각한 독일인은 19세기까지 의무를 교육의 핵심이념으로 가르쳤다. 독일인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가 우선이며, 이후에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68학생운동' 이후 이러한 경직된 의무 개념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독일인이 진지하다고 여기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영국, 프랑스와 같은 오랜 왕조를 가지지 못한 독일은 런던, 파리와 같은 대도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카롤링거 제국의 수도였던 아헨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베를린까지 독일은 그동안 11번이나 수도를 옮겼다. 이 점은 세련된 사교 문화, 귀족 문화와 같은 유연함을 떨어뜨렸다.

 

독일인은 무게 있는 대화를 선호하고 정치적 불안정, 권위적인 위계 사회, 전쟁 후 인플레이션을 경험했기에 사람들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었다.

 

독일인들은 네 가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중세 독일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은 '30년 전쟁'(1618~1648)에 대한 기억이다. 30년 동안 유럽 열강의 전쟁터가 된 독일이 겪은 참상과 공포는 그들의 기억과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 내려 있다.

 

두 번째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의 군대로부터 받은 약 20(1794~1815) 간의 점령과 지배이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일인들은 모멸감을 느꼈고 처음으로 '독일'이라는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는 나치 독일과 그들에 의해 자행된 전쟁 범죄와 유대인 학살이다.

마지막으로는 민족의 분단과 베를린 장벽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프랑스와의 관계와 민족분단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지금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로 발전할 만큼 양국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91)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같이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중앙집권 국가로서의 체계를 가지지 못했다. 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962년에 오토 1세가 즉위하여 1806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될 때까지 거의 천 년 동안 존속하였다. 그러나 제국의 내부는 숫자가 많을 때는 거의 300개국(, 선제후, 대공, 영주, 공작령, 영주령, 주교, 자유도시, 하급귀족, 기사 등이 지배하는 영토)이상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름만 거창한 이들 나라는 오늘날 베를린의 2/3도 되지 않는 크기였다. (99)

 

 

독일의 정체성은 나타내는 인물은 누구일까?

 

저자는 우리가 익숙한 괴테는 독일 외에도 너무 널리 알려져 있고,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라 다른 인물을 꼽았다.

 

중세의 쿠텐베르크와 뒤러이다. 인쇄술을 발명한 쿠텐베르크 이후 약 350개 도시에 1,000개 이상의 인쇄소가 생겼다. 독일은 천연자원이 빈약한 나라이지만 세계적인 대기업과 함께 세계에서 해당 분야에서 3위 이내에 있는 '히든 챔피언'1,500개나 되는 나라이다. (116)

 

개혁 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제는 800년에 황제로 추대된 칼 대제 이후 두 번째로 '대제'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7년 전쟁'(프로이센 대 오스트리아)을 승리로 이끌면서 당시 유럽의 변방국이었던 프로이센을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이어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강한 나라로 부상시켰다. (125)

 

독일에서 맛있는 맥주가 생산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세에서 오늘날까지 지켜지는 '맥주 순수령' 때문이다. 맥주 순수령에 따라 독일에서 맥주를 양조할 때는 반드시 세 가지 요소, 즉 보리, 호프 그리고 물만 사용하여야 한다. 1487년에 바이에른의 공작 알브레히트 4세가 제정하였고, 1516년에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4세가 공국의 모든 사람이 이를 따라야 한다고 공표하였다. (195)

 

독일에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상투적 표현이 있다. 바로 '쓰리 케이'이다. 육아(Kinder), 부엌(Kuche), 교회(Kirche)를 뜻하는 말로서 모든 낱말이 케이(K)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상투적 표현은 독일의 여성들이 처한 위상과 낙후성을 보여준다. '68학생 운동' 이후 여성의 전통적 역할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새로운 여성상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68 학생운동'은 독일 사회 전반은 민주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독일을 서유럽 사회에 편입시키는 성공적 운동이었다. (241)

 

독일어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현재 유럽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약 43개이다. 사용되는 언어가 많지만 대부분 3개의 상위 모태어, 즉 게르만어, 로만어 그리고 슬라브어로 종합된다.

 

게르만어 : 독일어, 영어, 네덜란드어 그리고 북유럽어들

로만어 :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슬라브어 :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의 언어

 

이렇게 생각하면 영어에 익숙한 한국인의 경우, 다른 유럽 언어에 비해 독일어는 접근하기가 다소 쉬운 편에 속한다.

 

독일인이 금기시하는 대표적인 것은 섹스, 종교, 그리고 유대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섹스와 종교는 이제 터부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독일은 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개방적이며, 기독교 나라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독일에는 하나의 금기가 있다. 그건 유대인에 관한 문제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유대인에 관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독일에서 유대인 문제를 언급할 때는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이 책은 독일에 관심이 있거나 독일유학을 준비하는 분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많이 수록하고 있다. 독일에 관한 정보가 궁금한 분이 이지은 교수님의 <알고도 몰랐던 독일 사람과 독일 이야기>를 추천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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